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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미술쌤 옐로 Oct 08. 2021

글을 그리면서 그림을 쓴다

08. 어느 날 문득 행복한 발견


진정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삶의 모습이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착한 일을 하려고

힘쓰고 애쓰기보다는

나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힘쓰고 애쓴다.     



톨스토이의 시 ‘옳은 행동’은 그림에 대한 욕심으로 지치게 될 때 찾게 된다. 시를 낭독하며 다짐한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하던 대로 하자. 대단한 걸 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꾸준히 하기 위해 힘쓰고 애쓰도록 하자.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마음 쓰지 말고 진정으로 그림에 몰두하자. 어떻게 채울까는 끊임없는 고민과 선택의 시간이라 했다. 떠오르지 않는 아이디어를 쥐어짜다가 우울해지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 찾아본 작품에서 평생을 걸쳐도 닿을 수 없을 재능을 엿볼 때면 비통해하기도 한다. 좋은 감정을 잃어버린 채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면 톨스토이의 시를 찾는다. 제자리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제자리.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기교가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그림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전달자에 가깝다. 작업에 매진하는 인내보다는 어떤 작업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몰두하는 인내가 더 크다. 그림으로 힐링하는 모습을 보면 잔잔한 기쁨이 전해지기도 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참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감사함은 힘들었던 기억까지 좋은 기억으로 바꾸게 한다. 자료수집을 위해 주말을 반납해도 억울하지 않다. 오히려 쉬는 것보다 좋을 때가 있다. 이런 삶을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적도 있다.     



그렇게 지내다가도 작품에 대한 욕심이 물밀 듯 밀려오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시린 날이 되어 버린다. 보기 좋기만 하던 아이들의 연필 쥔 작은 손이 무의미해지고, 끊임없이 재잘대던 이야기 소리가 귓가를 떠난다. 그림으로 힐링된다며 웃음 짓던 분들의 모습도 사라지면서 더 열심히 해야지 하던 마음도 같이 사라져 버린다. 대신 특별함을 찾아 헤매고 있다.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는 작가들을 보며 새로운 계획까지 세워보지만, 시원찮게 느껴질 뿐이다. 보관 중이던 스케치북을 뒤져보고 저장된 사진을 수없이 클릭하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몇 번 그런 일을 겪다 보니 든 생각이 있다. 이럴 땐 만사 제쳐두고 다 끄집어내서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상기시킬 수 있다. 욕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림이 그리고 싶던 행복한 발견에 대해서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장미꽃을 좋아해도 행복한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림으로 그리는 게 쉽지 않다. 어떤 표현을 하면 좋을까에 사로잡혀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을 하염없이 바라봐도 꼭 맞는 느낌이 나오지 않는다. 스케치를 반복하고, 사진으로 찍어 분위기를 살피고, 멋진 작품을 참고해 봐도, 모든 게 미궁 속에 있다. 장미꽃에 대한 발견이 있었을까? 남겨두었던 스케치와 메모를 찾아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제일 재밌는 건 꼬리표가 맞게 붙은 장미는 아예 없거나, 있어도 극히 드물었다는 점이다. 한 번은 ‘도로시 퍼킨스’ 장미인 줄 알고 산 게 피고 보니 속이 노란 예쁜 백장미였는데, 내가 본 덩굴장미 중에서 최고였다. 노랑 폴리앤사 장미라는 꼬리표가 붙은 건 피고 보니 짙은 빨강이었다. 또 한 번은 앨버틴 장미라고 해서 산 게, 앨버틴을 닮긴 했지만 꽃잎이 더 많아 아주 화사했다. 이 장미들은 하나같이 깜짝 과자 봉지 같은 재미를 선사했고, 언제나 뜻밖의 새로운 품종이 나타나 별난 이름을 붙여봄 직한 기회를 누리게 해 주었다. ]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 ‘나 좋을 대로’라는 짧은 글이 있다. 오웰이 문예 부문 편집장으로 있던 <트리뷴>지에 말 그대로 좋을 대로 쓰던 고정 칼럼의 글 중 하나이다. 장미꽃을 가꾸며 예상을 벗어난 즐거움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해마다 거듭 꽃이 피고 지기를 상상하는 모습이, 진중해 보이기만 하던 작가에게 새로운 모습이 느껴지는 것 같아 좋았다. 내 언젠가 장미꽃밭에서 살리라는 결심도 하게 만들었고, 이때만큼은 흐드러진 장미를 아무렇게나 붓으로 찍어도 모든 게 근사할 것 같았다. 전쟁과 심적 갈등으로 힘들어했던 그에게 장미꽃을 가꾸는 일은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하니 더더욱 그랬다.     



