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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Feb 09. 2020

블루원상주 - 낭만의 골프낙원

[한국골프장의발견 25]

[한국골프장의발견] - ‘시즌2’를 시작합니다.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책 첫권 - 488면, 구름서재

시즌1’에서 연재한 24개 골프장 탐사기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 첫 권 책으로 발간되어 사랑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좋은 골프장들의 코스의 속삭임까지 받아 기록하는깊고 꾸준한 탐사를 이어가겠습니다.   

(신문연재 하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저장소로 사용해 옵니다만, 브런치에도 올려 봅니다. 스마트폰으로 보기에는 내용이 방대하므로 컴퓨터나 책을 통해 느긋이 보시기 권합니다.)  


블루원상주 - 동코스 전경


영혼이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영감(靈感)이 스쳐가는 순간은 있습니다.

골프를 하면서 인생의 영감을 느끼게 되는 시간도 있습니다. 

골프 코스에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을 만나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텔레비전 골프채널에서 방영되는 <고교동창골프대회>를 볼 때마다 아쉽습니다.

대회 장소인 <블루원상주> 골프장의 모습을 방송 화면에서 온전히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방송 프로그램은 경기의 승부를 중심으로 연출하기 때문에 골프장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만, 이 골프장은 우리나라 산중에 지은 골프장이 품어내는 영감어린 매력이 가득한 곳입니다.     

종코스 2번 홀과 3번 홀


1. 골프장의 족보와 사연     


백화산 기슭의 (’ 자리

<블루원상주>는 경북 상주의 백화산(933m) 북동쪽 기슭에 자리합니다. 이 산은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군 황간면을 가르며, 남한 땅의 한 가운데 솟아 있습니다. 

수만 년 동안 땅 속에 잠자고 있던 공룡이 문득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듯한 모습으로, 골프장 바로 옆에 가파르게 치솟은 산입니다. 백화산이 머금었던 물이 깊은 계곡을 타고 골프장으로 흘러들어 한 쪽으로는 동코스 2번 홀에 머물다가, 또 한 쪽으로는 서코스 3번 홀 연못을 돌아서 금강 줄기로 흘러 나갑니다. 

     

서코스 2번 홀 그린, 그 너머가 백화산


그믐날 밤 바라보면 백화산 등줄기는 은하수의 등뼈에 이어져 하늘 길로 날아오를 듯합니다.

이런 기세의 산자락에 골프장을 만든다는 것은 두렵고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비온 뒤 가파른 계곡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은 가늠하기 어려워서, 코스 설계자는 물길을 잡아내는 데 가장 고심했다고 합니다. 넓은 페어웨이를 이따금 막아 가로지르는 깊은 계곡들은 숲과 생태의 길이며, 큰 비 온 뒤 거침없이 불어나는 물을 받아내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은 또한 골퍼의 길을 강렬한 인상으로 가로막는 자연 장애물입니다.      

서코스 3번 홀 호수


오렌지라는 이름으로 꿈꾼 골프 이상향

이 골프장이 처음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전국의 골프 고수들 사이에서는 상주 오렌지에 가봐야 한다정말 어렵고 아름답고 재미있다는 말이 떠돌았습니다. 

‘오렌지’는 이 골프장이 2008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골프장 건설 공사를 가장 많이 한 ‘오렌지엔지니어링’이라는 시공 전문 회사가 스스로의 이름을 내걸고 이 골프장을 지었습니다. 

<화산CC>, <남촌CC>, <마이다스밸리GC>, <몽베르CC>, <스카이72> 등 수많은 골프장 시공을 맡아 완성했던 이 회사는 자신들의 개발 경험과 기술을 다 쏟아 부어 ‘골프의 이상향’을 만들고자 했던 듯합니다. 이 골프장 곳곳에서 그 꿈과 야심이 보입니다.     

오렌지엔지니어링 회사를 함께 이끌었던 두 명의 대표가 회사를 분할하면서 한 분은 이곳 상주 백화산 자락에 ‘오렌지’ 골프장을 지었고, 또 한 분은 홍천의 깊은 산 속에 ‘산요수’ 라는 골프장을 일구었다 합니다. 

두 곳 모두 ‘골프의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야심작들입니다만, ‘산요수’는 코오롱 그룹에 인수되어 ‘라비에벨 올드코스’가 되었고 ‘오렌지’는 2010년 태영그룹에 인수되어 ‘블루원상주’가 되었습니다.  

