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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Feb 09. 2020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스카이72하늘코스-최고인기 퍼블릭

어느 봄날 스카이72 하늘코스에서 낯선 사람들과 ‘조인 라운드’를 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다녀본 곳이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라운드 하려니, 저의 평소 골프 친구들은 시간이 잘 맞지 않거나 “퍼블릭인데 요금이 비싸다”며 머뭇거리더군요.


저와 ‘조인’한 분들은 나이가 40대로 보이는 골퍼들이었습니다. 40대 후반이라고 밝히는 남자와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인 듯 보이는 여자는 일행이었고, 또 다른 남자는 저처럼 홀로 왔습니다. 남녀 일행은 골프 동호회 월례모임에서 알게 된 골프 친구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80대 중반 타수’ 수준의 장타자였고, 여자는 방송에 나오는 프로골퍼들처럼 체형과 스타일이 세련된 ‘싱글 디지트 핸디캐퍼’였습니다. 두 사람은 스트로크 내기를 했습니다. 여자가 돈을 꽤 따서 라운드가 끝나자마자 “오빠 고마워요. 안녕~!” 하며 먼저 떠났습니다. 또 다른 남자는 40대 중반 나이의 회사원이라 했는데 체격이 컸고 어마어마한 장타자로 90대 초반 타수 실력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제이린드버그’와 ‘PXG’, ‘타이틀리스트’ 브랜드의 옷을 입었습니다. 여자는 긴 다리를 드러내는 짧은 스커트에 무릎 위까지 오는 스타킹을 신고 ‘파리게이츠’ 브랜드 분홍색 모자를 썼습니다.


스코어 카드를 보니 남자들 중에서는 제가 가장 낮은 타수를 쳤는데도, 동반자들이 워낙 장타를 치고 멋진 스윙을 하는 터라 오히려 가장 못 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문화 흐름을 만든 골프장


여자는 라운드 중 틈틈이 ‘셀피’ 사진을 찍었습니다. 캐디는 사진 잘 나오는 장소와 각도를 가르쳐주고 친절하게 직접 찍어주기도 했지요. 바로 옆 인천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팔짝 뛰어오르며 비행기를 잡는 시늉하는 사진도 찍었습니다. 사월 말이었지만 진녹색 보드라운 양잔디가 지평선까지 펼쳐진 이국적인 모습의 스마트 폰 사진을, 그 자리에서 여기저기 전송하며 자랑하는 듯했습니다.

뻘밭과 바위산이던 ‘섬 구석’

활주로와 골프장이 있는 이 자리는 스무 해 쯤 전에는 개펄과 염전과 야산이었습니다.

<스카이72> 골프장의 ‘하늘코스’와 ‘오션코스’ 자리는 바위산이었고 지금의 레이크, 클래식 코스 자리는 폐염전과 뻘밭이었다고 합니다.

월미도 부두에서 아침저녁으로 왕복하는 큰 배에 차를 싣고 들어가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운전하고 가던 일차선 길의 황량한 90년대 풍경을 기억합니다. 염전과 개펄 사이 길가에 엉겅퀴 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었지요. 오후 7시에 마지막 나오는 배를 놓치면 을왕리 해변의 여인숙에서 하루 밤 자고 나올 수밖에 없던 까마득한 어촌 섬이었습니다.

이 섬에 국제공항이 생기면서 2002년 인천공항공사에 사업시행자지정을 받고, 2004년 9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서 골프장 사업계획승인을 받아, 2005년 7월 ‘하늘코스’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해 9월 레이크코스, 링크스코스, 세계 최대 규모의 골프연습장인 ‘드림골프레인지’(400야드, 300타석), 10월 말엔 ‘오션코스’가 문을 열었습니다.


‘홍콩의 운명’을 닮은 방식

이 골프장이 생기기 전 우리나라 골프장들은, 땅을 사서 골프장 조성 인허가를 받고 회원권을 ‘선분양’ 해서 들어온 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여 만드는 ‘회원제 골프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부 있던 대중제(퍼블릭) 골프장들은 회원제 골프장을 조성할 때 18홀 당 9홀씩 의무적으로 조성해야 했던 구색 갖춤이어서, 회원제 ‘정규 코스’에 비해 규모와 시설이 열악한 ‘비정규 코스’들인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카이72>는 공기업(인천공항공사) 땅을 일정 기간 임대해서 건설하고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빌린 땅에 골프장을 짓고, 일정 기간 동안 임대료를 내며 운영하는 계약을 맺은 것이지요. 다른 골프장들은 땅의 소유권을 가졌기에 부동산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이곳은 오로지 운영 수익만으로 건설비와 운영비를 충당하고 이익을 내서 투자자에게 갚음 해야 합니다. 당연히 위험부담이 많은 사업이었습니다. 영국은 홍콩을 20세기의 100년 동안 사용할 수 있었지만, ‘스카이72’ 사업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십몇 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미래 골프장의 현재 모습”

