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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lu Apr 06. 2023

20세기 거장들의 발자국을 따라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展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의 긴밀한 협업으로 이루어진 특별 전시인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은 20세기 모던아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요한 예술사조와 거장들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컬렉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일 표현주의, 러시안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추상 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20세기 격변의 시대에서 태동한 예술운동의 배경과 서양 미술사의 발자취를 그려내고, 이에 영향을 받은 현 세기의 독일 예술도 조망한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쾰른 최초의 현대 미술관으로 피카소, 달리를 비롯해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 등의 다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미술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고있는 세계 세 번째 규모의 피카소 컬렉션과 샤갈, 칸딘스키,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걸출한 컬렉션을 소개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폭 넓은 작품들을 루드비히 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배경과 그 작품들을 독일의 정치적인 탄압과 분단과 통합 과정에서 보존한 시민들의 역할을 한국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특별한 전시이다. 


 전시는 1부 독일 모더니즘과 러시안 아방가르드 (German Modernism and Russian Avant-garde), 2부 피카소와 동시대 거장들 (Picasso and Environment), 3부 초현실주의부터 추상 표현주의까지 (From Surreal Creation to Abstraction), 4부 팝아트와 일상 (Pop Art and Everyday Reality), 5부 미니멀리즘 경향 (Minimalist Tendencies), 6부 독일 현대미술과 새로운 동향(German Contemporary Art and New Tendencies) 총 6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1부   독일 모더니즘과 러시안 아방가르드 


 20세기 초 새로운 예술의 표현을 갈구하던 독일의 예술가들 중, 칸딘스키를 중심으로 ‘청기사파’와 ‘다리파’가 생겨났다. 이 두 집단은 모두 19세기 사실주의와 인상파 화풍에서 탈피하기를 원했고 거친 붓 자국, 원색의 과감한 색채 사용을 통해 인간 본성의 순수하고 원시적인 역동성을 표현하는 것에 주력했다.  

 한편, 독일 표현주의가 성행하고 있을 때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에서는 사회 격변과 함께 러시안 아방가르드로 불리우는 예술적 실천과 이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격변 속 혁신적 표현이라는 공통 분모를 취하고 있지만, 두 나라의 예술가들은 인습 타파에 대한 접근에 있어 서로 다른 관점과 예술적 실천을 보여준다. 


 칸딘스키의 ‘흰 붓자국’을 인상깊게 보았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러시아 화가로 20세기 초 추상화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아르누보와 신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색채가 풍부했던 칸딘스키의 초기 화풍은 1910년경부터 점점 추상적인 표현으로 발전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러시아로 귀국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작풍으로 활동을 다시 시작했는데, 이는 일종의 심리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음악의 리듬과 소리가, 미술에서의 색채와 형태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구상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추상화된 이미지와 기하학적 형태가 캔버스에 떠다니는 느낌을 구현했다. 이 작품에서는 노가 걸쳐진 배의 형상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하얀 선을 중심으로 순수한 조형적 요소가 돋보인다.  


2부   피카소와 동시대 거장들 


 루드비히 부부는 <아티초크를 든 여인>을 접한 후 피카소만의 자유롭고 신선한 표현에 매료되어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피카소의 작품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이번 섹션에서는 피카소의 입체파 확립 시기부터 창작 말년까지 아우르는 각 단계별로 발전된 작품들 8점을 주축으로 하여 그가 파리에서 작업할 당시 함께 활발히 활동하던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마르크 샤갈 등 동시대 거장들의 작품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피카소의 작품을 보기에 앞서 러시아 아방가르드에서 나타난 절대주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섹션별로 예술사조에 따라 배경색이 달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절대주의 작품들이 배치된 공간은 벽면이 온통 흰 바탕으로 칠해져 있었다. 기하학적인 절대주의의 특징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기 위함인 것 같았다. 절대주의의 창시자나 다름없는 말레비치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독일의 표현주의와 동시대에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같은 시대적 상황을 다르게 풀어나간 예술가들을 탐색해볼 수 있었다. 



