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입맛은 거꾸로 간다

by 달팽이머리

“하나, 둘…여섯, 일곱.”

주방 수납장을 열어 대충 살펴본 바로는 별이상이 없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잘못 들은 걸 거야…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건조기가 있는 뒷베란다로 향했다.


나는 원래 햇볕에 빨래 말리는 걸 좋아했다.

산뜻한 향을 온 집안에 풍기면서, 햇살 속에 꼬득꼬득 말라가는 빨래를 보면 힐링이 된다.

또, 어머님께는 소일거리가 되기도 한다. 탈수된 빨래를 나눠드리면 열심히 건조대에 널어주신다.

내가 빨리 일을 끝내고픈 마음에 후다닥 빨래를 널고 나면, 어머님이 수건부터 양말까지 짝을 맞춰 다시 정리도 하신다.

그런 식으로 가지런히 빨래를 널어놓은 후, 뿌듯한 표정으로 소파로 가서 앉으신다.

나는 TV를 켜서 어머님이 좋아하는 트롯방송을 찾아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빨래건조대 쪽으로 가신다.


“이거… 다 마른 거지?”

“예?… 아니 이거 이제 금방 널었잖아요. 어머니!”

“나는 생각이 안 나네…”

다시 소파로 와서 앉으신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또 일어나신다. 손으로 축축한 빨래를 만질 때는 잠깐 수긍하다가, 이내 잊고 위와 같은 질문을 반복하신다. TV도 안 보고 오로지 빨래만 쳐다보신다. 다 마를 때까지 묻고 또 물어볼 기세로 소파와 젖은 빨래사이를 왕복하신다.

그런데 젖은 빨래를 계속 만지다 보면 어느 순간 다 말랐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시나 보다. 그런 빨래는 젖은 채로 옷장에 슬쩍 넣어두신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거실에서 빨래를 말리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웬만하면 건조기를 이용한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우리 집 세탁기와 건조기가 뚝 떨어져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날도 세탁된 빨래를 들고 뒷베란다의 건조기로 가는 중이었다.

“후릅~ 춉!”

빨래바구니를 들고 어머님 방앞을 지날 때 언뜻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일단 빨래바구니를 뒷베란다에 갖다 두고, 어머님 방문 앞으로 다시 갔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주방으로 가서 수납장을 열어보았다. 어머님전용 고영양식음료수가 보관된 곳이다.

일곱 줄이 나란히 잘 정리되어 있다.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 음료수는 영양가가 높아서 하루에 두 세팩 정도만 드렸는데, 언제부턴가 무제한으로 드시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마셨는데도 계속 달라고 하셨고, 나중에는 직접 수시로 꺼내 드셨다.

지나친 과체중이 되면 무릎관절염이 심해지기도 했지만, 식사량이 준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음료수를 몇 개나 가져다 드시는지 파악하려고 줄을 맞추어 다시 정리했다. 빠지는 빈자리를 보면서 드시는 양도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들린 “후릅~춉!”은 분명 빨대 빠는 소리처럼 들렸기에, 황급히 주방으로 와서 수납장을 확인해 본 것이다.

두어 번 세어봤지만 일곱 줄 그대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건조기로 가서 남은 일을 마저 끝냈다.


하지만 나는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집안일을 하는 이런 순간들이 오히려 어머님에게는 기회였었다. 방에서 느긋하게 음료수를 계속 마실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들키지 않았던 비결(?)을 공개하자면, 앞쪽에 줄 맞춰 있는 애들은 절대 안 건드리고, 뒤쪽에 있는 애들부터 가져다 드신 거다.

눈에 보이는 앞줄만 세어보고 별 이상이 없다고 생각한 나의 불찰이었다. 청소를 하다가 어머님방 쓰레기통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음료수 빈 팩들을 보고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이런 작전이 가능하시다고…? 치매이신데…?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뭔가 희망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음식자체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셨다. 점심을 밖에서 먹고 나면 과식한 것 같다고 저녁은 안 드신다고 할 정도였고, 간식거리도 별로 즐기지 않으셨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달달한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셨고 많이 드시기도 했다. 고영양식 음료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했다.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되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그때뿐이었다.

음료수는 안방 옷장 깊숙한 곳으로 옮겨졌고 늘어나던 어머님의 배둘레도 겨우 진정되어 갔다.


‘나이 들면 애가 된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입맛이 아이처럼 변하셨다.

어머님의 입맛이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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