그런데도 ‘스카이72’는 국내의 내로라 하는 ‘정규 코스’에 못지않은, 오히려 그보다 높은 수준의 ‘국제 규격 코스’ 대중제(퍼블릭) 골프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골프장이 문 열 때와는 달리, 지금 우리나라 퍼블릭 코스들 중에는 웬만한 회원제 골프장보다 나은 규모와 시설을 갖춘 곳이 많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이런 흐름을 필연적으로 나은 것인지, ‘스카이72’가 이런 변화 흐름의 발원지인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스카이72’가 이끈 골프장 패러다임 전환과 문화 혁신이 이런 변화를 촉진하고 앞당겼음은 분명합니다.

‘스카이72’는 한국에서 “골프장의 미래를 만들어온 골프장”입니다. 이곳을 시작으로 골프장들은 ‘앉아서 손님을 받는’ 거만한 ‘갑’의 모습을 점차 지워가기 시작했고, 미흡하나마 저마다의 특색과 문화 만들기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이 골프장의 최고경영자는 “생존하기 위해 현재에 충실하다 보니 그게 미래의 모습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다른 식으로 하면 “미래 골프장의 현재 모습”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4천억 원 넘는 공사 견적을 받고...”

“가장 싸게 드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코스를 만들어야 했다”

스카이72 골프장 조성계획과 시공에 깊이 참여하고 ‘하늘코스’와 ‘레이크코스’를 설계한 노준택 님의 회고입니다.

사업주가 돈 많은 재벌그룹이었다 해도, 일정 기간 동안의 임대 사업이라는 제약 때문에 조성비용을 많이 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골프장 건립, 운영 사업자는 골프업계 전문인들이었습니다. 당시 골프 회원권 판매, 중개업체인 ‘에이스회원권거래소’와 ‘골프다이제스트’ 잡지를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골프를 잘 알고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자금은 넉넉하달 수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처음 개발 비용을 산정했던 업체는 4천억 원 넘는 견적을 제출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 금액을 들여서는 성립할 수 없는 사업이었기에 이들은 가장 실질적인 방법을 찾아서, ‘현장’과 ‘열정’과 ‘창의성’으로 부딪혀 나갑니다.


현장에서 찾아낸 저비용 고품질

개펄이었던 땅이라 지반이 연약한 문제, 바닷물 염분이 올라와 잔디 생육이 어려운 문제 등 조성에 많은 비용이 드는 수많은 과제들을, 현장에서 맞닥뜨려 나온 창의적인 방법으로, 현장의 자재를 활용하여 저비용으로, 그러나 효과적으로 해결합니다. 오션코스와 하늘코스 자리의 산을 깎은 흙과 골재를 클래식 코스와 레이크 코스 자리의 뻘밭을 메우는 데 쓰는 등의 방법들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면서 비용은 크게 절감되고 시공의 질은 오히려 높아졌다 합니다.

이 조성 과정에서 기본 계획과 시공을 맡은 ‘오렌지엔지니어링’의 실무자였던 노준택 님에게는 ‘하늘코스’의 설계도 맡겨집니다. ‘오션코스’ 설계는 ‘잭니클라우스 디자인팀’에 맡기는 한편, 하늘코스는 이 프로젝트의 성격을 잘 아는 국내의 젊은 설계자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설계자는 가장 실질적인 조성 방법을 경영진과 함께 모색하며 하늘코스를 디자인합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노준택 님은 ‘골프다이제스트 코리아’가 ‘2019~2020 대한민국 랭킹 1위 골프코스’로 선정한 ‘웰링턴CC’의 와이번코스 설계자이자 그리핀코스 리노베이션 설계자가 됩니다) 그는 지금도 이 하늘코스를 “가장 잊지 못할 설계 작품”으로 꼽습니다.


