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전하는 당돌한 위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삶의 방식은 원래 다양한 건데,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인생이 있는 건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멀쩡히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스스로의 판단이 틀렸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하기에, 그들의 인생을 ‘틀린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미워한다. 아주 비겁하고 치사한 방식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입 좀 닥치라고, 남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개봉했다. 오만과 편견, 차별과 혐오로 점철된 2024년의 대한민국에 이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한국영화가 있었던가.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늘어놓을 말이 없다. 나는 그저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 영화의 화법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므로. 따라서 날고 긴다 하는 시네필들의 평가가 어떤지와는 별개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이름만 들으면 아는 배우 캐스팅에 성공해 무사히 투자를 받고, 기어코 전국의 스크린에 걸렸다는 것만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것만으로 이미 넘치게 대견한데, 나쁘지 않게 읽은 소설보다도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잘 뽑힌 결과물을 보니 웃음과 감동의 눈물을 수차례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내 생일이기도 했던 영화의 개봉 날, 선물 같았던 관람을 마치고 상영관을 걸어 나오며 이 영화에 4점 이상을 주는 사람들과 친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태생적 아웃사이더 기질을 타고나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온 재희와 흥수가 술과 유흥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똘똘 뭉쳐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읽었던 사람으로서, 원작에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동성애 코드를 완전히 배제한 채 마치 두 사람의 유쾌한 사랑 이야기를 보여줄 것처럼 홍보하는 예고편을 보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각색이 들어갔다지만 원작의 본질을 해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이에 대한 원작 작가의 허락을 받긴 했을까? 그러나 이게 웬걸. 호평이 자자했던 시사회 반응을 믿어보자는 판단에 따라 관람한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텍스트로 재희와 영(원작 속 흥수의 이름)을 처음 만났을 땐 ‘이런 삶도 있구나’ 싶었던 게 전부였다면, 영화 속 재희와 흥수는 세상 어딘가에 정말 존재할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선 훨훨 날고 있는 게 아닌가.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라는 대사에 담긴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짠하면서도 찬란한 이들의 인생이 스크린에 생생히 펼쳐져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한국 상업영화에서 퀴어를 이렇게까지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 적이 있었던가 하는 것이었다. 당사자가 아니라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성 소수자를 수단화하거나 타자화하지 않은 채 오로지 극을 이끌어가는 묵직한 캐릭터로서만 담담하게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흥수에게 지나친 불행 서사나 우울한 성격을 부여하지 않은 것 또한 좋았던 점 중 하나였다. 그뿐 아니라 성 소수자 인권 동아리에게 가해지는 혐오라든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 어머니와의 갈등이라든지 하는 것들까지 나름대로 잘 풀어낸 것을 보며 퀴어 색채를 지운 예고편에 대한 궁금증이 더더욱 커졌다. 원작이 있으니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함구할 필요가 있었을까를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동명의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이 OTT 공개를 앞두고 일부 보수단체의 민원 때문에 퀴어 요소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던 예고편들을 전부 내려야만 했다는 뉴스 기사를 접하고는 영화 예고편의 기이한 편집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개봉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해도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전달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숨겨야만 하는 메시지들이 이 나라에는 아직 남아있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을 했다. 영화 마케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으로서, 마케터가 고려하고 수용해야 하는 대중의 감수성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고민에 착잡해졌다.
이 영화는 재희가 맞닥뜨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젊은 여성이 처해있는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재희 혼자 사는 자취방을 훔쳐보던 범인을 현장에서 검거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구하기 위함이었다는 변태의 변명이 통하는 바람에 재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흥수를 집에 들여야 했고, 만취 상태일 때 낯선 이로부터 받아마신 술 때문에 기억과 의식 중 무엇을 잃은 건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성관계를 맺어 임신하게 되자 의사에게 폭언을 들어가며 임신중절수술을 진행해 줄 병원을 물색해야 했으며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남자들과 이별하는 순간에는 늘 쌍년이니 걸레니 하는 화풀이를 들어야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게 재희의 탓만은 아닌데. 따지고 보면 그녀는 언제나 피해자에 가까웠는데, 왜 술과 연애를 좋아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문제의 원흉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지.
