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드림>: 개도, 로봇도 아는데 나만 모르는 관계의 법칙에 대하여
우연한 계기로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가까워진 누군가가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 되고, 그렇게 영원할 것 같은 관계가 어느 날 명확하지도 않은 이유로 틀어지고,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던 인연도 시간이 흐르면 그랬던 적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잊히는 일련의 과정은 언제 겪어도 새롭게 잔인하다. 여러 번 반복해 온 사이클이니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막상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면 처음 빠져드는 사랑처럼, 혹은 처음 겪는 이별처럼 정신을 못 차리곤 했다.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잃은 뒤 새로운 누군가를 얻는 일은 머리로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중했던 누군가를 잃어야만 하는 건지,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고도 다른 누군가를 새롭게 곁에 둘 수는 없는 것인지. <로봇 드림>이 아니었다면, 나는 인생의 난제와도 같은 이 과정을 영영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별이 있어야 만남이 있다는 사실을 언제쯤 온전히 받아들이게 될까. 강아지와 로봇도 아는 것을 인간인 나는 아직 모르겠다.
<로봇 드림>은 아주 단순한 영화다. 이 작품에는 입체적인 성격의 등장인물도, 마음을 울리는 명대사도, 심오한 비유나 은유가 담긴 장면도 없다. 하지만 누구나 겪어봤을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직관적이면서도 공감을 살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다. 많이들 <로봇 드림>을 <라라랜드>에 비유하곤 한다. 주인공들의 인연이 더는 유효하지 않지만, 다른 누구와 함께하든 간에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는 엔딩이 유사한 탓이겠지. 하지만 내게는 <라라랜드>보다도 <로봇 드림>이 보여주는 인연의 사이클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와닿았다. 오히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니 인생에 대한 객관화가 되는 느낌이었달까.
사는 동안 나는 종종 도그처럼 떠나왔고, 대체로 로봇처럼 남겨졌다. 떠나온 입장이었을 때도 남겨진 누군가에게 미련을 품기 일쑤였고, 남겨진 입장이었을 때는 떠나간 상대를 원망하면서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워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에 있어 상대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 궁금해했다. 더 이상 물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로봇을 떠나온 도그가 로봇과 비슷한 누군가의 실루엣에 그를 떠올리고, 영문도 모른 채 남겨진 로봇도 자주 도그의 꿈을 꾸는 장면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도그이고 로봇일 동안, 반대로 로봇이고 도그였을 누군가도 가끔은 저렇게 내 생각을 했을까 하여.
그래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새 로봇이 도그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꿈을 꾼 로봇이 비참한 얼굴로 꿈에서 깨어날 때, 6월의 해수욕장으로 돌아온 도그가 로봇의 흔적을 찾아 정신없이 땅을 팔 때, 그리고 새 반려 로봇 ‘틴’을 데리고 해수욕장에 놀러 간 도그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틴에게 열심히 기름칠을 해준 뒤 물에 닿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할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내게도 그랬던 적이 있기 때문에, 혹은 그러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가 되었기 때문에.
이별만큼 쓰라린 사실은, 다시는 없을 것 같던 관계가 사라진 후에도 인생은 멀쩡히 굴러간다는 것이다. 한동안 해변에 두고 온 로봇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던 도그도 얼마 뒤 새로운 단짝 ‘덕’을 만나 행복한 일상을 회복한다. 그러한 만남은 공원에서 연 날리는 것을 도와주다 이루어질 만큼 사소하고, 또 갑작스럽다. 그러나 그 또한 인생에 있어 짧은 순간에 불과할 뿐. 도그는 새로운 인연으로 지난 이별의 아픔을 잊어갈 때쯤, 그 또한 기대했던 정도의 인연이 되어줄 수 없음을 깨닫고는 실망하고 만다. 어떤 관계는 영영 대체가 불가능하다. 어쩌면 ‘어떤’ 관계가 아니라 ‘모든’ 관계가 대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나를 거쳐 가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그 백 명의 사람들은 내게 백 가지의 기쁨과 슬픔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유명한 ‘September’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도그에게 새 반려 로봇이 생기고, 로봇에게도 새 반려인이 생긴 이후 두 주인공들이 서로를 발견한 뒤에 보인 반응은 단연 영화의 백미였다. 이별은 물론 슬프지만 도그와 로봇은 서로를 잃은 뒤 더 성숙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도그는 마침내 로봇을 고장 내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고, 로봇은 이제 상대의 손을 아프지 않게 잡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로봇은 도그와 헤어진 후로도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September를 꼽고, 도그는 로봇과 헤어진 뒤로도 September가 들려올 때면 그때처럼 신나게 춤을 춘다. 지나간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하되, 너무 많은 미련은 품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기에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별의 아픔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장한 둘은 함께 쌓았던 추억을 거름 삼아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리라 믿는다. 내가 그랬고, 여러분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이 겪어봤을 복잡미묘한 관계와 그에 따른 감정들을 인간이 아닌 캐릭터를 통해 대사 한 줄 없는 단순한 스토리텔링으로, 그러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큼은 강력하고 명료하게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정말 놀라우리만큼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인간관계만큼 영상으로 잘 풀어내기에 뻔하고도 어려운 소재가 어디 있을까. <로봇 드림>은 그 어려운 것을 애니메이션이라는 똑똑한 형식을 빌려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훌륭하게 해냈다고 말하고 싶다. 때로는 어려운 말로 빙빙 돌려 말하는 것보다, 쉬운 단어만을 사용해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으므로.
그러니 이 영화가 한 땀 한 땀 공들여 직조해 낸 메시지를 이제는 실천해 보자. 인생의 한 챕터가 넘어간 뒤에도 미워지지 않는, 가끔은 그립지만 어디서 누구와 함께하더라도 잘 지냈으면 좋겠는 인연에게 숨죽여 묻는다. “Do you rem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