   

동코스 6번 홀에서 본 전경


한국 산중 지형 코스 개발 경험이 집대성된 골프장

이 골프장은 처음 문을 연 뒤로 지금까지 여러 기관들의 ‘코스 랭킹 평가’에서 호평 받아 옵니다. 2011년 ‘골프다이제스트’ 선정 ‘한국 베스트 탑15 코스’에 선정되었으며, ‘골프매거진’이 2년마다 발표하는 ‘한국 10대 퍼블릭코스’로 2018년까지 5회 연속 선정되었고 YTN 선정 대한민국 10대 골프장에도 단골로 들어갑니다. 2016년과 2018년 ‘골프트래블’ 선정 ‘아시아 100대 코스’에 들기도 했으며, ‘골프다이제스트’ 한국판이 2019년 발표한 대한민국 50대 코스에서는 39위에 자리했습니다. 또한 2019년 '골프매거진' 선정 '대한민국 10대 코스'에 들었고, 동코스 2번 홀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4 홀'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렇게 평가된 순위들이 이 골프장의 의미와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블루원상주> 골프장은 1990년대부터 각성되기 시작한 한국 산중 지형 골프장 개발에 대한 한국 기술진 고유의 노하우가 집대성된 의미 깊은 사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클럽하우스에 전시된 코스 랭킹 등, 각종 상패


설계와 시공의 족보

골프는 본디 버려진 땅에서 시작되었다 합니다. 바닷가 황무지 언덕에 바닷바람이 파도치는 듯한 언듈레이션의 ‘링크스’ 지형을 만들고, 그 땅의 소금기와 모래를 이겨내고 풀이 자라나며, 토끼가 풀을 뜯어 먹은 자리가 그린이 되고 양떼가 다니던 길은 페어웨이가 되었다 합니다. 벙커는 양치기들이 폭풍우를 피하던 구덩이였다 하지요. 

그런 모습을 골프 코스의 원형으로 보는 서양의 설계가들은 자연에 얹어 길을 낼 뿐이라는 설계철학을 금과옥조로 지키는 듯합니다. 그러한 자연 존중의 철학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산중 지형에 서양 코스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코스들에는 블라인드 홀과 오르내림 경사가 적지 않은 곳이 흔합니다. 


그런 반면에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에 지어진 골프코스들은 일본식 코스 설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평탄한 페어웨이를 조성하는 토목공사에 중점을 두어 산을 뭉텅뭉텅 깎아내 계단식으로 만들거나 아예 분지 모양으로 조성한 곳이 대부분이었지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서양 설계가들이 우리나라 코스 설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도전성과 전략성을 살려낸 코스들이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국내 설계가들도 세계적인 추세를 받아들여 서구적인 개념의 골프코스들을 빚어내기에 이릅니다. 

     

설계가 권동영 님


이러한 움직임을 국내 설계가들이 보여준 초기 사례 가운데 돋보이는 역작으로 <화산CC>를 꼽는 것에 저는 동의합니다. 고 임상하(1930~2002) 님이 설계하여 1996년 문을 연 화산CC는 우리나라 산중 지형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원래의 자연인 듯 아름다운 인공의 조화’를 꾀하였으며, 샷밸류와 난도가 높은 도전적인 코스로 빚어져 지금도 명품 설계로 손꼽히고 있지요. 그와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일동레이크와 함께, ‘원 그린’ 코스를 도입하고 전파한 기념비적 모델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 화산CC의 시공을 맡은 회사가 ‘오렌지엔지니어링’이었고, 당시 임상하 님의 설계 수제자이자 화산CC 설계 실무 및 시공 현장 감리 책임자가 권동영 님이었다 합니다. 

그리고 권동영 님이 후일 오렌지엔지니어링에 합류하면서 몽베르, 마이다스밸리 등 대표적인 산중코스 설계를 맡아 하게 되었으며, 이 <블루원상주> 골프장의 전신인 ‘오렌지'를 설계하게 됩니다.     

동코스 전경


<블루원상주>가 되기까지

오렌지엔지니어링은 수많은 코스를 시공하면서, 설계와 시공이 현장 중심으로 결합되는 한국 지형 코스 개발 모델을 나름대로 진화시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골프장을 개발할 수 있는 땅은 대부분이 산기슭이나 중턱이지요. 해외 설계가들이 이런 지형에서도 ‘자연 지형 절대 존중’의 원칙을 지키는 것과는 달리, 때로는 과감한 성토와 절토 토목공사를 통해 자연의 원래 모습과 인공의 조형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조화로운 흐름의 자연스러운 코스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 회사가 많은 시공경험을 통해 쌓았던 노하우와 스스로 창조하고파 했던 골프장 모델에 대한 열망이 용광로처럼 끓어올라 용출된 작품이 이 골프장이었던 듯합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권동영 님의 설계가 있었지요. 한국 산중 지형 골프장 설계 경험이 완숙지경에 이른 그의 역량이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돈코스 3번 파5 홀


