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해욱 Jan 21. 2021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식상생재

 실은 죽지 못해 살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올해의 운은 사주로 보아 전형적인 식상생재의 운이다. 쉽게 말하자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버는 한 해가 된다는 뜻이다. 분명히 그렇게 될듯 하긴 하다. 하지만 현재 나의 처지에서 보면 약간의 , 아니 큰 애로사항이 있다. 난 프리랜서고 프리랜서는 불러주기 전까지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적게 일하고 많은 돈을 받으니까. 내 생활을 충분히 즐기고 또 취미생활도 마음껏 즐기면서도 금전적인 부족함이 없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이렇게 탱자탱자 놀아가면서도 번듯한 내 집도 있고 차도 있고 투자도 하고 있으니까. 개뿔 그렇다해도 한편으론 대기업에서 감투를 쓴 것도 아니고 (어차피 팔자에 조직생활은 없지만 ) 남들이 봤을때 번쩍번쩍하는 사자직업도 아니다. 명예넘치는 교수등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보면 분명히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이 딱 그런 부분이다. 아무리 열등감을 느껴봤자 이번 생에서 채워지지는 않을거겠지만. 아무튼  내가 아닌 일반 직장인의 처지에서 나를 본다면 나를 부러워 할 것 같긴 하다. 딱 그런 포지션에 내 삶이 자리잡고 있으니까. 


 어쨌든 그 시선에 대해 아니라고 부인을 해보자면 

 실상 나로 살아가는 것은 고통이 많다.  난 이렇게 여유넘치게 살아가기에는 너무 부지런 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고 싶다. 진심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난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휴식이며 나같은 일 중독자들, 끊임없이 집중할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한다고. 이게 과연 맞는 말인가? 말 나온김에 그 설명좀 해 보겠다. 


 명상마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머리속에는 송과체라 불리는 부분이 있는데 진짜 휴식은 이 송과체를 감싸고 있는 근육들을 풀어주는거예요. " 쉽게 말해 우리의 머리를 위에서 내려다 보며 정가운데, 즉 백회혈을 따라 주우욱 머리 안쪽으로 내려와보면 미간 쯤 왔을때 송과체라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송과체를 감싸고 있는 근육들에 힘을 풀어주었을때 비로소 마치 자기부상열차처럼 이 송과체는 편하게 둥둥 떠 있게 되는데 (실제로 떠있다기 보단 느낌적인 표현이다. ) 그때 비로소 에너지의 충전이 이루어지며 뇌의 피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알면서도 안한지도 오래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더 뭔가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난 쉬고 싶지 않다. 이미 인생의 너무 많은 부분을 쉬어버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직장인들에 비해) , 난 분명히 실직자가 아니고 불과 몇일전까지 멋드러지게 일을 하고 , 아 난 성우다. 딱 광고만 하는 성우다. 티비광고에 나오는 목소리가 내 목소리다. 얼마전엔 삼성, 그전엔 카카오, 뭐 그런 일을 10년째 하고 있다. 라고 하지만 야매성우다. 방송사공채출신성우가 아니니 야매라는 말을 붙이는게 내가 마음이 편하다. (그래야 다른 성우들에게 뒤에서 밥그릇때문에 욕을 좀 덜 들어먹을 거 같은 이유도 있다.) 


 아무튼 프리랜서임에도 일이 없어 강제로 쉬고 있으니 울적하기 짝이 없다. 물론 최대한 꽉꽉 할 것들을 시간속에 채워두긴 한다. 운동도 다녀왔고 밥도 해먹었고 , 청소...는 안했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을 다녀왔고 게임도 좀 했고 부동산관련 인터넷강의도 좀 들었다. 세탁소에서 한달만에 옷도 찾아왔고 집 옆에 있는 산책로로 산책도 했다.  아 나 이렇게 써보고 나니 알겠다. 내가 생산적인 일, 그러니까 일다운 일을 하나도 안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다행이다. 생산적인 일에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포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나면 오늘의 식상생재는 한 셈이다. 비록 당장 돈이 되는 생재는 아니지만 말이다. 


 남들은 하루를 모조리 브이로그로 찍어서 편집하고 공유하는데 난 이상하게 그게 참 힘들다. 길을 걸어다니며 카메라를 찍는 것도 어색하고 그걸 다시 컴퓨터로 옮기고 어쩌고 저쩌고 편집을 하고 녹음을 하고 그게 정말 상상만해도 고통스럽다. 물론 난 그 모든 과정을 해봤고 또 할 줄 안다. (그래서 그런가? ) 어쨌든 그래서 글로 쓰는게 훨씬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V로그가 비디오기록, 즉 비디오로그니까. 이렇게 글로쓰는건 뭐라고 부를까. 일기라는 표현은 좀 진부하니까. B로그? (book) l로그? (letter) . 아 그냥  글.로그로 해야겠다. 뭘해도 일기보단 어감이 나으니까. 일기는 그냥 이유없이 챙피하다. 


 같이 유튜브를 하기로 했던 친구가 있다. 유명한 그룹의 멤버인데 그룹의 인지도에 비해 친구의 인지도는 좀 낫다. 그런데 재치있고 웃기고 노래도 잘한다. 무엇보다 잘 먹는다. 친구를 불러서 잔뜩먹이는 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로 올리면 어떨까? 같이 병맛더빙도 하기로 했는데 영상을 정해서 회의하기로 해 놓고선 아직 못했네. 그래 내일은 그걸 해야겠다. 영상을 찾아서 보내서 회의를 해야겠다. 


 인성은 식상을 극한다. 인성은 공부다. 식상은 이렇게 글을 쓰거나 생산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부에 빠지면 인성은 식상에게 브레이크를 걸어 손발을 움직이지 않고 게으르게 만든다는 뜻도 된다. 내가 요즘 그랬다. 사주공부에 빠져있어 눈뜨고 눈감을 때까지 주구장창 사주공부만 했다. 돈을 받고 사주와 타로를 봐주기도 했으니 그것도 식상생재이긴 하다. 그래 이런식으로 매일매일 식상을 써야겠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팔다리, 움직이기 싫어하는 내 몸뚱이를 더 움직여서 매일매일 과제를 주고 클리어하게끔 해야겠다. 내일 또 할 게 뭐가 있나. 내일 저녁에는 일식학원에서 광어를 잡을테니 오전에 가락시장에 가서 도다리를 사온다음 회뜨는 연습을 좀 해봐도 좋겠다. 아니면 진짜 부득불 브이로그를 찍어서 편집을 해도 되고 말이다. 뭐가 됐든 손발을 쓰고 생산을 해 놓으면 분명 미래에 생재를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 



 


 




 


 


작가의 이전글 단언컨데 당신은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