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골프를 함께 한 사람 가운데 골프 규칙을 가장 잘 지키고 플레이 매너도 우아했던 이는 강 아무개 라는 농부다.
어릴 적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한 후 갖은 거친 일을 하다가 한 때 조직폭력 무리에 휩쓸려 손가락 하나가 잘리기도 했던 그는, 건설 노동자로 일하며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소규모 연립 주택을 직접 지어 파는 것을 거듭한 끝에,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 유기농 과수를 재배하고 있다.
십여 년 전, 어쩌다 참가한 자선 골프 모임에서 같은 조가 되어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 그는 ‘빌라 집장수’ 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날 레이크사이드 남코스 파5홀의 워터 해저드에 공이 빠졌을 때 그는, ‘공이 빠진 데서 핀에서 먼 곳으로 직 후방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 어깨 높이에서 드롭’하여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진중하고 멋져 보여서 내가 ‘골프 규칙을 참 잘 알고 정확하게 지키시는 군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제가 사실 가방 끈도 짧고 무식해서 규칙은 잘 모릅니다. 그냥 애매할 때마다 저에게 불리한 쪽으로 적용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뿐이죠.”
라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뒤로 통교하며 우리는 매년 두세 차례 정도씩 함께 라운드 했다. 서로 한 명씩 아는 이를 불러내 한 팀을 이루는 식으로 이어진 라운드였는데, 그가 ‘제 주변 사람이 좀 거칠어서 분위기에 안 맞을 것 같다’며 동반자 선정을 내게 미루는 경우 잦아서, 내가 두 명을 데리고 나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는 얼굴이 검붉고 피부도 거칠어 보이는 외모에 골프 의상도 비싸지 않은 것을 입는 편이어서 그를 처음 본 나의 지인 동반자들이 고개를 갸웃 하기도 했지만, 싱글 핸디캡 수준인 그의 골프 실력 앞에서 대개들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를 ‘건축회사 사장’이라고 소개하면 그는 매번 ‘집장수입니다’라고 고쳐 말했다. 내가 불러서 나온 동반자들 가운데는 의류 사업을 하는 이, 무역회사 하는 이, 대학교수, 신문사 국장, 대기업 임원 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그의 표현을 우스개로 뒤따라 ‘옷 장수입니다’, ‘오파상입니다’, ‘선생질 합니다’, ‘봉급쟁이 입니다’, ‘펜대나 굴립니다’는 식으로 자기를 소개하곤 했다.
그러나 그가 나하고만 있는 자리에서도 ‘이대표님’, 김사장님’, ‘박교수님’, ‘최상무님’ ‘이국장님’……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대면할 때와 똑같이 깍듯하게 지칭했던 반면에, 다른 이들은 그를, 얼굴을 마주볼 때는 ‘강사장님’이라 부르다가도 그가 듣지 못하는 자리에서는 ‘집장수 강씨’라고 낮추어 부르곤 했다.
그 ‘집장수 강씨’만큼 골프 할 때 품격 높게 배려와 관용을 베푸는 신사를 나는 따로 본적이 없다. 그는 스스로 무식하다고 했지만, 내가 아는 한 그는 R&A(영국왕립골프협회)가 정한 골프 규칙을 거의 정확히 지켰다. 싱글 핸디캡 골퍼이니 규칙의 숙지와 준수는 당연하달 수 있겠지만 골프장에서 보이는 그의 행동에는 은근한 절제와 품위가 배어 있었다. 자신의 공이 벌칙 구역에 들어가거나 치기 불편한 곳에 있을 때 규칙에 벗어남이 없이 쳐내는 것은 물론이고, 동반자의 공이 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그는 선선하게 상대방을 배려했다.
어느 봄날, 대기업 임원인 ‘최전무’와 일간지 신문사 ‘이국장’, 그리고 그와 내가 한 조가 되어 라운드 했을 때였다. 이미 서로의 실력을 얼추 알고 있었기에 그날은 서로의 핸디캡을 계산하여 작은 금액의 홀별 스트로크 플레이 내기를 하기로 했다. 그는 우리에게 넉넉한 핸디캡을 적용해 주었으므로 게임을 시작하는 기분은 가벼웠다. 그러나 골프와 사람은 알 수가 없는 것이라서 성적과 잔돈푼에 눈 어두운 이들의 집착은 이런 분위기도 무겁게 만들곤 한다.