골프로 해가 뜨고 동반자들의 모임으로 해가 지는...... 그런 가운데 골프라는 경기가 가진 서구적 정취와 한국 산중의 수려한 풍치가 어우러진 낭만적인 장원(莊園)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18홀의 모험심 가득한 코스와 동화 같은 별장 숙소를 갖춘 이 골프 리조트는, 2008년 야심차게 문을 열어 많은 골퍼들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그리고 2010년 SBS방송의 모기업인 태영그룹에 인수됩니다. 개발당시 회원제로 허가받았다가 2008년 퍼블릭코스로 문을 열었고, 골프장 부속 콘도미니엄 회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영업하다가 대기업에 매각된 것이지요.     


윤세영 회장, SBS골프고교동창골프대회

태영그룹은 2010년 당시에 이미 용인에 27홀의 태영CC와 경주에 27홀의 디아너스CC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골프장을 인수하면서 72홀의 코스를 보유한 레저기업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2012년에는 ‘블루원’ 브랜드로 레저사업을 통합하여 운영하게 됩니다.


태영그룹과 윤세영 명예회장, 그리고 SBS 방송은 한국 골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옵니다. 골프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던 1992년 SBS 텔레비전 정규 프로그램으로 ‘금요골프’를 편성하였으며 1999년 골프 방송 전문 채널인 ‘SBS골프’를 개국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1992년부터 10년 동안 ‘남녀프로골프최강전’ 열었고 이 대회를 통해 최경주, 박세리, 양용은 선수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성장하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SBS코리안투어’, ‘한국여자오픈’, ‘LPGA SBS오픈’, ‘태영배’ 등 많은 대회를 개최하거나 후원했고, 윤세영 회장 스스로 8년 동안 대한골프협회장으로 재임하면서 프레지던트컵 대회를 아시아 최초로 유치하는 등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블루원배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를 해마다 열어 골프 꿈나무들을 키우는 일도 앞장서고 있기도 합니다. 윤 회장은 골프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으로 판단한 듯합니다. 경제성장이 무르익어가는 시기에 골프의 대중화를 예측하고 투자했던 것이지요.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시상식의 윤세영 회장(뒷줄 왼쪽 다섯번째) - 블루원 제공 사진


‘블루원상주’가 되면서 이 골프장은 SBS골프 채널에서 방송하는 ‘고교동창골프대회’의 ‘대회코스’가 되어 널리 알려집니다. 우리나라 골퍼 중에 이곳에서 라운드 해보지 못한 사람은 많아도, 이 골프장을 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2. 코스의 특징

     

편안한 듯 까다로운 문제지 같은 코스

1천미터 가까운 높이로 가파르게 솟은 백화산 기슭, 해발 310미터 지역에 위치한 골프장이지만 코스에 들어서면 넓은 평지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페어웨이는 넓어서 폭이 80~100미터나 되고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고저차가 35미터로 평탄합니다. 

첫 인상에서 전형적인 휴양지 코스의 편안함이 흐릅니다. 하지만 리조트를 낀 휴양형 코스들이 일반적으로 난도가 낮게 설계되는 것과는 달리, 이 골프코스는 골퍼의 실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테스트하는 종합시험의 문제지 같습니다.     

동코스 6번 파4 홀

티샷을 마음껏 날릴 수 있는 장쾌함은 이 코스의 큰 매력 가운데 하나입니다. 산악형 코스이면서도 페어웨이가 넓고 7,367야드의 넉넉한 전장을 갖춘 코스이므로 티샷의 시야는 대부분 넓게 열려있고 티잉 구역에서 코스의 형태를 파악하며 공략하기가 좋은 구성입니다. 백화산의 남성적인 기운이 플레이의 호방함으로 연결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가운데 장타 능력에서부터 기술샷과 그린 플레이의 상상력을 골고루 발휘해야 하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서코스가 남성적이라는 이유

우선 서코스는 플레이어의 장타 능력이 중요한 홀이 이어집니다. 공을 멀리 친 플레이어에게 더 유리한 샷 가치를 두드러지게 부여하는 홀들이 많아서 남성적인 코스라고 평가됩니다. 자연지형의 특성을 반영하였기에 이렇게 구성된 듯합니다. 

