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적, 부품적, 기능적 인간관

by 로지

Part 1.

1

언젠가 이 글을 돌아보면 너무 철이 없었다고, 한창 서투르고 미성숙한 때였다고 생각하는 미래의 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고 지적 받거나 감지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이상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무결하고 완성된 모습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둘 중에 하나이다. 상처받지 않으면서 미숙하고 불완전하고 왜곡된 상태로 남아 있거나, 상처받을 용기를 내면서 굴욕과 치욕과 같은 대가를 지불하고 완성될 수 있는 기회를 얻거나.



[[피드백의 적정 가격은 굴욕감, 치욕감, 모욕감, 모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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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드러내려 노력하면서 느끼는 점은, 내가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민감한 주제일수록 나의 더 많은 부분을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반대로 누구나 공감하거나 불변의 진리에 가까운 주제들은 나의 아무 부분도 드러내주지 못한다.



민감한 주제란 나와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이 쉽게 존재할 수 있는 주제이며, 동시에 그 정반대의 의견을 마주했을 때 비난과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주제이다. 또한, 동시에 결이 비슷한 사람에게서는 큰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주제이다.



[[두 개의 답, 믿음에 대한 시험, 이건희 핸드폰 내구성 시험 일화]]

[[어쨌든 간에 누구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2024년 3월 20일 17시 59분)]]

[[호감도 고정 비율의 법칙과 트레이드 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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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적, 부품적, 기능적 인간관에 대해 써보고싶다.



'인만추'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조건을 보고 만나는 게 일종의 대세 혹은 정석이 된 시대이다.

주식에서 원하는 종목을 찾듯이, 조건으로 필터링해서 만나는 것. 사람은 검색의 대상, 필터링의 대상이 되었다. 검색하고 필터링할 수 있는 측면에서 사람은 물건과 다르지 않게 된다.



방법론, 관점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꽤 많이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라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스턴트 식품과 같은 삶. 플라톤적인 삶. 게임같은 삶. 우연보다는 통제된 시스템에서 그 나이대에 부여된 시험 잘보기, 학원 다니기, 취업 잘하기와 같은 퀘스트를 깨며 살아가는 것. 취업 잘하기의 다음 퀘스트는 '결혼 잘하기'이며, 당연히 퀘스트는 연봉 얼마, 모아둔 재산 얼마, 키 몇, 부모님 재산 얼마와 같은 달성 조건을 포함한다.



이런 것을 볼 때 나는 글러먹었다거나, 틀렸다기보다, 편식만 하는 아이를 바라볼 때 드는 느낌에 가까운 감정이 든다. 당장 맛있는 것만 먹는 아이. '그렇게만 먹으면서 크면 후회할텐데 ..'라는 생각.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순수하게, 그 사람과 그 사람으로 인해 일어난 일련의 꿈같은 일들, 그런 돈으로 살수도 없으며 만들수도 없고 조건식으로 필터링할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나며 불시에 빠져들게 되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 같다. 대다수일수밖에 없고.



그러면 듣고 보고 접하게 되는 사랑에 대한 이미지는 이런 게 제외된, 상상이 쉽게 가능한 유물론적, 부품적 인간관의 아래에 있는 사랑인 것이다.



7의 남자, 7의 여자. 이런 개념도 그렇게해서 온 것 같다. 그동안 만났던, 실제로는 조건적 관점에서 볼 때 어디 하나 부족한 연인들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던 가장 부각되는 점만을 추리고 추려서 만들어낸 조건. - 그동안 만난 사람들보다는 조건적으로 더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암묵적 욕망. - 이 점에서 나는 정말 명백하게 모든 면에서, 혹은 평균치로라도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내가 만날 수 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의문을 갖는다. 그 '조건'이라는 것에서 급격한 리그 상승이 있지 않는 한. 왜냐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가치를 더 높게 부여한다는 것이고 그 말은 내 조건이 그 사람보다 더 낮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인지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휘둘릴 것이기 때문이다. 통제권이 상대에게 있게 된다. 그리고 상대가 나와 똑같이 유물론적, 조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역시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찾을 것이다. - '나'가 아니라. - 그래서 이런 이유로 나는 조건적인 사고관이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데에 별로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후회나 미련이 남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글쓰기, 나의 부족함에 대한 직시, 가야 할 길]]

내가 나 그 자체로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사용되고 소모됨에 대해 쓴 글은 사랑, 연애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내가 가진 것, 재산을 보고 나를 택하고 곁에 머문다면 그것은 정말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러면 내가 불의의 사고로 그것들을 다 잃게 되면 떠나갈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돈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대출이라는 개념, 유행하는 트랜드 그 모든 건 인간이 아주 최근에 만들어낸 개념들이다. 사실 그런 재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비교와, 정상에 들어가서 나도 그 '평범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끝없이 하게되는 남과의 비교에서 우위에 서려는 욕망이다. 피상적, 유물론적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욕망들.