역사의 순간이 함께한 곳

스카이72가 문을 연 뒤 매년 많은 국내외 골프대회들이 이곳에서 열렸고, 여러 평가 기관들이 코스의 우수성과 경영 성과를 높이 사는 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2008년부터 <LPGA하나은행챔피언십>이 해마다 열리게 되면서 ‘오션코스’는 국제적으로도 주목 받게 됩니다.


그런 한편 하늘코스에서도 많은 프로골프대회가 열리고 국내외 골프 역사에 남을만한 행사와 사건들이 이어집니다. 개장 이듬해인 2006년 5월, 당시 천재소녀로 세계의 주목을 받던 미셀위 선수가 남자 프로대회인 <SK텔레콤오픈>에 참가해서 남자 프로선수들 못지않은 장타력을 보이면서 남자대회 예선 통과라는 역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보미 선수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투어 상금왕을 차지하고 일본으로 떠나기 전 KLPGA투어 역대 최소타로 역전 우승한 대회가 이 코스에서 열린 <2010 KB국민은행 스타투어>였으며, <KPGA챔피언십>, <KLPGA챔피언십> 등의 메이저 대회가 이 코스에서 열려 왔습니다.


수도권 서부에서 가장 인기 높은 코스


“비싸도 하늘코스!”

이 골프장을 찾아오는 골퍼들에게 인기가 가장 높은 코스는 ‘하늘코스’입니다. 골프 전문가들 가운데는 ‘오션코스'를 높이 치는 이들이 많은 반면에 일반 골퍼들은 대개 하늘코스를 좋아합니다.

제가 ‘조인골프’를 신청할 때 보니 오션코스 보다 하늘코스 예약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날도 ‘풀 부킹’으로 꽉 차있었습니다. 평일인데 그린피 금액이 22만원으로, 오션코스 보다 1만 원 정도 높았습니다. 함께 ‘조인’한 라운드 파트너들에게 물어보니 세 명 다 오션코스 보다 하늘코스가 좋다 하더군요. 더 예쁘고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오션코스는 좀더 어렵고 거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6번 홀

설계자인 노준택 님은 “하늘코스는 보기 플레이어도 편안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늘코스에서 남자 프로골프대회가 여러 차례 열리면서 코스 전장이 짧다는 이야기도 들리기에, 개장 몇 년 뒤 코스 전장을 200야드 이상 늘리는 ‘챔피언 티’를 별도로 설치했다 합니다. 그런데 막상 대회를 치를 때는 그 티잉 구역을 거의 사용하지 않더라고 합니다. 관계자에게 물으니 “프로 대회도 점수가 잘 안 나오면 흥미가 떨어진다” 하더랍니다. 


'비단결' 벤트그래스 페어웨이

하늘코스는 ‘벤트그래스 페어웨이’로도 유명합니다. 보통 골프장들이 그린 잔디로 사용하는 섬세한 양잔디 품종인 벤트그래스를 이 코스에서는 페어웨이에 깔았습니다. ‘제주나인브릿지’에서 페어웨이에 벤트그래스를 사용한 이후 제주 이외 지역에서는 최초의 시도였고, 퍼블릭 골프장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모험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늘코스에 심은 크리핑벤트그래스(Creeping Bentgrass)는 모든 잔디 종류 가운데 관리하기에 가장 까다롭다고 합니다. 가장 짧게 깎을 수 있고 밀도가 높은 특성으로 골프공을 치는 느낌이 가장 좋은 잔디이지만 본디 추운 지방이 고향인 품종이라 잘 자라는 기온이 섭씨 15도~25도로 낮은 편이며, 덥고 습한 여름 기후에 취약합니다. 건조함에 견디는 능력도 약해서 우리나라 내륙지방 골프장에서는 유지 관리하기 어려우며 특히 손님을 많이 받아야 하는 대중제(퍼블릭) 골프장에서는 사용이 불가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런데 퍼블릭 골프장인 이곳에서 사용하여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이지요. 영종도의 바닷바람이 여름 더위 속에서도 잔디를 식혀줄 것이라 믿었고 그 모험이 적중했다 합니다.

하늘코스의 높은 인기에는 벤트그래스의 ‘보드라운 느낌’도 큰 몫을 합니다

18번 파5 홀

무심한 듯 독특한 멋

바닷가에 있는 골프장이지만 수려한 해안선이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낭만적인 바다가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대양의 수평선을 끌어안는 풍경도 아니지요. 바다는 뻘 빛을 머금은 짙은 은회색 빛이고 그 바다를 가로지르는 인천대교 너머 송도 신도시가 보입니다. 바로 옆에는 인천국제공항 활주로가 있어 코앞에서 몇 분 간격으로 대형 여객기가 뜨고 내리며, 비행기 엔진 소리도 끊임없이 들립니다.