1천 미터 가까운 높이의 백화산에서 가파르게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을 장마철에도 받아내고 흘려내 보내려면 일반적인 배수관로 설치로는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설계가 권동영 님은 "백화산이 크고 가팔라서 큰 비가 올 때는 자연 계곡이 그대로 물길이 되는 방법으로만 코스의 구성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깊고 넓은 자연 계곡이 코스 중간 중간을 가로질러 지나가도록 해야 하고 그 큰 골짜기를 넘겨서 볼을 쳐야 하는 홀들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서코스 4번 파4 홀(핸디캡 1번)


특히 서코스에 이런 홀들이 이어집니다. 2번 파5 홀, 4번 파4 홀, 5번 파5 홀이 그렇지요. 이 홀들은 페어웨이가 넓고 거리는 길게 구성하여 정중앙을 장쾌한 샷으로 공략하는 매력을 살려냈습니다. 

설계자들은 흔히 똑바로 치면 되는 코스를 구성하기 싫어합니다그런데 이 몇 개 홀들은 의도적으로 이렇게 설계된 듯합니다이 홀들은 비거리를 내는 능력에 따라 공략방법이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미스샷이 나왔을 때의 판단과 선택 등 경기 운영 능력도 시험받게 됩니다. 다음 샷이 길게 남거나 불편한 위치에 공이 놓여 있으면 계곡을 건너 쳐야 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레이업’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깊은 계곡을 두 번씩 건너 쳐야 하는 4번 파4 홀과 5번 파5 홀은 장타를 유도하는 모양입니다. 장타 능력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 비거리를 정확히 낼 수 있는 정타를 연달아 쳐야 실수 없이 계곡을 넘겨 유리하게 공략할 수 있는데 그게 생각처럼 되는 일은 아니지요. SBS골프채널에서 방송되는 <고교동창골프대회>에 나온 선수들이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장면 많이 보셨지요? 이 분들은 거의 모두가 '70대 초반 타수' 실력의 싱글 디지트 핸디캡퍼들인데도 이런 실수들을 합니다. 플레이어의 장타 및 정타 능력과 심리 상태전략 운용에 따라 많은 변수가 발생하게 되는 홀 구성인 것입니다.     

서코스 9번 파4 홀


아름답고 샷밸류 높은 동코스

동코스 2번 홀과 3번 홀이 품고 있는 연못과 벙커들은 산중에 물을 가둔 코스 조성의 본보기 같은 모습입니다. 동화 속 장면처럼 아름다우며, 도전적인 플레이어들을 유혹합니다. 

2번 홀은 페어웨이 오른쪽의 연못에 되도록 가깝게 티샷을 쳐 놓아야 그린 공략을 가장 편하게 할 수 있으며, 3번 파5 홀은 페어웨이 오른 쪽 연못 가까운 곳의 캐리 벙커를 넘기는 티샷에 성공했을 때 가장 유리한 다음 샷을 할 수 있습니다.      

동코스 2번 파4 홀


이런 것을 샷 밸류(Shot Value)’라 하지요. 좁은 의미로 말하면, 잘 친 샷이 더 유리한 다음 샷을 보장하는 것을 ‘샷 밸류 높다’고 합니다. 이 연못 주변의 2, 3, 4번 홀 모두 샷 밸류가 높은 홀들입니다. 어여쁜 연못과 벙커들이 도전을 유혹하고 도전 성공에 대한 보상과 실수에 대한 위협을 동시에 제공하는 샷 밸류 요소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샷밸류는 14개 클럽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 코스의 공정성 까지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시즌1'에서 몇차례 적은 바 있으며, 앞으로 더 다루겠습니다.)

백화산 계곡을 흘러 내려온 맑은 물은 이 연못에 머물며 하늘을 비추어 담아내다가 금강으로 흘러갑니다. 

이 연못엔 멸종 위기 동물인 수달이 살고 있다 합니다. 4번 홀까지 연못을 바라보는 널찍한 분지의 홀 구성이 이어지는데, 원래 이곳에 있던 얕은 봉우리들을 없애고 골짜기들을 메워 너른 분지와 연못을 만든 듯합니다.  

    

동코스 3번 홀(연못 오른쪽이 2번 홀)


하늘에서 백화산에 잠시 놀러 내려온 어린 선녀들의 나들이 터가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모습인데 <고교동창골프대회>에서 늙어가는 남자들이 소년으로 돌아가 공놀이하며 소리치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동코스는 홀마다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이 재잘거리는 듯 살갑습니다. 하지만 공략이 쉽지는 않지요. 도전에 대한 보상과 응징이 숨어있고, 핀에 다가갈수록 공략 방법을 예민하게 생각해야 하는 홀들이 이어집니다. 승부가 뒤집힐 수 있는 구성의 마지막 홀까지, 샷 밸류가 높고 기술적인 정교함을 테스트하는 홀들이 이어집니다. 