‘이국장’은 골프의 기본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았다. 티샷이 잘 못 맞으면 양해를 구하지 않고 한 번 더치는가 하면 비탈에 있는 공을 평평한 곳으로 옮겨서 치고 나서도 스스로에게 벌타를 매기지 않았다. 처음엔 다들 말없이 넘겼는데 몇 홀 지나며 그것이 습관이고 의도한 것인지 새삼 깨달은 ‘최전무’가 불현듯 ‘나도 그냥 하나 더 치겠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이국장은 공을 옮겨 가며 쳤고 최전무도 말없이 공 놓인 자리를 개선하거나 퍼팅에서 스스로 ‘오케이’를 부르며 공을 집어 들었는데, 나는 ‘오늘 라운드는 꽝이로구나’ 는 생각으로 대강 분위기만 맞추고 있었다. 후반 들어가서는 나 스스로 ‘저도 이번엔 공 하나 더 쳐 보겠습니다’ 하는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다.
아무리 해도 하수가 고수를 이기기 힘든 것이 골프 스트로크 내기 게임이므로, 참혹한 반칙이 숱하게 저질러지는 가운데서도 그는 후반이 끝나갈 무렵까지 신비로운 미소 속에 정의로운 플레이로 일관하며 흔들림 없이 게임을 리드하고 있었다.
이국장과 최전무는 얼마간 푼돈을 잃은데다가 서로에게 약간의 상한 감정까지 생겨서 샐쭉하게 외면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후반 16번 홀 쯤에서 그(‘집장수 강씨’)의 드라이버 티샷이 오비 말뚝 근처 움푹한 곳으로 날아갔다. 순간 이국장이 미소 짓고 최전무가 안도하는 표정을 애써 감추는 것을 예리하게 관찰하며, 나 역시 어정쩡하게 미소 지었다.
약자들의 비열한 기대를 골프장의 신이 저버리지 않았는지, 잠깐 오비 말뚝 근처에서 공을 찾던 그는 스스로 ‘오비!’라고 선언했다. 그 순간 캐디가 ‘찾았다! 오비 아녜요~’ 라고 소리쳤다.
경쟁자들이 눈을 멀뚱멀뚱 뜨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오비 맞아요.. 한참 나갔습니다”
캐디는 고개를 갸웃대며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오비’로 말미암아 간신히 돈을 따게 된 나는 일순 환호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순간은 잊혀지지 않고 두더지 잡기 게임의 두더지 머리처럼 기억에 떠오르곤 했다.
나를 사이에 두고 골프로 어울리게 된 여러 사람들과, 그는 그 뒤로도 제법 어울렸다. 청탁할 일이 있는 게 아니었는데도 그는 항상 상대를 배려하고 섬겼다. 남에게 먼저 말을 살갑게 건네는 편은 아니었으나 언제나 캐디 비와 식사 비용을 한발 앞서 지불했으며, 골프비용 전체를 부담하는 초대를 한 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김영란 법’에 걸려 사달이 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다들 칭송했고, 그는 늘 환영 받는 골프 동반자였다.
그 얼마 뒤에 그는 ‘집장수’ 일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 유기농 과수 재배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농사꾼’이라고 소개하게 된 그는 해마다 가을이면 내게 과일 선물을 보냈고, 이국장이나 최전무처럼 함께 라운드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도 변함없이 작은 성의 표시나마 인사를 해왔다.
그런 가운데 전무가 사장에 오르고 대표는 회장이 되는 등의 변화도 있었고 그와 나 사이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들 가운데 불현듯 제법 큰 성공을 거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와인을 배우고 미술품을 완상하여 사들이는 취미에 빠져들었고 그래서 골프 라운드의 상대 선정 취향도 더 까다로워졌는지 아니면 ‘집장사’는 좋아도 ‘농사꾼’은 싫은 것인지 그와의 라운드를 예전처럼 환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가 보내주는 유기농 과일이 해가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데도 그러했다.
지난 해 여름, 그의 농장 부근에서 그의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라운드 했다.
그는 ‘요즘에는 골프를 많이 못한다’면서 예전만큼의 골프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규칙을 지키는 올곧음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품위는 한결같았다. 라운드를 하면서 나는 그가 수백년 전 몰락한 스코틀랜드 귀족의 머나먼 방계 혈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날 라운드가 끝나고 그가 말했다.
“제가 골프 룰을 조금 바꾸려 합니다”
“예? 어떤 룰을 어떻게요?”
“골프는 원래 자기가 심판인 게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새 들어서 제가 자꾸 좀 더 편한 곳에 드롭하고 싶고, 빼놓고 치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들어요. 점점 드는 생각이……제가 빡센 원래 룰대로 계속 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강사장님처럼 룰을 원래 규정대로 지키는 사람은 제가 못 봤어요. 프로골퍼들 시합 아니고는 강사장님처럼 룰 못 지킵니다. 골프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도 같이 쳐 보면 드롭 위치가 엉망인 경우 많아요.”