나무와 꽃을 공들여 가꾸어 놓은 것도 아닙니다. 하늘코스 자리는 본디 바위가 많은 구릉이었는데 이 산을 깎아 클래식 코스와 레이크 코스 자리의 뻘밭을 메웠다 합니다. 산이었던 자리에 해송과 아까시나무들이 있기는 하지만 모양을 낸 조경수들은 아니어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바위언덕과 벌판의 느낌이 날 뿐입니다. 특별한 조경 관목을 심은 것도 아니고 깊은 러프 너머 각시패랭이와 금계국, 개똥풀 같은 야생화들이 제멋대로 피어납니다. 

8월 초에 들렀을 때는 코스 곳곳에 나비바늘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심한 조경이 진녹색 벤트그래스 잔디와 어우러져 묘하게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냅니다. 함께 라운드 한 골프 구력 이십몇 년의 여자 분이 "코스가 너무 예쁘다"고 연신 감탄하더군요. 

골프장의 원래 멋은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인상적인 홀들


이 골프장의 4개 코스는 각각의 특성과 역할이 다르게 설계되었습니다. 그 중 오션코스는 ‘샷 밸류’가 높은 ‘토너먼트’형 코스를 지향하였고 하늘코스는 보기 플레이어들도 재미를 느끼도록 설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코스를 쉬운 코스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선 충분한 길이를 확보하고 있고 그린도 쉽지만은 않기에 필요할 경우 단계별로 어려운 세팅이 가능하지요. 골퍼의 샷 기술을 다양하게 시험하고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는 설정이 오션코스 보다 덜 다채롭기는 하지만 승부의 변수를 만드는 홀과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홀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개 홀을 살펴봅니다.


2번 홀 - 영웅적인 ‘원 온’의 꿈

이 홀에서 ‘원 온’이 될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장타자입니다. 323미터(레귤러 티 기준 285미터)의 짧은 홀로, 높은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더 가까워 보여서 장타자들에게 ‘원 온’을 생각하게 합니다. 전형적인 ‘영웅형’ 홀이지요. 짧은 대신 그린 주변 땅 모양이 불규칙하고 그린 바로 앞의 크고 깊은 벙커가 난도를 조절하는 홀입니다. 드라이버 티샷을 해서 짧은 어프로치를 남길 지 티샷을 짧게 해서 자신 있는 ‘풀샷’ 거리를 남길 것인지 생각하고 치는 홀입니다. 이런 홀은 토너먼트 대회에서 ‘원 온’을 유도하는 세팅으로 게임 승부의 변수를 만들 수도 있으므로, (극적인 스토리를 좋아하는 제 생각으로는) 후반에 있었다면 더 드라마틱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7번 홀 - 자연 바위가 만든 홀

티샷을 잘 치고 나면 장벽 같은 바위가 가로막습니다. 가장 좋은 공략법은 바위 직전의 페어웨의 끝까지 공을 보내놓고 130~140미터 정도의 아이언샷으로 그린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레귤러 티 기준 240~250미터 정도 티샷이 필요합니다. 

티샷의 비거리 능력이 중요한 홀이지요. 티샷이 짧으면 거리도 많이 남고 바위 장벽이 부담되기도 합니다. 그린 주변의 굴곡도 많아서 굳이 바위장벽이 필요 없었을 듯한 홀인데, 원래 있던 바위를 많이 깎아낸 것이라 합니다. 바위가 핸디캡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고, 시각적으로 특이한 기억으로 남는 인상적인 홀입니다.


15번 홀 - 장타자는 그린을 향해

인천공항을 오가는 도로에서 보게 되는 홀입니다. 스카이72의 쇼윈도 같은 홀이랄까요. 페어웨이와 그린 사이에 놓은 크릭(creek)으로 바닷물이 드나듭니다. 티잉 구역에서 보면 왼쪽 그린 앞과 오른 쪽 페어웨이가 나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골퍼는 오른쪽 넓은 페어웨이 쪽으로 티샷을 보냅니다. 왼쪽 페어웨이로 넘기려면 레귤러 티 기준 240미터 이상 쳐야 하지만, 그린 앞에 깊고 큰 벙커가 있어서 왼쪽 페어웨이에 안착해도 남은 어프로치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남자 프로대회가 열릴 때 보니 프로 선수들도 거의 오른 쪽 페어웨이를 선택해서 짧은 아이언 샷으로 핀에 가까이에 공을 붙여 버디를 노리더군요. 대회 때는 이 홀부터 승부처가 시작됩니다. (아마추어들의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7번 홀 - 게임의 승부처