샷 메이킹 능력을 골고루 테스트

이 코스에서 자신의 핸디캡에 맞는 티잉 구역을 선택하여 플레이한다면 한 라운드에서 14개의 모든 클럽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골프 기량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기 쉽습니다. 장타와 정타의 능력, 띄우고 세우는 능력, 긴 채와 짧은 채를 골고루 다루는 능력, 휘어 치는 능력, 전략을 세워 플레이 하고 실수에 대응하는 능력, 그린 주변에서 상상력 있게 플레이하는 능력 등을 골고루 시험하며, 부족한 부분이 핸디캡으로 드러납니다.      

서코스 2번 파5 홀, 두번 계곡을 띄워 넘기는, 페이드샷이 유리한 홀


골짜기를 두 번 씩 건너 쳐야 하는 홀이 이어지는 서코스에서는 길고 높게 띄워 치는 능력이 많이 필요한 편입니다. 동코스에서는 ‘드로우(왼쪽으로 살짝 휘어지는)샷'과 '페이드(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지는)샷'을 구사하는 기술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플레이가 더 많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양쪽 코스 모두 그린들이 기술적인 어프로치 샷을 전제로 한 형태와 경사로 이루어져 있기에 ’샷 메이킹‘ 능력이 있는 고수들일수록 재미있게 플레이할 듯합니다. 


그린은 매우 넓고 언듈레이션이 많아서 입체적 상상력과 공간 감각을 시험합니다. 요즘 들어서는 그린을 오히려 작게 만들고 그린 주변 플레이 공간을 재미있게 구성하는 설계 경향을 볼 수 있는데, 이 코스는 휴양지 골프장의 특성을 감안하여 그린 적중률을 높이고자 한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3. 특징적 홀인상적인 것들   

  

코스의 스토리 흐름은 백화산 지형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므로 일반적인 홀 전개와는 다른 편입니다. 

서코스는 초반에 계곡을 길게 건너치는 파4, 파5 홀들이 휘몰아치고 동코스는 호수를 중심으로 한 선율이 초반부터 강한 인상으로 흐릅니다. 파3 홀들은 오히려 중간 난도로 후반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서코스는 백화산에 인사하듯 겸손하고 정확하게 플레이하라는 듯하며, 동코스는 소년 소녀로 돌아가 천진스럽게 들판을 뛰놀아 보라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인상적인 것들 몇 가지를 들어 봅니다.     


서코스 2번 홀 비감한 고사목

서코스 2번 홀 벼락맞은 왕버들


이 코스를 다녀간 많은 골퍼들이 서코스 2번 홀 그린 옆에서 벼락 맞아 고사목이 되어가는 왕버드나무를 기억합니다. 

코스를 만들 당시에는 푸른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 교목이어서 이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그린과 그 주변의 설계를 변경하였다 하는데 그린 옆에 혼자 남으면서 오히려 벼락을 맞고 죽어가는 셈입니다. 고사목인 모습 또한 인상적이어서 이 골프장을 다녀간 골퍼들 사이에서 과거의 화려함과 현재의 비감한 풍모가 함께 이야기됩니다.    


서코스 3번 홀 미루나무와 4번 홀 코끼리바위

서코스 3번 홀 그린과 미루나무


3번 홀 그린 옆의 미루나무는 아련한 동심을 되살려 냅니다. 티샷 위치에서 보는 호수는 백화산에서 흘러내리는 강한 기운을 부드럽게 받아내고 있으며 호수 자장자리를 따라 비치벙커가 긴 곡선으로 놓여 있습니다. 장타자일수록 왼쪽으로 쳐서 그린 가까이 보낼 수 있는 홀이지요. 그 벙커를 넘기는 티샷을 하고 세컨 샷 위치에서 보면, 그린 왼쪽에 커다랗고 잘 생긴 미루나무가 홀을 지키는 정령처럼 서 있습니다. 

미루나무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는 뜻의 미류(美柳)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데 어릴 적엔 들녘 곳곳에 서있었지요. 그 많던 미루나무들을 지금은 골프장에 가서야 이따금 보게 됩니다.

      

서코스 4번 홀(그린 옆 코끼리 바위)


가장 어려운 4번 홀 그린 뒤에 있는 바위를 '코끼리 바위를'라 하여 코스 명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린 뒤에 무성한 나무들이 없었다면 바위의 존재감도 두드러지면서 그 너머 장엄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와 더욱 극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질 듯합니다.


