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후모톳바라에서

by 슬쩍계획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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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후지산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는 넓은 초원과 자욱하게 깔린 안개,
그리고 생각보다 조용한 공기만이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허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은 재촉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후지산은

일정한 시간표에 맞춰 등장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밤이 가까워질수록
공기는 조금씩 차가워졌고,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어디선가 끓는 물소리와
천을 여미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말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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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순간,
후지산은 아무 말도 없이 나타났다.

나타났다기보다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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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라는 흰 이불이 걷혀도

후지산은 자신을 증명하지 않았다.
그냥 거기에 있었다.


그 앞에 서 있으니
가지고 있던 모든 걱정들이

괜히 앞서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건 이미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아직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니

결국 보였을 뿐이다.


후모톳바라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장소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보이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는 마음.


그래서 이곳을 떠올릴 때
후지산보다 먼저 기억나는 건
후지산을 기다리던 나였다.


보이지 않았던 시간,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나 자신.


산은 결국 모습을 드러냈고,
후모톳바라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캠핑 의자에 앉아

홀짝이던 커피 한 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