“하늘코스는 똑바로 칠 줄 알면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17번 홀에서는 샷 메이킹 능력이 있으면 유리합니다. 티샷 낙하지점 오른편의 커다란 바위를 피해 쳐야 하고 그 앞 190미터 거리의 페어웨이 벙커를 넘겨야 편안한 그린 공략이 가능합니다. 티샷은 페이드, 그린 공략은 핀의 위치에 따라 다른 기술 샷이 필요한 설계입니다. 티샷한 공이 왼쪽으로 짧게 가면 긴 클럽을 잡아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 이 경우 그린 앞의 연못을 피해야 하는 어려움이 커집니다. 하늘코스에서 대표적으로 어렵고 도전적인 홀입니다. 이 코스에서 치러진 대회에서는 이 홀이 가장 극적인 승부처가 되곤 했습니다.


18번홀 - 아마추어에겐 어렵다

18번 홀 티잉구역의 '복수의 종'

장타자도 ‘세컨드 온’  하기 어려운 긴 파5홀(레귤러 티 기준 547미터)입니다. 그린이 높은 곳에 있고 그 앞에 크릭(creek)이 있어서 세 번에 나누어 공략해야 하는데 워낙 길어서 세 번의 샷 모두 잘 맞아야 합니다. 공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프로들은 마음 비우고 치면 어렵지 않지만, 아마추어들에게는 세 번 다 잘 맞추는 게 쉽지 않습니다. 힘이 들어가서 엉뚱한 미스 샷으로 연못이나 벙커에 공을 빠뜨리기 쉽고, 그런 경우 침착하지 않으면 많은 타수를 잃기도 합니다.

게임의 마무리로서 인상적인 홀입니다


13번 홀 - LPGA 시찰단 이야기

2008년 <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가 스카이72에서 처음 열리기 전에, LPGA 시찰단이 오션코스와 하늘코스를 살펴보았다 합니다. 하늘코스도 유력 후보에 올라 코스를 돌아보는 중에 13번 홀을 살펴보다가, LPGA 시찰단은 ‘이 코스 설계자가 누구인가’ 물었다 합니다. 한국의 젊은 설계자가 작업했다는 답을 듣고 숙의한 끝에, ‘잭니클라우스 디자인팀’이 설계한 ‘오션코스’를 선택 했다고 합니다.

자연 비탈을 경계로 페어웨이가 둘로 나뉘는 구성의 홀입니다. 왼쪽 페어웨이로 티샷을 잘 보내면 짧은 어프로치 샷이 남는......  이코스에서 열리는 남녀 프로대회를 보면 도전에 대한 보상이 있는 홀로 플레이 되던데 LPGA 시찰단은 왜 이 홀에서 그런 판단을 내렸던 걸까요? 혹시 국내 젊은 설계가의 작품이라니 편견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요. 

이곳에서 라운드 할 때 저마다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 있겠습니다.


양잔디 관리 노하우


그린스피드 목표 3.0

이곳의 코스 관리 기준은 그린 예초(깎기) 매일 1회, 페어웨이 예초 주 4회라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린을 매일 2회 깎을 때도 있는데 프로 대회가 열릴 때는 그린을 3회 이상 깎고 페어웨이는 매일 깎는다고 합니다. 대회를 준비할 때는 러프의 길이를 대회 주최측이 요구하는 길이로 맞춘다 합니다. 그린 스피드는 보통 때는 스팀프 미터 계측 기준 3.0미터를 목표로 관리한다고 하는데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2.7 미터 이상 나오는 것이 보통인 듯합니다. 대회 때는 주관 협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스피드를 낸다고 하며 프로대회 때 스피드는 대략 3.5 미터 정도로 알려집니다. (그린스피드와 스팀프미터에 대해서는 앞의 <페럼클럽> 편에 적었습니다)

벤트그래스 잔디의 페어웨이(왼쪽), 켄터키블루그래스 잔디 러프(오른쪽)

'양잔디 관리 인재 사관학교'