그러니까, 늘 이런 식이다. 다들 재희가 가진 결핍이나 상처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으면서, 그녀의 외적인 매력에 이끌려놓고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녀의 그녀다움을 탓하며 등을 돌린다. 그렇게 생각하고 외면해 버리는 게 수월하기 때문이겠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과 거리가 있는 이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나면 위태로울 뻔한 자신의 평판이 유지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입을 모아 재희가 헤프다고 말하지만, 사실 재희는 끊임없는 내면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매 사랑에 진심인 인물이다. 그녀에게 어떤 시련이 닥쳐도, 그녀는 자신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지지 않아도 되었을 책임까지 떠안던 순간에서야 비로소 ‘내가 그렇게 뻔하냐’며 울음을 터뜨리던 재희. 그런 재희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자신이 없는 이들에게는 재희를 사랑할 자격도, 욕할 자격도 없다.
개인적으로 묘했던 포인트가 있다면, 임신중절수술을 계기로 남들처럼 살아보기로 결심한 재희가 보이는 행보가 바로 경영학과 복수전공과 마케팅 직무로의 취업이었다는 점이다. 남들 하는 대로 휩쓸리기보다는 살고 싶은 대로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에서 재희의 이러한 변화는 명백히 긍정적 요소가 아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말고도 다수의 영화나 드라마, 웹툰 등의 창작물에서 ‘경영학과’는 주인공의 전형성과 모범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서 수도 없이 등장해왔다. 거기에다 그야말로 레드오션인 마케팅 직무까지 등장시켜 어떻게든 평범한 직업을 얻어 그럴듯하게 살아보려는 재희의 욕망을 효율적으로 대변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뻔한 전개를 보며 어딘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문과대 중 그나마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경영의 ‘경’ 자도 모르면서 경영학부에 진학하기로 한 과거의 선택이 민망해졌고, 졸업이 다가오자 무난하게 전공을 살릴 방법을 모색하다 마케터를 희망하게 된 현재의 안일함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경영학을 흥미로워하거나 마케터를 간절히 꿈꾸는 거면 몰라. 그게 아닌 이상 내 꿈과 비전도 결국 뻔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이라 떠들고 다니면서도, 사실은 갈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리본 달린 베이지색 단화를 신은 재희처럼 ‘이상적 삶’이라는 허상을 구축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인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뾰족하게 정의하고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인생이 뻔하게 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면, 스스로를 더 열심히 탐구하고, 정상성을 강요하는 세상에 맞서 더 거세게 투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유흥을 즐기지 않으며 연애에도 별 관심이 없는 이성애자다. 따라서 언젠가 재희나 흥수처럼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들처럼 살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살아볼 수조차 없다. 그러나 내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그들의 삶을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과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은 그저 세상에 술과 연애보다 재밌는 게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달린 문제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누구에게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비난할 권리 같은 건 없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결국 이런 간단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이다.
이미 여기저기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원작 소설까지 존재하는 판에, 이런 영화를 함께 만들어 갈 배우와 투자자를 찾지 못해 제작이 무산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이마를 짚었다. 하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자라 좋은 대학을 나온 후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으며 이성의 배우자와 결혼해 자식 낳고 알콩달콩 잘 사는 것만이 ‘이상적인 삶’으로 인정받곤 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간단한 메시지 하나를 전달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는지. 난항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무사히 개봉되어 입소문을 타고 당당히 박스오피스 2위까지 차지했으니,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어느덧 개봉 3주차에 접어들었다. 한 달이면 충분히 오래 걸려있었다고 생각되는 극장 상영 트렌드를 벗어나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에게 통쾌한 웃음과 위로의 눈물을 안겨주는 영화로 남기를 바란다. 요즘 극장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중급 규모의 영화로서 유의미한 스코어를 기록해 앞으로도 이런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던 김고은 배우의 인터뷰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이고도 특별한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대해 본다.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갈 수 있게 돕는 것. 그것이 상업영화가 이룰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과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