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부터 노인까지, 피할 수 없는 '혐오'의 굴레
글 은하수, 랭보
디자인 플래시
지난 겨울, 극장가는 몸살을 앓아야 했다. 전체 연령가로 만들어진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한 이후, 해당 영화를 상영할 때에 노키즈관을 만들어달라는 성인들의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SNS를 통해 “애들이 영화관에 오면 민폐”, “전체 관람가 영화나 7세 관람가 영화도 노키즈관을 만들어달라”고 주장하며 노키즈관을 요구했다. 이에 또 다른 이들은 “성인의 잣대를 들이대 영화관에서 아이를 쫓아내려는 건 아동혐오”, “어른에게 피해 끼치지 않는 완벽하고 어른스러운 아이는 없다” 라고 맞받아치며 논란은 가속화되었다.
‘노키즈존’과 관련한 논란은 비단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 카페와 음식점에서 아동의 출입을 금지시하는 ‘노키즈존’은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동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는 공간들을 당신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음 한켠이 불편한가? 혹은,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하는가? 노키즈존은 나이를 이유로 내세워 아동이 누릴 권리를 빼앗는다. 이와 같이 나이를 이유로 내세워 특정한 연령층을 약자로 몰아가는 연령차별주의, ‘에이지즘’이 사회에 만연하다.
연령에 따라붙는 차별의 시선, 에이지즘을 사회에 투영하는 이 역시 어떠한 나이의 선상에 있는 사람이다. 연령차별 누군가에게 들이미는 행위는 다시 연령의 선상에 있는 자신에게 해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쓰임에 따라 자신에게 득이 되기도 하지만 해를 입히기도 하는 양날의 검. 나이에게 검을 겨누는 것 역시 양날의 성격을 지닌다. 양날의 검, 에이지즘.
에이지즘은 무엇인가
‘에이지즘’ 이란 사람의 연령에 따라 가해지는 고정관념과 차별을 정의한 용어이다. 한국어로 정의해본다면‘연령차별주의’정도가 되지 않을까. 사람이라면 성별, 인종, 종교와 무관하게 일평생에 걸쳐 에이지즘을 겪게 된다. 일정한 나이가 존재하는 이상, 당신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사람의 나이가 차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차별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사람은 나이 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에이지즘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정신의학자 로버트 버틀러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는 에이지즘이 ‘연령을 이유로 차별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나이로 개인을 차별함은 인종 또는 성별, 피부색으로 개인을 차별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에이지즘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혐오적 발언을 통해 나타난다. 나이가 부끄러워 숨기는 행동, “나이에 비해 좋아 보이시네요.”라고 내뱉는 불편한 칭찬, 일정한 나이에 당연시되는 은퇴, 나이에 따라 은근히 따라붙는 무시, 연령을 이유로 박탈되는 개인의 기회까지. 연령차별은 사회 속에서 당 연한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상대방의 나이가 어려서, 혹은 나이가 많아서 차별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이미 사람들은 어린 나이 때문에 차별 속에 놓였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겨누는 차별의 검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이제 에이지즘을 제대로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먼저 어린 아이들에게 향하는 연령차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다면 지금 <파란 2호: 일상의 경계>에서 확인해보세요!
STOP_AGEISM
나이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위치한 아이와 노인은 에이지즘의 주 타깃이되고 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어째서 무가치한 특성으로 여겨졌는지에 대한 답은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경제력은 곧 경쟁력이고 이를 상실한 사람은 무가치한 인간으로 낙인 찍힌다.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아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을 지니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제력을 이유로 아동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 또한 노인에 대해, 일각에서는 노인의 생산성이 청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지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무가치한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전히 생산성을 지닌 다수의 노인 인력이 존재한다. 아직 건재 한 노령인구를 사회에서 배제한 현 상황은 노인들에게 깊은 열패감만을 안긴다.
영화 <인턴> 은 많은 이들에게 인생 영화로 손꼽힌다.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채용된 70세 노인이 새로운 업무에 완벽히 적응하여 젊은CEO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는 스토리는 단순한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분명 현실에도 열정과 능력을 가진 노인이 존재한다. 다만, 사회가 그들을 거부했을 뿐이다.
나이의 노소는 단지 개인이 지닌 하나의 특성일 뿐, 그것이 개인을 대표할 수는 없다. 편견과 선입견을 지워나가며 수많은 차별과 혐오를 마주했듯이, 우리는 에이지(나이)에 대한 편견도 버려야 한다. 아동이 우리가 지나온 길이라면, 노인은 우리가 걸어갈 길이다. 나이 스펙트럼에서 자유로운 이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우리에겐 에이지즘을 올바르게 마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혐오하지 않기 위해, 혐오 당하지 않기 위해.
파란의 글을 마저 보고싶다면?
지금 바로 <파란>을 구매하세요! 재고 프리오더 진행 중!
브런치 메시지
파란 텀블벅 https://www.tumblbug.com/u/smwuparan
파란 인스타그램 DM https://www.instagram.com/smwu.paran.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