유물론적이고 부품적이고 기능적인 인간관이 나쁘기만 한건 아니다.그것은 인위적으로 형성이 가능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상이 널리 퍼져있으면 계획으로 돌아가는 경제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한 이런 개념은 유서깊기도 하다. 소개팅, 썸이라는 말도 없던 시절 선을 봐서 연애 없이 결혼하던 세대가 바로 이전 세대였고, 부모님이 정해준 배우자에게 얼굴도 모른 채 시집, 장가가던게 그 이전 세대였다. 꿈꾸는 것 같은 매일을 산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우연, 타이밍의 발생 같은 것들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도록 보장할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소수의, 이런 세속적인 세계관에 물들기 전인 사람들 중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다.



내가 말하고싶은 것은 안타까움이다.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할수밖에 없게 된 것에 대해. 삶이라는 코스요리는 정말 많은 메뉴가 존재하는데,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하나의 메뉴만을 위해 다른 메뉴를 맛보지 못하고 삶은 곧 그 단일 메뉴인 것이라는 생각으로 직결시키는 것을 보고 든 생각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다양한 메뉴를 찾아나서는 사회도 상상하기가 어렵다. - 제대로 돌아갈까? 좀 더 큰 복잡성과 야생에 가까울 것이다.



나 역시 유물론적이고 기능적이고 부품적인, 누구라도 조건만 맞으면 대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사람을 책처럼 여기자. 책의 겉표지가 하드커버인지 가죽커버인지는 그저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 중 어느 책을 시도할지에만 작은 영향을 미칠 뿐이다. 독서를 시작하고 그 책의 내용을 알아감에 있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미래에도 사람의 유년시절과 배경과 꿈과 열정과 희망이 만들어낸 스토리를 읽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놓치지 않을 것이다.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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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을 갖추려 하고, 유용성을 갖추고, 여분을 축적하기 위해 주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오면서 그 방법이 초래하는 결과가 내가 원치 않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 방식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정반대의 방법, 내가 전혀 추구하지 않았으며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방어하고 회피하려고 했던 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은 당신이 절대 찾지 않을만한 곳에 가장 귀한 보물을 숨겨두었다.]]


[[ 유물론적, 부품적, 기능적 인간관 ver 0.1]]

> 나를 드러내려 노력하면서 느끼는 점은, 내가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민감한 주제일수록 나의 더 많은 부분을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반대로 누구나 공감하거나 불변의 진리에 가까운 주제들은 나의 아무 부분도 드러내주지 못한다.



한 가지 모순은, 이 글을 쓰며 유물론적, 부품적, 기능적 인간관에 대해 거부반응을 나타낸 나조차도 그 인간관을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살아왔다는 점이다.

[[나의 부족함에 대한 직시, 가야 할 길]]

> 1-8. 나는 사람이 아니라, '기능'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 기능은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것이다. - 왜 나는 지속적으로 이용당하기만 한다고 생각했는가에 대한 해답.



쓰임새가 아니라, 그 사람을 보고 그 자체로 좋아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니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아마도 나는 여전히 기능적으로 바라보고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의 실현 여부는 검증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측 장비를 통해 특정 값이 임계치를 넘어설 때 'True'라고 나타낼 수 있는 그런 게 아마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철저히 주관적인 영역일 것이기 때문이다. - 자기기만의 영역.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증명할 의무도, 필요도 없는 영역. 남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면 되는 영역.



이런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이것은 호르몬의 마법, 사랑의 콩깍지 라는 것으로 커버가 된다 .사람 자체를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후 반응으로서 처음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러니까 조건적이고 유물론적인 관점으로 사람을 필터링해서 찾고 만난 사람이라도 이 마법의 콩깍지가 씌워지면 어느새 그 사람을 조건이 아닌 사람으로 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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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주관의 영역을 피해왔던 것 같다. 흐물흐물하다는 것. 단단하지 않다는 것. 생각들의 조합을 통해 결론을 내리더라도 언제라도 생각이 바뀔 수 있고 또한 내가 내린 결론이 수학처럼 절대 불변의 진리의 영역에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언제나 이것이 낭비라고 생각했다. 애써 만들어 놔봤자 다시 허물어버려야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고유한 결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중에 그 생각이 바뀐다고 할지라도 - 마련 비용의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이라도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만 어느 쪽으로든 인연의 방향이 정해질 수 있기 때문에.



