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기 전,
카와바 스키장 정상에서

by 슬쩍계획형

카와바 스키장 정상에 올라 내려가기 전,
눈 위에 앉아 보드를 채우며 정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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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속에 쌓였던 것들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탁 트인다는 말은, 눈보다 마음이 먼저였다.


스키장으로 향하던 아침,


새벽부터 버스를 기다리던 시간에는
긴장과 설렘이 반씩 섞여 있었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가 유난히 인상적이었는데,
익숙한 듯 낯선 풍경 때문인지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여행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보드는 잘 타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초보자 코스에서 잠깐 요령을 배웠고,
정상을 향해 다시 올라갈 때는
기대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조금 더 컸다.


리프트에서 내려 장비를 채우려고 눈 위에 앉았을 때,

시야를 가로막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정상 아래로

눈으로 덮인 산들이 겹겹이 이어져 있었고,
한참을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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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보드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는

풍경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눈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가면서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그날 카와바 스키장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얼마나 잘 탔는지가 아니다.



내려가기 전, 눈 위에 앉아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바라보던 그 순간이다.


아마 다시 가도,
나는 또 정상에서 잠깐 멈춰 앉아
그 풍경을 보고 내려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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