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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Jun 12. 2022

KLPGA셀트리온 대회 하는 설해원 레전드코스


이 코스 전반 9홀에는 모래 벙커가 없고 후반 9홀에는 모래밭이 많다.

전반 코스는 송호 씨의 설계로 조성했고, 후반 코스는 송호의 밑그림으로 인허가를 받은 뒤에 안문환 씨가 전면 리모델링하여 조성했다.     



송호 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을 설계(실시 설계 포함 80여개 참여)한 사람이고, 안문환 씨는 한국에서 (고급)골프장 조성 경험이 가장 많은 골프코스 프로듀서다. 

송호는 이곳에서 모래 벙커가 하나도 없는 코스를 만들고자 계획했다고 한다. 모래벙커 없이 그래스 벙커(Grass Bunker), 듄스(dunes, 사구) 같은 둔덕, 호수 등의 조형만으로 재미있는 코스를 만들고자 했다. 뉴질랜드 남섬 퀸즈타운의 ‘애로우타운GC’에서 영감 받은 디자인이라고 한다. 

9홀을 그렇게 만들었으나, 1년 쯤 뒤 재개된 후반 9홀 조성은 안문환 씨에게 맡겨졌다. 안문환 씨는 이곳에 무릉도원 같은 꿈속의 모험 세계를 구현하고자 시도했다. 

    

나는 공사 중 파종하기 전에 가보고 지난해 개장할 때 다녀왔는데, 이들이 꿈꾼 코스의 모습은 몇 해 지나야 제대로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TV로 대회 중계를 보니, 골프를 할 만한 환경의 정도(playability)는 갖추어졌으나, 라운드 하며 코스를 충분히 만끽할 만큼 무르익지는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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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의 전반 나인 홀은 티, 페어웨이, 그린을 제외한 지역은 거칠게(Rustic) 관리되어야 설계자가 의도한 기능을 다하고 제 맛이 날 것이다(중계를 보니 벙커가 보이는 홀이 있다. 애초 설계에서의 보완인지 후퇴인지는 모르겠다). 

안문환의 후반 나인 홀은 설계자가 배치한 화목(花木)들이 무성해지고 꽃피는 수년 뒤에 완성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송호 씨 설계 전반 9홀에는 벙커가 없다
안문환 씨가 조성한 후반 9홀은 꿈 속의 무릉도원을 다녀오는 스토리 구성이다(후반 첫 홀)


골프장 측에서는 비단결처럼 곱게 관리되는 (벤트그래스)페어웨이를 주로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화면으로 보니 송호의 나인홀은 Rustic 하기보다는 Manicured 코스 느낌이 되었고, 안문환의 나인 홀은 아직 도원경(桃源境)이랄 만큼 무르익지 않은 듯하다.

토너먼트 용 코스 세팅이라기보다는 골프장 오픈 쇼케이스 이벤트 같은 코스 구성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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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에서 파3 홀들을 모두 비슷한 미들아이언 거리로 세팅한 점은 아쉽다. 11번 파3 홀은 바람 부는 날에는 (공이 높이 뜨도록)짧게, 16번 홀은 다소 긴 클럽을 잡도록 하면 그린에 공을 세우는 변별력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11번 파3 홀(왼쪽), 16번 파3 홀(오른쪽)


14번 파5 홀은 주목할 만하다. 설계가 안문환 씨는 “선수들이 대회를 하면, 이 홀에서 이글도 나오고 더블도 나오고 할 겁니다.”라고 했었다. 대관령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도전하라. 도전하라!”고 거듭 속삭이는 듯하다. 매혹적인 홀이다.  


   

14번 파5 홀 세컨샷 지점
14번 홀 티잉 구역 뷰


송호 씨는 설계가 중에서 유명한 편이지만, 안문환 씨는 우리나라 골프장 조성 역사에서 여러 차례 변곡점을 만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화산CC를 빚어낸 '장인(匠人)'이다. 고 임상하 선생(임골프)의 설계를 받아 그가 시공했다. 단순 시공이 아니라 재조형 시공이었다. 당시 임골프 소속의 시공 감리인으로 현장 파견된 설계 담당자 권동영 씨와 함께 코스 거의 모든 곳의 조형을 새로 상상하고 리디자인하여 시공했다. 나무 한그루도 (그때 흔하던 일본식 골프장 소나무 일색에서 벗어나) 한국 산중에 자생하는 것들로 재배치하여 (사철 자연 풍광을 느끼도록)조경했다. 화산CC는 지금도 개장 당시(1996년)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 골프장 역사에서 한국 산중의 아름다움을 재(거의 처음)발견한 작품이랄 만하다. 


