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사진을 찾으려고 오전에 오랜만에 페이스북을 로그인했다가 2013년 10월 10일에 내가 올린 글을 보았다. 희미해졌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선생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선생님이 많이 애써주셨는데 치료를 받기에는 제가 너무 늦게 왔나 봅니다. 치료를 못한다는 말을 차마 못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간암을 진단받자마자 이미 수술도 항암치료조차도 불가능한 상태로 온 환자분이 오늘 퇴원하기 전에 나에게 해준 말씀.
암환자를 많이 봐왔기에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빌리루빈(황달) 수치가 30을 훌쩍 넘고 복수까지 차올라 컨디션도 너무 안 좋은 상태에서 끝까지 남을 배려하는 그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복수로 인해 갑작스레 불어난 배를 츄리닝으로 가린 채 부인과 퇴원하는 뒷모습을 보는데......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서울로 올라왔는데 보존적 치료만 한 채 다시 돌아가는 그 환자분의 마음이야말로 어떠했을까......
- 2013년 10월 10일 페이스북 기록 -
떠올려보니 레지던트 1년 차 가을이었다. 50대 남자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암 환자였는데 간에 있는 암의 크기도 컸지만 다른 장기로도 이미 전이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거기에 간 기능까지 매우 떨어져 있어서 아예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태였다. 공막(눈의 흰자)은 노랗게 변해 있었고 배는 복수로 부풀어있었다. 혹시나 간 기능이 회복될 여지가 있을까 해서 며칠간 수액과 간보호제를 투여했지만 전혀 호전이 없었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치료는 암성 통증 조절과 복수로 인한 팽만감을 호전시키기 위한 복수 천자정도였다. 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한 달이 채 안 되어 보였다.
환자에게 '간암에 대해 치료가 불가하다'는 내용의 말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그렇게 단호하게는 차마 할 수가 없어다. 결국 환자에게는 '간암 자체에 대한 치료는 어렵고 현재로서는 간암 및 간기능 저하로 인한 증상들을 조절하는 보존적 치료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완곡히 돌려서 말했었다.
아마도 환자는 처음에 동네 인근병원에서 치료가 어렵다고 들었을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부인과 함께 수 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의 큰 대학병원으로 찾아왔을 그 모습이 상상되었다. 나는 환자의 그 실낱같은 희망을 잘라버린 사람이 된 셈이었다.
그런 나에게 환자는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절망을 했을지 그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의사의 마음까지 헤아리려 노력하면서 또 얼마나 더 힘들었을지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환자의 마지막 인사 한마디에 그전까지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죄책감, 무력감 그리고 슬픔이 뒤섞여 흘렀다. '좋아지실 거예요.'라고 대답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차마 그런 거짓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와 함께 환자가 병동을 나서는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글을 읽으면서 그때 기억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것에 깊이 찔린 것처럼 아프던 그 당시 느낌까지 되살아났다. 잘 시간도 부족했던 1년차 시절에 몇 줄이나 쓴 것을 보면 그날은 감정이 흘러넘쳐서 어쩔 줄을 몰라 글로나마 내 마음을 주워 담았던 것 같다. 그게 내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이었겠지.
그래도 다시 한 번 그 환자를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따라 환자들에게 듣는 '고맙다'는 인사가 마음에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