예민한 눈에만 보이는 '논둑길'

이 미루나무를 지나 4번 홀로 올라가는 길에서 보통의 카트 길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면,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분입니다. 

이 길 옆에는 작은 다랭이논이 몇 계단을 이루며 살아 있습니다. 카트길을 지나되 논둑길을 가는 것이지요. 코스 설계자 권동영 님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서코스 3번 홀을 마치고 4번 홀로 올라가는 이동로를 계획하면서 지형도를 살펴보니 원래 산기슭에 있던 논(畓)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목가적인 분위기의 카트길을 낼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현장을 둘러보니 기존의 농로를 활용하면 정감 있는 카트길을 낼 수 있겠다 싶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농로를 따라 다음 홀인 4번 홀 티잉 그라운드 자리로 가보니 주변에 감나무 여러 그루들이 있었고, 이것들이 잘 보존되도록 티잉 그라운드와 카트로의 위치를 정밀하게 시공하면 3번 홀을 마치고 4번 홀로 이동할 때 경관흐름 (sequence)을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름 지어 주고 가세요

서코스 9번 파4 홀 페어웨이 중간에 서 있는 커다란 왕버드나무 또한 이곳을 다녀간 골퍼들의 기억에 남습니다. 

이 버드나무를 넘기는 장타를 칠 수 있으면 그린을 공략하기가 쉬워집니다. 이 나무는 서코스 마지막 홀 플레이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서코스 9번 홀 페어웨이의 왕버드나무


이 한그루 나무가 마지막 홀로서의 특징과 품격을 살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마치 백화산의 기운이 그대로 땅을 뚫고 뻗어나온 듯 강렬한 모습의 나무이지요. 그 모습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나무를 보존한 것이라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설계자 의도대로 옮겨 심은 것이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수많은 공을 맞았겠지만, 골퍼에게는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는 나무입니다. 


제가 이 나무를 여러 각도에서 유심히 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캐디가 이런 거 물어보는 사람 처음이라며 “오신 김에 이름 지어주고 가세요” 하더군요. 이곳 홈페이지에선 '나무요정'같다고 표현하고 있던데 누군가 공력과 공덕이 높은 분이 인연이 닿는 이름을 지어주는 날이 오기 바랍니다.      


동코스 2, 3, 4번 홀의 치밀한 완성도

동코스 2번 홀 연못과 마주보는 자리의 커다란 바위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 듯하지만 연못과의 미학적 상응관계를 감안하여 모양을 다듬은 것이라 합니다. 4번 홀 페어웨이에서 그린 쪽으로 가다보면 2번 홀의 연못과 바위, 그리고 그 너머 별장형 리조트의 모습이 관광 엽서의 사진처럼 이국적으로 보입니다. 이곳에 다녀간 골퍼들이 저마다 사진으로 간직하는 모습입니다.      

동코스 2번 홀을 낀 별장형 리조트


이 풍경 때문에 4번 홀을 기억하는 분이 많지만 이 홀은 샷 밸류가 높고 티샷 능력과 아이언 샷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시험합니다. 페어웨이 왼쪽을 따라가는 벙커와 홀 가운데 놓은 타겟 벙커, 그리고 엘리베이티드 그린의 형태 등이 골퍼의 육체적 능력과 기술적 능력, 공간 감각 등을 입체적으로 가늠하는 홀입니다.      

동코스 4번 홀 그린 - 뒷편 경관을 막는 나무들이 아쉽다


다만 살짝 솟아오른 그린 너머에는 나무들이 없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린 뒤편에 나무들이 없었다면 먼 산들이 구름처럼 겹능선을 이루는 시야가 확보되어 그린으로 다가설 때의 느낌이 더 인상적이었을 듯합니다. 


"들리나요나무들의 넋두리..." 

‘유한양행 나무’라고도 불리는 동코스 7번 홀의 수양버들은 이 홀의 비스듬한 모습을 균형 잡아 줍니다. 가로로 길고 오른쪽으로 내리막인 땅콩 모양의 그린은 페이드샷을 쳐서 공을 세우라고 유도하는 모습인데 이 나무가 없었다면 ‘기능은 있지만 멋은 없는 홀’이 되었을 것입니다.      

동코스 7번 홀 '유한양행 나무'


그린 뒤쪽에 완만한 둔덕을 쌓았다면 시각적인 안정감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뭔가 위태로운 듯한 지금 모습도 전체 홀 구성에서 독특한 리듬을 주는 매력이 있다고 봅니다. 


