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에게 묻고 답을 얻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년)은 36세 되던 1711년 경 문인화가로 이름을 떨치며 혜성처럼 등장한다.
특히 독특한 구도와 화법으로 그린 진경산수화는 세간의 관심사였다.
예조판서는 좌의정 김창집에게 연락해 겸재 정선과의 모임을 주선했다.
별제와 몇몇 화원들이 겸재의 화실을 찾았다.
아직 관직이 없었던 겸재의 집은 소박했다.
작은 사랑방을 화실 겸 서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진한 먹 냄새가 풍겼다. 벽장문 쪽에는 수백 권이 넘는 서책과 붓과 벼루가 놓여 있고, 창가에는 사생한 그림들을 걸어 놓았다.
책상 앞쪽에는 특이한 구도의 금강산 그림의 초본이 놓여 있다.
별제가 인사를 건넨다.
“이렇게 겸재 선생을 뵙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임금께서 세화로 하사할 십장생도를 그리라고 하명하셨기에 도움을 얻고자 찾아뵈었습니다.”
겸재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십장생도는 도화서가 전문인 줄 아오. 내게 무엇을 묻고자 하는 것이오?”
“십장생도는 몽유도원도와 요지연도, 해학반도도를 바탕으로 이미 완성된 그림입니다.
하지만 그 뜻이 밝혀진 것은 무릉도원을 뜻하는 복숭아와 동굴, 양심이나 영원성을 뜻하는 붉은 해 밖에는 없습니다.
나머지 도상들은 그저 장수하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조 판서나 홍문관에서도 도교 성격이 강하다고 불편해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화원들은 앞선 그림과 초본을 바탕으로 무심하게 그리기를 반복했습니다.
학, 사슴, 거북, 영지, 하늘, 구름 괴석, 바다, 소나무, 대나무 따위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음, 알겠소이다. 잠시 기다려 보시오.”
겸재는 벽장문 안쪽에서 둘둘 말린 그림 한 점을 꺼내어 온다.
소나무 위에 앉은 두 마리 학이 아침 해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쌍학영일, 双鶴迎日]이라는 그림이다.
마치 십장생도의 한 부분을 그린 것처럼 보였다.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소재로 진경산수화를 창안한 화가이다.
이후 많은 화원들이 진경산수화를 배우기 위해 겸재의 화실을 드나들었다.
진경산수화는 조선 땅의 실경을 바탕으로 그리는 산수화이다.
이 때문에 많은 선비들과 화원들은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풍류를 즐기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겸재가 그린 [쌍학영일]은 조선 땅의 풍경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 아닌 상상력으로 그렸다.
겸재가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나는 이 그림이 진정한 진경(眞景)이라 생각하오.”
이 말을 들은 화원들은 놀랐다.
“진경산수화의 창시자인 겸재 선생께서 도교 성격의 그림을 진정한 그림이라고 하십니까?
저희를 놀리시는 것입니까?”
[겸재 정선/쌍학영일-두 마리의 학이 아침 해를 맞이하다/종이에 담채/18세기/왜관수도원 소장.
이 작품이 있는 겸재 정선 화첩은 독일에 있었는데, 2005년 우리나라에 영구대여 방식으로 환수되었다. 그림 상단에는 遵海而東 或此境界(바다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혹시 이런 세상이 있을까)라는 화제가 있다. 해석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의미심장한 글이다. 바다를 따라 동쪽은 조선을 뜻한다. 당시 조선을 동국이라고 불렀고, 진경산수화의 다른 이름도 동국진경이다. 경계는 막다른 지점이나 세상을 뜻한다. 청나라와 다른 세상, 양심의 세상을 의미할 것이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그림을 찬찬히 살펴봅시다.
저 멀리 보이는 해는 무슨 뜻이오?”
“아, 네. 해입니다. 붉게 칠한 것은 아침에 솟아오르는 일출을 뜻합니다. 붉은 해는 붉은 마음(丹心)과 같다하여 양심을 뜻합니다.
또한 시간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알고 있네요. 그렇다면 학이 아침 해를 바라보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학이 해를 보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총명하게 생긴 젊은 화원이 대답한다.
“소나무 위에 학을 그린 송학도(松鶴圖)는 장수를 바라는 장생도의 일반적인 도상입니다.
