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풍경 앞의 나

변하지 않은 풍경 앞의 나

by 슬쩍계획형

기요미즈데라로 향하는 길은

일본어보다

다른 언어들이

더 많이 들렸다.


말들이 겹치면서

의미는 흐려졌고,

소리만 남았다.


소란스러움은

늘 불편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이 낯선 번잡함 덕분에

외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본당을 지나

사람들이 드문 산책로에 들어섰을 때,

공기가 달라졌다.


소음은 자연스럽게 낮아졌고,

발걸음도 느려졌다.


카메라의 셔터음 대신

신발 바닥에 닿는 흙 밟는 소리가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언어들 대신

조용한 숲의 소리가 반겨주었다.


낯선 번잡함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은 지쳐 있었다.


그날 기요미즈데라에서 느낀 건,
하나의 감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낯설음의 여러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기억을 불러왔다.




처음 일본을 여행했을 때였다.


지도를 살피며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찾아갔다.


수없이 사진으로 보아온 풍경이었지만,

막상 그 앞에 서자

한동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
이번 여행에서도 그 장소를 일정에 넣었다








82 (1).jpg


금각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연못 위에 일렁이는 금빛 사찰도,
주변을 감싸는 풍경도

기억 속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분명히 들었다.


다만,

예전처럼 오래 서서

바라보게 되지는 않았다.


시선은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변한 건 풍경이 아니라 나였다.


금각사는 변하지 않았고,
나는 기억보다

조금 더 걸어와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내려가기 전, 카와바 스키장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