예전에 제가 이 코스에 다녀오고 생각나는 대로 쓴 메모를 보니 

이 코스에 두 번 이상 들러서 한번이라도 단 한 그루 나무와도 감응하지 않은 이와는 나눌 말이 없다미루나무느티나무능수버들과 벼락맞은 왕버들의 원통함과 넋두리를 어찌 듣지 않을 수 있는가

라고 적혀 있더군요. 

다시 떠올려 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4. 잔디조경시설 등     


자연을 그대로 살린 조경

우리나라 골프장에는 흔히 크고 귀한 소나무들이 많습니다. “좋은 소나무가 많아야 명문클럽”이라 여기는 선입관이 예전부터 있었던 듯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골프장에 큰 영향을 끼친 ‘안양CC’ 조경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반면에 이 코스는 천연의 수림을 거의 그대로 보전하면서 특징 있는 나무들을 보존하여 세우고 옮겨 심은 것으로 조경을 거의 다한 듯합니다. 참나무와 백일홍, 버드나무 등을 살리고 자리를 옮기는 한 편, 왕벚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배롱나무 등 교목들과 낭아초와 조팝나무 같은 꽃나무들을 보완해 심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철따라 꽃이 피고 가을엔 단풍이 꿈길처럼 물듭니다. 억새와 수크령(커다란 강아지풀 같은 여러해살이 풀)이 이곳저곳에서 운치있게 일렁이기도 합니다. 코스 옆으로 솟아오른 백화산이 이따금 장엄한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건너편의 가깝고 먼 산들은 평화로운 겹능선을 이루며 구름처럼 펼쳐집니다. 

플레이의 난도는 고수급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인 반면, 코스를 감싸는 아름다움은 여자들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듯합니다.    

  

동코스 2번 홀 그린


늘 일정 수준을 지키는 고급 퍼블릭코스

우리나라 골프장들의 관리 수준은 모기업이 얼마나 든든한가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골프장 주인이 SBS 방송사를 운영하는 ‘태영그룹’이기 때문인지 코스의 관리는 늘 양호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페어웨이 잔디는 ‘장성중지’를 사용하고 러프와 티잉구역은 켄터키블루그래스 양잔디이며 그린 잔디는 벤트크래스(CY-2)입니다. 

비록 정규 대회는 아니지만 골프채널에서 방영되는 <고교동창골프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곳인 만큼 잔디 상태가 고르고 잘 정돈되는 편입니다. 잔디 상태는 날씨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으나 우리나라 기후에 가장 잘 견디는 ‘중지’를 사용하였기에 관리상의 변수가 적은 편이겠습니다. 중지는 양잔디보다 잎 면이 넓지만 우리나라 들녘에 야생하는 들잔디(야지)보다는 가늘어 ‘중간 넓이 잎의 잔디’라는 뜻입니다. 안양CC에서 선별하여 개량한 종을 ‘안양중지’라고 하며, 장성중지는 안양중지와 비슷하되 장성 지방에서 나는 중지 특성을 가진 잔디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골프장들이 가장 많이 쓰는 잔디가 이 ‘장성중지’라 합니다. 날이 추워지면 생장을 멈추고 누렇게 변하지만 한여름 기후를 잘 견디기에 관리하기에 편합니다. 

관리 기준을 물으니 페어웨이 잔디는 22mm 길이로 깎아주며, 그린 스피드는 스팀프미터 계측 기준으로 2.6~2.9미터로 관리한다고 합니다. 퍼블릭 골프장으로서는 높은 수준이라고 봅니다.      


자연 특성을 살린 벌칙구역들

이 코스에는 오비 구역이 홀마다 있지만 페어웨이가 넓은 편이라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 반면에 페어웨이 중간을 가로지르는 깊고 넓은 계곡과 일곱 군데 위치한 크고 작은 호수들은 플레이에서 많은 변수를 만들어 냅니다. 이 벌칙구역들은 건너치고 넘겨 치고 피해 쳐야 하는 샷 밸류 요소들이거나, 물의 흐름을 돕는 자연 수로들이어서 의미 없이 놓인 것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벙커는 76개로 적지 않은 편입니다. 벙커 모래는 주문진 백사장에서 가져온 규사입니다. 비치벙커, 타겟벙커, 클러스터벙커, 세이빙벙커, 가드벙커 등 기능별 벙커들이 골고루 있어서 적극적으로 플레이에 개입하며, 모양도 다양하고 아름다워 설계와 시공의 역량을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듯합니다.