 루드비히 부부가 매료된 ‘아티초크를 든 여인’. 스페인 내전 발발부터 1945년 세계대전 종결까지 피카소는 어둡고 불온한 분위기의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여성의 오른손에는 중세 타격용 무기 모르겐슈테른을 연상시키는 아티초크가 잡혀있고 무릎에 놓인 왼손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나고 있다. 배경에 가득 찬 희뿌연 회색은 전장의 연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격렬히 왜곡된 그로데스크한 두상이 합쳐진 작품 속에는 전쟁의 암시적인 기호들로 가득하다.   


3부   초현실주의부터 추상 표현주의까지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운동인 초현실주의는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싹트기 시작했는데, 이는 전후 유럽과 미국에서 생겨난 새로운 회화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한편, 1940년 초 유럽의 많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들은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를 부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인 잭슨 폴록은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미국에 망명해 온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했으며, 호안 미로나 앙드레 마송 등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1940년대 초반에 시작한 액상 도료를 도포하는 작업방식은 실험 공방에서의 경험과 무의식을 창조의 원천으로 하는 초현실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이후 그는 바닥에 펼쳐진 큰 캔버스 전체를 균일하게 덮는 올 오버 스타일과 브러시와 막대기로 페인트를 가져오면서 그리는 드리핑 기법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흑과 백 15번>은 올 오버 스타일로 화면 전체에 여러 색채가 도포된 다른 작품과는 달리 하나의 흑색으로 그려져, 한층 더 구상적인 이미지가 드러나게 되는 작품 중 하나다. 드리핑 기법으로 뿌려진 검은색은 완전히 조절되지 않고 페인팅의 우연한 효과로 피가 흐르듯 표현되고 있으며, 곳곳에 인간의 얼굴과 같은 형상이 발견되고 그 형상은 점점 강해지기도 한다.   


4부   팝아트와 일상  


 루드비히 부부는 1967년 뉴욕을 방문했고 새로운 예술의 흐름과 접촉하게 되었으며 그 후 팝아트 컬렉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1950년에 영국에서 태동하여,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번성한 팝아트는 대량소비에서 비롯된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을 강조했고, 고유함에 입각한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관에 반기를 들며 일상적인 이미지를 예술적 표현으로 사용했다.  


 팝아트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앤디 워홀은 회화, 판화, 조각, 디자인, 일러스트, 영화, 출판 등 다채로운 예술활동을 했다. <브릴로 박스>는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품 유통용 겉상자를 세세한 부분까지 충실히 재현해낸 원목 조각으로, 기성의 이미지를 무수히 반복하여 주제의 독창성보다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기초한 사회를 발 빠르게 실현한 미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전 앤디워홀의 전시에 갔을 때 가진 의문점인 원본과 복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원본만이 가지는 아우라가 사라졌을 때 복제란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반가운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전에 갔던 기억을 되살려 그의 원화를 보면서 벤데이 점을 살펴보는 시간도 흥미로웠다.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던 동판화 인쇄기법인 벤데이 점 방식으로 대규모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규칙적으로 무리 지어 있는 점들이 진하게 또는 흐리게 찍혀 있는 형태를 살펴보며 입체적으로 작품의 형태를 훑어볼 수 있었다. 



 이 밖에도 포스트모던의 물결이 구체화 된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품들과 마지막 섹션인 독일 현대미술과 새로운 동향에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을 살펴보며 루드비히 미술관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양한 사조의 예술가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이유는 루드비히 부부가 이 작품들을알아 보고 컬렉팅했기 때문이다. 사업가로서의 자금력이 뒷받침 되기는 했지만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는 감식안을 갖고, 수집, 전시, 기증을 통해 컬렉터의 공적 역할을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전시를 보는 내내 350점에 달하는 예술 작품을 기증한 루드비히 부부와 억압적인 정치 상황 아래 요제프 하우브리히가 지켜낸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 나치의 통제 아래 예술 작품을 지켜내고자 했던 시민들의 노력이 느껴졌다.  


 예술을 투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순수한 마음으로 예술 작품을 보존하고, 사랑하고, 기증하고, 공유하려고 하는 마음은 귀하다. 깨끗한 경애의 마음으로 컬렉터의 공적 역할의 순기능을 보여준 루드비히 부부와 예술가, 시민들의 숭고한 업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전문필진 | 박세나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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