앞에서 말했듯이 스카이72 하늘코스에는 양잔디 가운데서도 가장 예민한 벤트그래스 품종이 깔려 있습니다. 이 잔디가 가장 힘들어하는 한여름에도 하루에 100팀 이상의 손님이 이 코스에서 라운드 합니다. 그런데도 하늘코스의 잔디 상태는 고객들로부터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영종도의 기후는 서울과 비교하면 여름은 2~3도 낮고 겨울은 반대로 2~3도 높다고 합니다. 과거에 염전이 있었던 곳이라 햇살이 좋고 바람도 시원하게 부는 편입니다. 그래도 장마철이 있고 덥고 습한 여름에는 잔디가 쉽게 망가지고 전염병에 취약하게 됩니다. 여름철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몇 개월, 몇 년에 걸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비료를 주고 배수 관리 공사를 지속하고 통기 작업과 배토 작업을 하는 등의 노력을 빈틈없이 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이 골프장에서 노하우를 쌓은 잔디 관리자들이 전국 유명 골프장으로 영입되어 가고 있다 합니다. ‘양잔디 관리의 인재 사관학교’ 역할도 하는 셈입니다.


본디 골프 코스는 버려진 땅에 만들어졌던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해안 사구가 있는 유럽이나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버려진 땅이란 거의 없습니다. 한국의 골프장들은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는 땅을 깎고 돋우어 빚은 것입니다. 비좁고 인구가 많은 국토의 어딘가에 골프장을 짓는 순간부터 당연히, 다른 용도보다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할 사회공동체적 의무가 잉태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의무를 치르는 일은 첫째로, 코스를 잘 관리하는 본업에 충실한 것에서 시작한다고 봅니다. 잔디라는 식물은 우리나라 땅에서 보기 힘들던 것입니다. 잎이 넓은 들잔디가 자생하기는 했다는데, 골프를 즐기기에는 잎이 좁고 짧게 깎을 수 있는 양잔디 계열 품종이 가장 적합합니다. 이런 잔디들은 강추위와 무더위가 극명하게 오가는 우리나라 기후를 견디기 힘들어 하기에 예전에 <안양CC>에서는 ‘잔디연구소’를 만들어 ‘안양중지’라는 품종을 골라내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스카이72에서는 양잔디에 대해서 기왕에 노하우를 쌓고 있으니 이 부문에서도 의미 있는 연구와 실용 지식들이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새로운 ‘골프 문화 현상’


이 코스에는 상대적으로 ‘젊고 스타일리시한’ 분위기가 늘 흐릅니다.

일례로, 저와 ‘조인라운드’ 했던 이들이 골프를 즐기는 스타일에는 과거의 근엄한 골프장에서는 볼 수 없던 자유분방함과 젊음을 지향하는 멋이 깃들어 있었지요. 퍼블릭 골프장이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은 웬만한 회원제 골프장보다 이용료가 비싼 곳입니다.

스카이72 골프장이 붐비는 데는 수도권 서부 지역 골프장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이유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용료가 제일 비싼 하늘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는 것은 수요 공급을 떠나 ‘문화 현상’이라고도 보입니다.


그런 까닭에서, 다음 차례에 ‘오션코스’를 다룰 때에는 ‘동심 경영’과 ‘FUN 경영’ 등 이 골프장을 설명하는 키워드 들과 그 실현 아이디어들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이 골프장에는 붕어빵, ‘백돌이’ 전용 샤워부스, 화장실에 비치된 화장품, 촌철살인 골프 유머.복수의 종 등 기발하고 재미난 것들이 많고, 그 내용들이 책 한 권에 담을 만큼 많아서 단행본 책으로도 나왔습니다. <동심경영(황인선, 스카이72 지음 / 소담출판사 2018)>

이 ‘동심경영’ 책은 스카이72의 재미난 마케팅 아이디어들을 모아 설명한 것 뿐 아니라 이 골프장이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제안해온 혁신의 내용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골프 업에 관계하는 이들 가운데는 이러한 ‘FUN’ 요소가 스카이72 성공의 요체라고 보는 분도 많습니다.

그런 한편 저는, ‘FUN’이나 ‘동심’이 이 골프장 경영의 부분적이거나 한시적인 방향일지언정, 진정한 ‘본질가치’는 아니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차례에 ‘오션 코스’ 편에서 이 부분도 잠깐 살펴서 <스카이72> 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글/ 류석무

사진은 주로 스카이72골프앤리조트에서 제공한 것을 사용하였으며 일부는 글쓴이가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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