[[반직관이론, 시간에 대한 가성비를 따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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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한 줄기로 합쳐지는 게 아닐까? 일종의 스케일을 도입하는 것이다. 누구나 유물론적 부품적 기능적 인간관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정도가 크냐 작냐 차이일 뿐이고 일단 서로가 우연이 되었든 인위적인 계기가 되었든 만나서 공통의 시간을 보내고 둘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어느 누구도 아닌 두 사람의 머릿속에만 공유되는 기억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 계기가 자연적이었건 인위적이었건 간에 그와 상관없이 '사람을 책으로써 대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게 아닐까?



이것이 좀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없을 때 어무 조건도 보지 않고, 그 사람 자체만을 보고 사랑을 했던 경험이 없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던 나는 오만했던 게 되는 것이다. - 정말로, 이것은 어떤 측정기를 쓰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물질적 조건을 보지 않았더라도 성격적인 조건 또는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고 예의 바른지 또는 얼마나 미래에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얼마나 자신에게 헌신적인지와 같은 '조건' 을 봤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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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론을 검증해보는 한 가지 검산 과정을 수행해 볼 수도 있다. 유물론적, 부품적, 기능적 인간관에 대한 나의 이미지에서 이것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핵심 질문은 "그 똑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으로 환승하더라도 똑같이 생활해나갈 수 있는가?" 라는 점, 혹은 " 더 나은 가진 조건을 가진 사람으로 환승한다면 더 만족하며 생활해 나갈 수 있는가?" 였다.



1번에서 내가 생각한 이미지는 그 사람 자체의 고유성을 강화한다. 시작점이 인위적이었던 전형적이었든간에 일단 시작하게 되면 둘만의 시간을 추억으로 갖게 된다. 그래서 만약 똑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으로 환승하게 된다면 둘만의 고유한 추억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치 컴퓨터 부품을 갈아끼워도 바로 켜지고 똑같이 쓸 수 있는 정도로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0에서부터 시작하더라도 그 궤적으로, 같은 방향성으로 기꺼이 사랑을 키워갈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애초에 이런 조건으로 필터링하는 과정이 없이 시작된 관계의 경우에는 그 만남의 계기 자체가 너무나 고유하기 때문에 그런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너무나 우연적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위의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 타이밍과 맥락과 환경을 복제한다거나 재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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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니 조금 헷갈린다. 앞선 책 비유를 확장해서 다시 정리해본다.



사람을 만나는 과정은 서점에 가는 것과 같다.

아무도 눈을 감고 무작위로 책을 집어 들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보거나, 양장본인지 종이책인지(재력), 표지가 예쁜지(외모), 장르가 나와 맞는지(성격/가치관)를 따진다. 이것이 바로 '유물론적/기능적 인간관(조건 필터링)'이다. 소개팅이든, 인만추든, 심지어 우연한 만남이든 초기 진입 장벽을 넘는 데에는 반드시 어떤 형태의 '조건'이 작용한다.



하지만 진짜 마법은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할 때(둘만의 시간과 기억을 공유할 때) 일어난다.

책을 읽으며 나는 42페이지에 커피를 쏟았고, 105페이지의 어떤 문장에 밑줄을 쳤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며 책을 던져버렸다.(아니면 이미 마지막 페이지가 끝났는데 하염없이 그 다음 장을 넘기려고 허우적댔거나) - 이제 이 책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책'이 되었다.



이때 여기에 환승 테스트를 적용해본다.

누군가 내게 "똑같은 내용이 적힌, 표지도 더 깨끗하고 심지어 가죽 커버로 된 새 책(더 나은 조건의 사람)으로 바꿔줄까?"라고 묻는다.

바꿀 수 있는가? 없다. 왜냐하면 새 책에는 내가 쏟은 커피 자국(같이 겪은 위기)도, 쳐둔 밑줄과 낙서(둘만이 아는 농담과 추억)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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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점으로 결론내린다면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다.

- 모든 만남의 시작은 어느 정도 유물론적이고 기능적(조건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기능적 부품이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존재'로 연성되는 것은 오직 둘이 함께 쌓아 올린 '시간과 서사(추억)'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내가 이 글을 쓴,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던 점은 이 유물론적, 부품적, 기능적 인간관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은, 사람들이 '조건을 본다는 것' 자체가 아니었다. -나조차도 '장르'라는 조건을 보고 있었다. - 조건을 보고 만난 뒤에, 그 사람을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존재로 만들어가는 '독서의 과정(사랑과 헌신의 과정)'은 생략한 채, 평생 표지와 스펙만 비교하며 더 나은 책으로 '환승'할 궁리만 하는 얄팍한 세태가 안타깝다는 감정이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이었다.



[[ 사랑의 정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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