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바로 젠Z의 애티튜드지

03년생 팝스타가 전세계를 사로잡은 ‘지극히 솔직한’ 방식

by 천은채

지난 20일,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1집에 이어 2집 GUTS까지 성공시키며 눈여겨볼 신인에서 독보적인 캐릭터의 월드 스타로 발돋움하는 젊은 팝스타의 성장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티켓팅이 있던 5월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큰 관심이 없었기에... 대체 불가한 최정상 아티스트로의 도약을 함께할 수 있는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고 나서야 그녀의 공연이 가진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는 후회막심한 심정으로 젠지(Gen Z)의 아이콘, 올리비아 로드리고에 대해 쓴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데뷔곡 drivers license로 빌보드 핫100 1위를 기록한 최연소 아티스트라는 타이틀과 함께, 각종 어워드의 신인상은 물론 그래미 3관왕을 달성하며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력을 과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단순히 디즈니 아역 출신이라서, 스타 프로듀서와 협업했기 때문에, 성격과 외모가 매력 있어서 등의 이유들 말고, 그토록 치열한 팝 씬에서 당시 17세에 불과하던 올리비아의 음악이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하고, 가사를 곱씹는 일은 그 노래를 더 좋아하게 만들고, 그런 가사가 탄생한 배경까지 알게 되면 비로소 그 아티스트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의 노래는 평소에도 즐겨들었고 최근 그 가사들의 뜻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녀에 대해 알아볼 차례. 때마침 구독 중이던 디즈니 플러스에 1집 SOUR의 탄생 비하인드와 라이브 클립이 담긴 로드트립 형식의 다큐멘터리 <Olivia Rodrigo: driving home 2 u>가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고, 미성년자 시절의 앳된 올리비아와 그 당시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영상을 시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기대한 대로 영상 속에는 지금보다 확실히 어린 티가 나면서도 여전히 프로다운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올리비아가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 내게 올리비아는 늘 밝고 장난기 넘치는, ‘젠지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녀의 이미지였다. 저렇게 통통 튀고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가 어떻게 이런 감정적으로 깊고 섬세한 음악들을 만들어낸 것일지 궁금했는데, 비로소 궁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장난기 많고 당찬 소녀임과 동시에,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야망이 큰, 여리고 섬세한 아티스트였다.


이별의 아픔과 남아있는 그리움을 솔직하게 표현해 큰 사랑을 받은 데뷔곡 drivers license의 비하인드를 영상 속 올리비아가 ‘여전히 그를 잊지 못했다’라고 지나가듯 말하던 순간, 그녀의 얼굴에 비친 씁쓸한 웃음에 그녀의 팬이 되었다. 단지 곡을 써야 하기 때문에, 대중이 열광할 히트곡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끄집어다 쓴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슬픔과 절망의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식으로 작곡을 선택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느끼는 슬픔을 충분히 담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고뇌하고 또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이 처절해 보일 지경이었다.


‘진정성’. 요즘은 어딜 가도 진정성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보인다. 내가 진정성을 추구하는 콘텐츠나 브랜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진정성에 대해 유독 자주 생각하는 것일지도. 진정성이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건 무엇 때문일까? 아마 진정성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한 척하는 대신 정말 솔직한 무언가를 내보이는 것. 진정성을 추구하는 척하지 않고 정말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을 들려주는 것. 진정성이 트렌드가 되며 많은 브랜드가 이를 표방하려 하지만, 진정성은 당연하게도 ‘진정성’ 없이는 드러나지 않기에 노력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진짜’와 ‘날 것’은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려 어떠한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만, 역설적이게도 모든 날 것의 감정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기에 솔직함을 내보이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마케팅적 접근까지 갈 것도 없이,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타인에게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기를 누구나 바라지만, 속마음을 털어놨을 때 마주하게 될 반응이 두려워 아주 사적인 감정까지는 드러내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올리비아는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도, 오직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노래에 담는다. 때로는 거칠고 우스울지라도 진심만은 가득한 마음들을 그와 어울리는 선율에 얹어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누군가는 그녀의 음악이 어리고 유치하다는 비판을 늘어놓지만, 그건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어린 올리비아가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최대의 진심이니까. 실제로 1집에 비해 2집이 한층 성숙해진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의 음악 또한 점진적으로 깊어지리라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대중의 평가나 가십을 걱정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Z세대에게 ‘쿨함’이란 어쩌면 쿨하지 못함을 쿨하게 인정하는 태도이지 않을까. 우리는 여태 이렇게 날 것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도 괜찮다고 말해줄 젊은 아티스트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속 열여덟의 올리비아는 작곡 활동에 있어 주된 영감의 원천이 절망이기 때문에, 절망이 걷히고 나면 좋은 음반을 만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야기가 꼭 절망으로부터 시작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되뇐다면서. 그러나 2024년의 나는 안다. 그녀는 절망 없이도 충분히 좋은 곡을 써낼 수 있는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해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으로서 걱정 가득한 과거의 올리비아에게 ‘지금의 아픔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너는 곧 멋진 동갑의 남자 배우와 사랑에 빠져 오로지 행복만으로 가득한 곡을 만들어 내고 말 거란다’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를 대표하는 정서가 절망과 분노임이 분명하기에 두 장의 앨범에 담긴 수록곡 대부분이 부정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전개되지만, 길었던 여름 내내 문자 그대로 ‘단 한 곡’뿐인 사랑 노래 <so american>을 질리도록 들은 나 같은 리스너도 있다는 사실을 알까. 현명한 그녀는 내 오지랖 없이도 그녀 자신에게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을 거라 믿는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슬픔과 절망을 충분히 만끽한 뒤, 종국에는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신의 커리어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한 올리비아에게 힘을 보탤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상과 부딪히며 직접 성장을 이뤄낸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녹아있는 새로운 감정들을 보듬고 응원하는 일. 그녀의 팬이 되기를 자처한 내가 그녀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은 그것뿐이다.


지금의 모습에서 더 나아지지 못할까 겁내던 열아홉 소녀는 1집에 이어 2집까지 연달아 히트시키고는, 그 증거로 서게 된 월드투어 무대에서 ‘다가올 미래가 두렵기보다는 기대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성공할 대로 성공한 슈퍼스타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만큼이나 이제 막 최전성기를 향해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팝스타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도 만만치 않게 흥미로움을 깨닫는다. 단 두 장의 앨범만으로 이렇게나 대단하고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준 그녀가 앞으로의 공연들에서, 그리고 발매될 새 앨범들에서 우리에게 또 어떠한 진심을 들려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진심을 들어버린 이상, 이야기 속 상대가 누구든 간에 진정한 주인공은 언제나 그녀 한 명뿐일 올리비아의 이야기에 기꺼이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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