그런 한편 생각해 보면, 골프장에 당연히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래 벙커는 스코틀랜드 해안의 모래언덕(사구)에 자연적으로 파인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연적인 모래 구덩이가 있을 리 없는 우리나라 산중 골프코스에서는 모래 벙커보다는 산중지형의 본래 특성에 맞는 트러블 요소들을 도입하는 것이 좀 더 자연 친화적이고 창의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를테면 이 코스가 받아들인 자연 골짜기 해저드 같은 요소들 말입니다. 모래벙커가 없거나 적으면 세계 랭킹 상위 코스들이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잔혹하고 포토제닉한 아름다움’ 같은 것은 덜하겠지만, 그런 것을 본떠서 우리나라 산중에 모래벙커를 많이 파 놓는 것은 골프 코스 조성의 근본정신이라 할 ‘자연 그대로’의 덕목에서 오히려 벗어나는 것은 혹시 아닐까요. (이 골프장의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벙커들을 보면서 떠오른 저 혼자만의 공상입니다.)      


알프스 산장 스타일의 리조트

'알파인 스타일' 별장형 숙소


이곳 클럽하우스와 리조트 건축 양식이 ‘알파인 스타일’이라고 소개되는데, 그것은 알프스 산중 지역의 집 모양을 말하는 것으로 압니다. 눈이 많은 지역이라 지붕을 뾰족하게 만들고 덧창문을 내는 모양이 그 스타일의 특징인데, 아마도 이 산중 골프장에 알프스 산 별장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어딘가 동화적인 느낌이 나는 모습이지요. 특히 별장형 숙소에 그런 느낌이 잘 드러납니다. 라운드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면 벽난로 장식 앞에 통기타가 놓여 있습니다. 

숙소 앞마당에서는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정원이 있고 골프장에 주문하면 바비큐 재료와 식기를 차려줍니다. 몇 가족 또는 몇 팀이 함께 묵으며 골프하기에 알맞은 시설이고, 모이면 고기 굽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호에 잘 맞는 골프리조트로 보입니다.     

이 숙소의 창으로는 동코스 2번 홀의 호수가 가득 들어옵니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깊은 밤에 무언가에 홀려 나와 보면, 백화산의 솟아오른 등줄기가 은하수에 닿아 어딘가로 날아오르려는 장면을 보게 될지 모릅니다.  

   

토너먼트 코스도 부러워 할 연습장

클럽하우스 앞에 설치된 연습장은 골프의 이샹향을 지으려 했던 열망이 잘 드러나는 시설입니다. 전장이 300야드, 20타석, 망이 설치되지 않은 켄터키블루그래스 푸른 잔디로 마음껏 칠 수 있는 드라이빙 레인지입니다. 볼 자판기에서 바구니에 볼을 받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정규 프로골프대회를 치르는 골프장 가운데는 연습장이 없는 곳도 많으며, 메이저 대회를 치르는 곳들도 10여 타석 정도 갖춘 곳들이 대부분입니다. 그에 견주면 대단히 훌륭한 시설이지요. <고고동창골프대회>를 치르는데 이 연습장이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골프장은 이틀 이상 머무르며 즐겨야 제 맛을 즐길 수 있고, 이 연습장을 충분히 활용해서 준비해야 코스 공략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다.          



백화(白華)’의 길들


저는 서코스를 ‘구름길’, 동코스는 ‘호수길’이라고 기억합니다. 


이 골프장에서는 여러 갈래의 길이 느껴집니다. 백화산 줄기는 하늘 길로 날아오르는 듯하고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길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산이 날아 움직이는 기질이니 바람 길은 호방합니다. 사람이 낸 페어웨이 놀이 길은 하늘의 구름길을 거울에 비쳐 담아놓은 것 같습니다. 특히 서코스의 몇 홀에서는 구름을 타고 걷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사람의 상상과 의지는 수만 년 자연의 법칙을 혼돈으로 착각하게 할 만큼 매끄러운 아름다움을 빚어내기도 하니 작은 봉우리를 지워 깊은 골을 메우며 물을 가두고 흘려 자연의 숨길을 새로 내면서 사람의 놀이길을 섬세하게 닦은 것입니다. 

골프선수가 공략하는 길, 흥얼거리는 주말 골퍼의 더딘 걸음 길까지...... 이 골프장에는 ‘백화’라는 산 이름처럼 흐드러진 길들이 펼쳐집니다.


이곳에서 골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아직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이 아득히 고운 길에서 공만 좇고 스코어만 따지다 온다는 것은 지나친 낭비입니다. 



글 류석무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지은이입니다.

이 내용을 앞으로 보완하고 다듬어 [한국의골프장이야기] 둘째 권에 넣을 예정입니다. 

사진은 블루원상주 골프장이 제공한 것을 주로 사용하였으되, 일부 사진은 글쓴이가 직접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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