“그렇다고 저도 그럴 수는 없는 게 골프의 정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농사를 짓다 보니 골프도 자연과의 게임이라는 말이 이해 가요. 근데 이게 귀족, 신사 스포츠라면서요. 제가 귀족은 될 수 없더라도 골프를 치는 마당에야 신사 룰은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주제에 귀족들이 지키는 모든 룰을 다 지키기 어려우니 저 같은 농사꾼이 지킬 수 있는 것까지만 지키기로 약속하고 그건 정확하게 지키려 합니다.”
“아.. 그게 뭔데요?”
“드롭 위치를 좀 덜 빡쎄게 하고 싶고 디봇 들어간 건 빼놓고 칠라고요.”
“보통 아마추어들은 대개들 그렇게 치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약속하고 친다고요. 골프가 신사 스포츤데 신사 시늉 내려면 약속 하고 지켜야죠. 저는 이제부터 그렇게 제 룰을 선언하고 그 룰대로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골프가 무슨 그렇게 대단한 신사의 스포츠예요? 원래 목동들의 놀이에서 시작된 건데.”
“제 룰은 드롭 위치를 좀 넉넉하게 하는 것 하고, 디봇은 빼는 겁니다. 나머지는 국제 룰대로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그렇게 칠게요.”
“알았습니다. 그럼 우리끼리는 둘 다 앞으로 그렇게 치죠.”
“제 수준에는 그 룰이 맞을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자기 룰을 정하고 그걸 지키면 더 좋고요.”
“사람마다 자기 룰을 선포하고 치자는 건가요?”
“그러면 좋죠. 지키지도 못할 룰을 정해놓고 맨날 위반하는 것 보다는 낫겠죠”
그날 우리는 ‘스코틀랜드 몰트’인가… 어쩌구라고 쓴 위스키를 마시며 골프 규칙을 총 4단계 등급으로 나누는 것을 비장한 결기를 내뿜으며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음 - 합의 규칙
1. 제1단계는 가칭 ‘블랙 룰’이다. 프로골퍼를 비롯한 엘리트 골퍼들의 규칙이다. R&A와 USGA가 정하는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으로, 모든 프로대회나 정식 아마추어 대회에 적용한다.
2. 제2단계는 가칭 ‘블루 룰’이다. 중급 이상 실력의 아마추어 골퍼들에 적용되는 규칙이다. 중급 이라는 개념은 모호하지만 스스로 자기 분수를 판단하여 선언한다. 드롭 위치, 디봇 자국, 벙커 속 발자국에서 두 클럽 이내의 볼 위치 수정이 가능하다.
3. 제3단계는 가칭 ‘화이트 룰’이다. 초급에서 중급까지 실력의 아마추어 골퍼를 위한 규칙이다. 이 역시 자기 실력을 판단하여 스스로 채택을 선언한다. 트러블 위치에 있는 공을 페어웨이까지 꺼내어 드롭할 수 있고, 디봇, 벙커발자국에서 구제되며, 캐디의 방향조언을 받을 수 있다.
4. 제4단계는 가칭 ‘실버 룰’이다. 초급자 또는 100타 이상 스코어 골퍼를 위한 규칙이다. 자기 스스로 실력을 판단하여 채택 선언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되, 동반자들이 판단하여 채택을 강제할 수도 있다. 3단계 규칙의 구제 사항에 더하여, 라운드 당 멀리건 2회를 사용할 수 있다.
5. 골퍼가 각 단계를 선언하면 그 단계 규칙을 적용하여 플레이하고, 타수는 정확히 계산하며 스코어 카드에 어느 단계의 규칙으로 플레이 했는가를 색상과 문자로 표시한다.
6. 각 단계를 플레이어가 스스로 신사의 정신으로 선언한 것이므로 규칙 운용의 예외는 없다. 이 규칙에 정하지 않은 사항은 R&A의 현행 규칙에 따른다.
7.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에 모든 골퍼는 자신의 어떤 규칙을 따르는지를 상대방에게 고지하여야 하고, 스코어 카드에도 반드시 적용 규칙의 종류를 기재한다.
끝.
내가 주로 이야기하며 적고, 그는 웃으며 동의하는 분위기에서 정한 이 규칙은 그 뒤로 그와의 라운드에서 적용되었다. 동반자들도 대개는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새해 들어 골프 규칙 몇 가지가 바뀐다고 한다. 그 바뀌는 규칙에 대해서, 내가 경험하기로는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았던 이들이 더 많은 이야기로 설왕설래 하는 것도 본다. 골프가 신사의 스포츠라면, 규칙을 정하는 것보다 스스로 선언하고 지키는 것이 그 추구하는 정신에 더 맞는 것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감히 선언하건대, 나는 대한민국 남쪽 지방의 어느 고귀한 농부와 정한 이 규칙을 지키겠다.
내가 지키기로 엄숙히 약속한 규칙은 위의 2단계 ‘블루 룰‘이다.
2018년 12월 19일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