겸재 선생께서는 이 송학도에 아침 해를 함께 그렸고, 무엇보다 학이 아침 해를 바라보는 모습이 특이합니다.
이는 학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붉은 해는 양심인데 학이 붉은 해를 바라본다는 것을 연결시켜 추정하면, 학은 양심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소나무는 영원성을 의미하니 변치 않는 신념의 뜻이지요.
이를 모두 합치면, 사람은 양심을 추구하는 변치 않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가 됩니다.”
겸재가 무릎을 치며 말한다.
“정확합니다.
진경산수화는 조선 땅을 무릉도원처럼 새로운 이상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림입니다.
이 [쌍학영일]이라는 그림은 이상향을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입니다.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없으면 무릉도원은 그저 신기루에 불과하지요.
제가 금강산 그림보다 이 그림이 진경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겠습니까?”
[겸재 정선/고산상매-조용한 산에서 매화를 감상하다. 이 작품은 임포의 매처학자라는 고사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송나라 문인 임포(林逋)의 이야기를 담은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그림이 생각납니다.
고사에 따르면 임포는 학문이 깊고 심성이 맑아 명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패한 정치에 환멸을 느껴 서호(西湖) 근처에 있는 조용한 산기슭에 매화를 심고 키우며 결혼도 하지 않고 20여 년 동안 세상과 연을 끊고 살았다고 합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매화로 아내(梅妻)를 삼고 학을 아들(鶴子)로, 사슴을 집안 심부름꾼(鹿家人)으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겸재가 눈짓을 하자, 총명한 화원에 말을 이어간다.
“이 고사에서 매화는 절조의 상징입니다. 학(鶴)을 아들처럼 여겼다니 이 또한 양심의 뜻일 것입니다. 사슴은 집안을 뜻하니 신선세계를 뜻하겠군요.”
“아, 단번에 십장생도에 나오는 학과 사슴의 뜻이 밝혀졌군요.”
[위-17세기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십장생도의 거북. 두 마리의 거북이 서로 마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18세기 이후에 창작된 십장생도 거북의 모습과 비교하면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거북의 입에서 나오는 영기(靈氣)의 유무이다. 17세기에 창작한 그림에는 영기가 없다. 영기를 뿜는 거북은 현실에는 없는 상상의 동물에 가깝고 이는 도교 성격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양심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거북은 무슨 뜻입니까?”
겸재가 대답한다.
“거북은 한자로 구(龜)인데, 이를 거복(居福)으로 풀이합니다. 거복은 복이 있는 곳을 뜻합니다.
복(福)은 세상에 필요한 올바른 정신과 재부를 뜻합니다. 태평성대는 풍요한 세상이어야 하니 거북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거복(居福)은 세월이 지나면서 거북으로 굳어졌고 한자는 사라졌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조선과 청나라의 여러 책들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나오는 기록이다.
“흔히 장수의 상징이라고 알고 있는 동물에게 이런 뜻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닙니다. 주역과 천문학을 두루 공부했습니다.
무엇보다 성리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겸재 정선은 이이 율곡이 해석한 조선성리학을 체계적으로 배운 학자이다.
특히 중용, 천문학에 능통해 도설경해(圖說經解)라는 책을 지었으며 관상감의 천문학 겸교수(兼敎授)을 지낼 만큼 주역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겸재의 공부는 태극구도의 [금강전도]에 잘 나타나있다.
[겸재 정선/금강전도/가로 94.5cm, 세로 130.8cm/비단에 수묵담채/1734년/리움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 겸재 정선(1676∼1759)이 영조 10년(1734)에 내금강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진경산수화를 대표한다. 원형구도를 바탕으로 태극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상상의 모습이다. 실경을 참조했지만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풍경이다. 금강산이 끝나는 부분에는 엷은 청색을 칠하여 우주본연의 시공간으로 확장했다.
진경산수를 실경산수나 사실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이며, 서구 사실주의에 대한 열등감이다.]
“십장생도에서 붉은 해, 학, 사슴, 거북, 소나무, 복숭아나무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나머지 하늘, 구름, 괴석, 영지, 대나무, 물, 수풀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 답은 별로 어렵지 않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