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222
디자인 솔솔
목소리를 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제는 갖게 되었으니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들렌 올브라이트-
추운 겨울이 지나고, 2020년에도 어김없이 따뜻한 봄이 고개를 들었다. 포근한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표정과 각자의 걸음으로 그들의 봄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매년 우리 곁을 스쳐가는 수많은 봄들 중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꽉 붙들어 매야 하는 봄이 있다. 절대 흘려 보내서는 안되는 봄. 1948년 4월 제주의 봄이다.
‘제주 4·3’ 이라고 말하는 1948년 제주의 봄은 우리가 떠 올리는 제주의 평온함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저항과 아픔의 역사이자, 국가 권력의 폭력이 수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짓밟은 사건이다. 국가는 정당한 재판 절차도 없이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1948년 그 아픈 계절에는 수많은 이들의 일상이 민주주의에서 는 있을 수 없는 불법행위들에 의해 망가졌다.
제주 4·3 이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총에 의해 민간인이 숨진 ‘관덕정 발포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민관 합동 총파업 등 제주도민의 저항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1948년 4월 3일 남로 당 제주도당이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저항하고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 하면서 무장봉기 했다. 정부는 군경과 서청을 동원해 강경토벌작전을 벌였다. 이로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 금지가 해제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희생당했다. 이를 ‘제주 4·3 사건’이라 한다.
제주 4·3이 남긴 것
시국을 잘 못 만났다는 죄로 농사짓고 고기 잡으며 살던 사람들이 총과 칼을 맞았고, 감옥에 끌려갔으며 행방불명 되었다. 시간이 흘러 4·3의 생존자들은 그 시간을 이렇게 말했다.
4·3 희생자는 2만 5000명에서 3만. 제주도민 9명 가운데 한 명이 죽었다. 총살과 대검은 여성과 어린아이들에게 더욱 잔인했다. 희생자 10명 가운데 1명은 만 열다섯 안된 아이였다. 많은 여성들이 모욕적으로 유린당했고, 더러는 강제 결혼을 해야만 했다. 고문은 임산부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
수많은 계절이 지났지만, 학살 혹은 고문을 목격하거나 당했던 이들에게 4·3의 장면은 평생 잊히지 않았다. 2013년까지 결정된 후유 장애인은 156명.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4·3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박춘옥 할머니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경찰이 보이면 돌아서 간다고 한다. 강렬 한 4·3의 기억은 많은 이들의 일상에 감춰지지 않는 흉터를 남겼다.
2020년 우리의 봄은
2014년에 제정된 ‘4·3 희생자 추념일’은 무엇보다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명예 회복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산 자들의 진정한 애도는 이 역사를 잊지 않는 것 아닐까. 그 것이 산 자인 우리가 너무나 억울하게 죽어간, 그 시대의 사람들 에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큰 희생이 벌어졌던 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이 역사를 통해 희망을 보고 평화를 구현해야 한다. 다시는 국가 폭력의 역사가 이 땅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 또한 진정한 명예 회복의 하나이지 않을까. 그 쓰라린 봄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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