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파주 북까페에 가는 길이었다. 집에서 파주까지 가는 데는 50분쯤 걸리는데 오늘따라 카시트에 앉은 둘째 아이 자세가 불량했다. 몸을 자꾸 배배 꼬아서 카시트 안전벨트에서 절반쯤 탈출한 모습이었다. 안전벨트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며 첫째 아이가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로 훈수를 떴다. 그러다 목적지를 15분쯤 남겨놓고 두 아이 모두 잠이 들었다.
카페 건물 앞에 도착해서 내렸는데 둘째 아이가 영 비실비실 힘이 없었다. 자다 깨서 그렇겠지 라는 생각에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갑자기 엉덩이를 살짝 빼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와 동시에 아이 입에서 끈적한 흰색 액체와 함께 아침에 먹은 파운드 케이크 조각이 빠르게 분출되었다. 세 번의 분출이 더 일어난 후에야 휴지기가 찾아왔다.
아... 맙소사...
둘째 아이는 어릴 적부터 구토가 꽤 빈번한 편이었다.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 시어머님께서
"OO(남편 이름)는 어릴 때 그렇게 토를 자주 했었는데 OO(첫째 아이)이는 안 그렇나?"
라고 하셨지만 첫째 아이는 1년에 한 번 토할까 말까 한 정도였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그렇지 않다고 괜찮다고 답했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서야 '어릴 때 자주 토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둘째 아이는 이런저런 이유로 토하지만 특히나 기침을 연속해서 하다 토하는 경우가 가장 빈번하다. 기침은 주로 밤에 심해진다. 밤에 침대에 누워 콜록콜록 콜록콜록 콜로오오오오오옥!!!! 기침을 연거푸 하다 보면 그 끝에는 토사물로 얼룩진 침대시트와 이불이 있다. 그러면 나는 자다 깨서 내 키 보다 큰 침대시트와 이불을 조심스럽게 들고 화장실에 가져가서 토사물을 털어낸다. 그다음 손빨래를 대충 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린다. 글로 쓰면 겨우 한 줄짜리인 이 과정이 실제로 겪을 때면 참으로 길게 느껴진다.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갈 때면 한 두 번 구토하는 건 예사다. 재작년 겨울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네 번 토한 적도 있었다. 마지막 구토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에 발생했다. 세 번의 구토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앞자리 석에서 내리는 그 순간 아이는 네 번째 구토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아무리 내 아이의 그것이라지만 닦아내는 그 순간만큼은 너무 힘들다. 물컹하고 끈적이는 흥건한 액체 괴물 닦는 것도 싫지만 닦고 나서의 잔향도 싫다. 그럴 때는 억지로 이런 생각을 하며 이 극한 상황을 헤쳐나가고자 노력한다.
'내 아이는 예쁘다. 내 아이는 사랑스럽다. 그리고 이 순간 가장 힘든 사람은 구토를 해서 속이 쓰리고 불편한 우리 아이이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시 구절이 하나 있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인가 보다.'
다시 아까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토사물로 얼룩져 있는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혹시라도 누가 보기 전에 이 현장을 인멸하고 싶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토사물을 발견하고 기분을 망치는 게 싫었고 꽃무늬 롱스커트를 입은 채 쭈그리고 바닥에 앉아 휴지와 냅킨으로 바닥을 계속 닦고 있는 내 모습을 보이기가 민망했다.
바닥을 계속 닦다 보니 노동요처럼 입에서 저절로 읊조려졌다.
'토를 닦자. 토를 닦자. 이 바닥에 묻은 토를 닦자.'
라임이 딱딱 맞으면서 입에 착착 붙는다. 뭔가 익숙한 리듬이다. 창 내고자 창을 내고자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 토를 닦다가 나도 모르게 시조를 오마쥬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이가 없다.
그런데 토를 닦자 토를 닦자 읊조려도 치우는 일이 끝나지를 않는다. 언제까지 닦아야 다 치우는 거지. 지치기 시작한다. 누가 나 좀 괜찮다고 토닥여줬으면 좋겠다. 토닥토닥 토닥토닥. 토닥토닥 토닥토닥.
앗. 뭐지 이건...? 토닦토닦. 토닦토닦.
그렇게 혼자 토닥토닥하며 토닦토닦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