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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원산책 Aug 24. 2022

메리 크리스마스

2013년 12월 25일, 나는 영국의 브리스톨이라는 도시에 있었다. 그 해 가을, 공부를 하고 싶다며 그동안 일하며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일 년간 영국에 와있었던 것이다. 긴 시간을 머무는 게 아니기에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한인 교회가 아닌 현지 교회에 출석해 보기로 했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한 현지 교회에 4개월 남짓 출석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해외에서 보내는 것은 처음인지라 무척 설레었었다. 깨끗이 단장을 하고 기숙사에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교회 안팎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십 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는 빈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벽과 천장에 붙은 장식들, 그리고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들,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영화를 보듯 구경하고 있었다. 


11시가 되어 이제 막 예배가 시작하려던 차였다. 왼쪽 입구에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키가 크고 희끗희끗한 곱슬머리의 할아버지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매우 마르고 얼굴엔 주름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풍겨오는 심한 냄새 때문에 그가 노숙인 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봐온 노숙인들과는 조금 달랐다. 비록 낡은 것이었지만 네이비 색의 제복을 차려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게 특별히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모르는 듯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수십 개의 빈자리 중 바로 내 옆자리에 와 앉았을 때 내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나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도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화답을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코를 찌르는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졌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숨을 참아보았다.


갈등이 시작되었다. ‘냄새가 너무 심한데 난 예배 끝날 때까지 여기에 앉아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내가 벌떡 일어나서 갑자기 자리를 옮기면 그가 너무 민망하진 않을까. 이렇게 빈 자리가 많은데 왜 하필 내 옆자리에 앉았나. 처음 보는 얼굴인데 성탄절이라 특별히 온 걸까. 이 자리에 계속 있다가는 사람들이 이 냄새의 근원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온갖 잡다한 생각이 스쳤다. 냄새가 나에게 스멀스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숨을 쉬기가 어렵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제는 그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영겁의 세월 같은 5분 남짓의 시간이 지났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피해 자리를 옮기는 게 불편했던 지라 최대한 외면하면서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곤 서너 자리 옆으로 이동해서 앉았다. 고개를 돌려볼 용기가 없어 그냥 내내 앞만 주시했다. 


그날 성탄예배에서 어떤 말씀을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오직 내 옆에 앉았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만이 코 끝의 냄새와 함께 강렬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벌써 9년이나 된 이 기억이 마치 신발 속의 돌멩이처럼 아직도 종종 나를 멈추게 한다. ‘예수가 그때 그 자리의 나였다면 어떠셨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나처럼 냄새 때문에 그를 외면하진 않으셨을 것 같다. 은은한 향기가 나든 악취가 나든, 예수라면 그 누구에게든 주님께 나아오는 이에게 무조건적인 환대를 보여주셨을 것이다. 


그때 그곳으로 시간 여행을 간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9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 나는 그를 진심으로 환대할 수 있을까. 그가 내 옆에 앉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그 순간, “메리 크리스마스! 옷이 정말 멋지네요. 예전에 군인이셨나요?” 이렇게 화답하며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냄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의 옆에서 성탄을 축하하는 예배를 진심으로 집중해서 드릴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도 자신이 없다. 주님은 아마 이런 나를 보시곤 ‘아이고, 넌 나를 믿는다면서 대체 언제 클래?’ 이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실 것 같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것이 민망해지고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 순간이다. 그후로도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난 계속 같은 교회에 나갔지만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성탄의 기쁨을 함께 하러 용기 내어 교회에 왔다가, 옆자리에서 도망가 버린 나 때문에 더 마음을 닫아버린 건 아닐까 싶어 미안해지기도 한다. 내가 보내지 못한 사랑의 손길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 넘치게 받고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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