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헤현 Dec 24. 2020

<퀸스 갬빗> 천재를 정의하자면.

[콘텐츠로 세상 읽기]

*해당 글은 조금의 수정을 거쳐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2617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에디슨이 남긴 명언으로 알려져있다. 어렸을 때, 이 문장을 처음 본 순간 '99퍼센트의 노력'이라는 말에 엄청난 동요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노력이 그만큼 중요하구나 '라고 생각했으며, 때마침 그 시절 급훈 중 하나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였고, 중2의 나는 그때부터 노력의 신화를 믿었던 것 같다. 시간은 흘렀고, 애쓰기만 해서는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노력해서 얻어 낸 무언가에 정말 노력만 있진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에디슨의 말에서 정말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99퍼센트의 노력이 아니라 '1퍼센트의 영감'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 망설임 없이 고개가 끄덕여진 것은 그냥... 당연했다.



https://youtu.be/qNC0WKAe7kA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스 갬빗>의 하먼은 천재이다. 체스 천재. 하나를 가르쳐주니 열을 깨우쳤다. 주인공이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설정은 언제나 희열을 준다. 저런 능력 하나 갖췄으니 앞으로 있을 방해물은 에피소드 두 개 정도의 분량이면 해결될 것이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무척 드물기 때문에, 주인공의 천재성이 발휘되는 순간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렇듯 방해되는 것이란 없어보이는 하먼에게 유일한 방해거리가 있었으니,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이 드라마에 악역같은 악역이 없다. 하먼의 승리와 성공에 훼방을 놓는 건 매번 본인이다.


하먼은 엄마를 잃고 보육원에서 크는데, 그곳에서 주는 안정제에 중독 된다. 안정제를 먹으면 실물의 체스판을 보지 않고도 체스를 할 수 있다. 천장을 보면서. 그 장면들이 너무 잦고 반복되어서 보는 내가 불안할 정도였다. 내가 몰입 장인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설마 안정제 없이는 체스를 못하는 설정인가 싶어서 '10초 앞'을 얼마나 눌러댔는지. 결론적으로 안정제가 없다고 체스를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잘 못하게 되긴 했다. 그러니, 막상 천재에게 중요한 건 천재성이 아니었다.


<하이큐 to the top>,  아츠무 캐릭터는 천재라고 여겨진다.


배구 만화, <하이큐>의 애니메이션 버전을 보다보니 이런 대사가 나왔다.


"내가 매일 같이 1에서 10을 하는 것을 아츠무 같은 녀석들은 1에서 20을 하고 있어. 혹은 더욱 효과적인 10, 밀도 높은 10, 그리고 가끔 1에서 10이 아니라 A에서 Z를 해보면 어떨까?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녀석들이야. 그러다 실패를 해도, 가끔 남들이 미워하고 자신을 멀리해도 우리라면 소중히 할 무언가를 소홀히 하더라도 안하고는 못 배기는 녀석들이야. 목에서 피가 나도 달리고 싶어 못 배기는 녀석들이야."



<퀸스 갬빗>의 마지막이 상징적인 이유는 바로 그래서이다. 하먼이 하먼을 이겨내는 노력이 있고나서 비로소 이겼으니까. 1에서 20을 하는 노력, 알코올과 안정제는 포기해도 체스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결정... 그런 것이 있었다.  


100에서 1의 천재성이 없더라도 99는 채워진다. 그러나 99의 노력이 없이 재능만 있다면 다만 1에 불과하다. 노력의 신화를 신봉하기엔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주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그렇다고 노력 없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진 않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해당 글은 조금의 수정을 거쳐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261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