[아빠가 엄마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엄마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레쉬 씨는 프리드리히를 걷어찼다. 프리드리히는 기대어 있던 현관에서 포석 위로 굴러 떨어졌다. 오른쪽 관자놀이에서부터 셔츠 깃까지 핏자국이 생겼다. 나는 가시가 돋친 장미 덩굴을 경련이 날 정도로 꽉 움켜쥐었다.

“이런 꼴로 죽는 것도 다 제 놈 팔자지.”

레쉬 씨가 말했다.]     



한스 페터 리히터의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소설에서 주인공 하인리히가 유대인 친구 프리드리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가시 돋친 장미 덩굴을 꽉 움켜쥐던 장면이다. 가시가 따갑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분노와 슬픔, 충격에 휩싸이지 않으면 일부러 가시를 움켜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날은 가시 같은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몸에 가시가 박히는 것보다 마음에 가시가 박히는 게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과 무서움이 공존하는 느낌을 장미로 표현해 보고 싶게 했다.     



장미축제에 가서 다양한 색깔의 장미를 보았다. 흔히 예상하는 빛깔보다 다채로워 놀랍기도 했지만, 매력이 반감되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파란 장미를 개발하기 부단히 노력했고 일부는 성공하기도 했는데 연한 보라색을 띤 완전한 파랑은 아니라고 한다. 기적이나 불가능이라는 꽃말을 지닌 이유이기도 하다. 파랑 장미만은 완전한 개발이 이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신비스러운 환상을 경험하는 게 좋아서이다. 색깔에 따라 전해지는 이미지가 있어서 인물과 함께 그려보면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같은 색의 장미라도 조금 더 잘 어울리는 인물이 따로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 인물에 어떤 색의 장미를 매치하냐에 따라 새로운 분위기가 났었다. 선택 순서에 따라 상상하는 게 달라지기도 했다. 빨간 장미를 기준으로 정하면 열정적인 분위기의 인물들이 떠오르는데, 어떤 인물이든 빨간 장미를 곁들이면 다른 분위기였더라도 열정적으로 보이기도 한 것이었다.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워 한때 장미 그 수 천명의 사람들이란 주제에 빠져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장미처럼 숱한 매력을 찾고 싶어 했다.   


  

퇴근길엔 어두워서 지나치기 일쑤지만 출근길에 매번 감탄하며 좋아하는 것이 장미가 만발한 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붉은 점들이 수없이 박혀 있는데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장미꽃으로 변하면서 시야에서 사라진다. 멀리서 보면 점이고, 가까이서 보면 장미꽃이다. 달리면서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이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된다. 요즘은 더 신난다. 장미가 만발한 만큼 풀이나 들꽃들도 우거져서인지, 장미 향과 더불어 풀 내음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싱그럽다 못해 건강하게 느껴져서 속으로 건강한 풀 내음이라 이름 지었다. 붉은 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유리창을 내리고 준비하게 된다. 마음껏 맡기 위해서이다. 장미꽃이 때로는 향기를 양보하기도 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다. 장미꽃에서 장미 향이 아니라 풀 내음이 나도록 하려면 어떻게 그려야 할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고민하는 동안 예쁜 장미와 건강한 풀 내음이 계속 상기되었다.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건강한 경험이 많았으면 했다.     



장미로 인해 받은 감정은 많지만, 그것을 상기시키기 전에는 어떤 표현을 하면 좋을 것인가란 미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소박할지라도 나의 것이 창작활동의 시작이 된다. 창작자에게 창작활동을 하게끔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을 행복한 발견이라고 하고 싶다. 기쁘고 좋은 것만이 아니라 슬프고 고독하고 두려운 감정도 표현할 거리를 찾는 창작자에겐 행복한 발견되는 것 같다. 이런 발견은 어느 날 문득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인 것에 대해 상상하게 되는 경우와 일상에서 직접 경험한 것에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놓치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면 제일 좋지만, 더 매진하고 있는 게 있거나 지금 상황에 만족할 일이 있으면 다음으로 미뤄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작품에 대한 시린 날이 찾아와 마음을 지치게 한다면 도움이 필요하다. 내게 톨스토이의 시와 스케치와 메모들이 도움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제자리를 지키면서 행복한 발견을 찾아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대상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제자리를 지킨다는 건 안정감을 줄 것이고, 나의 발견에 몰두하는 건 욕심 대신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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