그는 클럽나인브릿지를 조성(2001년 개장)을 맡아 완성해냈다. 공사의 정밀성을 위해 새로운 공법을 창안하여 실행하기도 했으며 골프장 조성의 수준을 몇 단계 올려놓은 결과를 냈다. 아놀드 파머가 설계한 무주CC(현 덕유산, 2000년 개장), 카일 필립스가 설계한 사우스케이프(2013년 개장)도 그가 현장에서 조성했다. 웰링턴CC 조성에도 그의 손길이 일부 주요 구간에 많이 묻어있다. 


안문환 씨(레전드코스 14번 홀에서)


스카이72 골프장의 구상과 추진도 그가 시작했다. 코스 개선의 대성공 사례로 꼽히는 베어크리크 크리크코스 리모델링(2008년)도 그가 프로듀서로서 설계자를 디렉션하며 완성했다. 몽베르, 마이다스밸리 등도 그의 회사가 조성을 맡았다. 


기능적인 설계와 시공을 뛰어넘어 그는 ‘꿈꾸는 세계’를 실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관점에서 코스를 조성했다. 그냥 설계자 또는 시공 전문인이라기보다는 포괄 개념의 크리에이터, 프로듀서라고 불러야 어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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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자신이 꿈꾸는 골프 세계관을 ‘산요수’라는 골프장에서 온전히 실현하고자 했다. 지금은 ‘라비에벨’로 불리는 곳이다. 골프장 일을 하며 모은 돈을 모두 쏟아 부어 세계가 놀랄만한 골프 낙원을 만들고자 했는데, 직접 땅을 사고 직접 땅을 사고 기획·설계하여 조성하는 과정에서, 완성도를 높이려다가 완공이 지연되는 가운데 해외 금융 발 경기 침체기를 맞아 도산했다. 지금은 코오롱 그룹이 운영한다.  

설해원 레전드코스는 그가 한동안의 해외 활동(베트남 등에서 골프장을 조성)을 마감하고 한국에서 펼쳐낸 복귀 작품이다.

    

‘라비에벨 올드’코스에서는 올해 KPGA 동부화재프로미 대회가 열렸고 지난해까지 KLPGA 대회가 몇 번 열리기도 했다. 한옥 클럽하우스와 아름다운 다랑이논 조경 등 ‘골프 무릉도원’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꿈을 엿볼 수 있으며, 코스 자체로 개성 있고 빼어나다. 그가 장년기에 지향하던 골프코스의 모습을 볼 수 있음은 물론 한국 골프장 역사의 변곡점이 될 만한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한국의골프장이야기’ 책 첫째권에 수록되었다).     


그는 자신의 코스 설계 조성 방향(철학)을 세 가지로 요약하여 말한다.     

- “한없이 아름답게”

- “미치도록 재미있게”

-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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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의 설해원 레전드코스에서 열리는 KLPGA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스 대회 TV중계를 보다가 두서없이 적었다. (‘한국의골프장이야기’ 넷째 권에 이곳을 넣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안문환 씨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좀더 깊이 적게 될 것이다. 송호 씨의 설계에 대해서는 ‘한국의골프장이야기’에서 몇 번 적었으며, 특히 셋째 권 ‘엘리시안제주’편에서 정리·기록했다.)


설해원에서는 이곳 골프장을 온천리조트에 딸린 휴양시설로 자리매김하려는 듯하다. 기존의 골든비치 27홀 코스에 더하여 18홀 레전드코스를 새로 조성한 것인데, 성향이 서로 다른 설계 코스들을 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골프장에 딸린 온천 시설’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레전드코스는 전반 송호, 후반 안문환의 설계 세계관과 조성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기에 골퍼들은 두 개의 상이한 골프장을 경험하게 된다. 코스가 어떤 모습으로 무르익어 갈지 흥미롭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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