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0 밤
“어린이는 2학년 때 2학년만큼 자라고, 5학년 때 5학년만큼 자라지 않는다. 6학년 어린이 중에도 4학년 같은 어린이가 있고, 3학년 어린이 중에도 5학년 같은 어린이가 있다.
몇 학년 대신 어린이 자신을 기준으로 이전보다 나아갔는지 뒷걸음쳤는지 살피려고, 성취나 완수보다 과정을 한 번 더 격려하려고, 양이나 점수로 드러나지 않는 성장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나 자신이 다짐하게 된다. “
-어린이라는 세계 79p-
이미 용량이 정해져 있는 저장고를 어떻게 하면 더 유의미하게 채울 수 있을까? 진지하게 영치하이머가 걱정되는 스물여덟의 나는 생각한다.
좋았던 기억만 고르고 골라 기억하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지만, 그건 정말 인간의 바람일 뿐이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순간 역시 잔인하도록 생생하게 남아 아무렇지도 않게 평온한 일상을 침범하곤 하니깐.
아무튼 이런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오늘 종이책으로 만난 김소영이라는 여자가 참 부럽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모든 이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아침과 저녁을 어떻게 보내야 이토록 사려 깊은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반짝이는 기억과 통찰을 휘발시키지 않고 차곡하게 모아둔 그녀의 성실함, 아 정말이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았다면 학습해야 한다. 학습만이 살 길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아홉 살 난 어린이를 2학년으로 불러도 미안함이나 아쉬움 따위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양이나 점수로 드러나지 않는 성장... 그런 성장의 가치를 알아봐 주길…! 하고 십수 년간 바라왔던 어린이는 결국 나이만 먹은 어른이 됐다.
알아봐 주는 시선. 그런 걸 갖기 위함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낭만없고 차가운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인간은 그렇게 탁월한 존재도 아닐뿐더러, 세상엔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게 많다. 100점짜리 시험지, 유창한 영어실력이 그렇고, 상대를 향한 다정한 말, 따뜻한 관심같은 것도 그렇다.
그래, 알았으면 노력하자~! ‘난 원래 그래~’라는 말 제일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하니까. 앞으로도 이런 건 계속 싫어하는 어른으로 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