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진화, <타임포럼> 스마트워치 칼럼
본 글은 시계 커뮤니티 타임포럼이 기획한 스마트워치 칼럼 중 1편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구글이 내년 1분기에 직접 디자인한 스마트워치 2 종을 출시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모바일 기기 3대 거두(삼성, 구글, 애플)가 스마트워치 분야에서 다시 만납니다. 사실, 이 소식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스마트폰 이후엔 순간이동이 나오지 않는 이상 '우와', 할 일이 없을 것 같다."라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혁신이라는 단어가 친숙합니다. 재미있는 문장이니 다시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는 이제, 혁신이라는 단어가 친숙합니다. 우리는 혁신에 둔감해졌습니다.
우리는 제법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평화롭다'는 말은 '이상한' 것들을 유리 상자 안에다 보관하고, 그것을 많은 인류가 기웃거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감상한다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뮤터 박물관(Mütter museum)으로, 인체로 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현대는 '제법' 평화로운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제법 평화롭다는 말은, 우리가 전쟁 세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모. 그러니까 시위를 의미하는 일본어인 데모라는 단어가 집회보다 익숙한 세대, 그리고 IMF 세대는 서운하다 입맛을 다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평화로운 나머지 18세기 예술을 박물관에 그득그득 쌓아 두고 있고, 특별한 신분이 아님에도 해외 관광을 다니는가 하면, 1, 2차 세계 대전 물품을 복각합니다. 전쟁이라는 씁쓸한 기억에서, 이제는 살살 단 맛이 나기 시작합니다. 영어로는 비터-스윗(bitter-sweet). 그러니까 달콤 쌉싸름한 기억을 인류적으로 공유하는 세대가 우리입니다.
오늘날 스마트 혁명이 우리를 휘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빈티지라 불릴만한 것을 함께 향유합니다. 버려야 될 때를 놓쳤다가 침대 밑에서 보물 상자를 발견한 어른들이, 그것을 쓰레기로 여기지 않고 그 시절을 추억하며 흥분합니다. 빈티지 중 일부는 굉장한 값어치가 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빈티지 양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일도 합니다. 시계가 그렇습니다. 대중은 흔히, 스마트 워치나 "동그란 약 넣어서 가는" 쿼츠 시계(quartz watch)가 전부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뉴스에 나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시계들은 거의 모두 기계식 시계(mechanical watch)라 불리는 것들입니다. 쿼츠 시계는 현대 기술로 만든 시계이며, 기계식 시계는 16세기 빈티지 기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물건입니다. 여기서 갸우뚱할 만한 두 가지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기계식 시계가 쿼츠 시계보다 20배 이상 비싸면서 60배 더 부정확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현재 이 두 가지 시계 모두, '현역'으로 활동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이야기는 600년 전, 그러니까 24진법으로 하루를 분할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오늘날 언급하는 시계, 그러니까 낮과 밤을 24시간으로 분할하고, 이를 바늘로 추적하는 기계 장치는 14세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개인 시계, 그러니까 손목시계는 16세기에서야 등장합니다. 이는 독일의 시계 제조자 피터 헨라인(Peter Henlein)이 용수철을 사용하여 시계에 사용되는 동력원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인 덕분입니다. 사람들은 피터 헨라인의 시계를 ‘뉘르베르크의 달걀’이라고 부르며 그 기술을 칭송했습니다. 또한, 이 시대의 회중시계는 매우 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계를 보석과 에나멜, 금과 같은 소재로 제작하여 목에 늘어뜨리거나 펜던트 형태로 과시하듯 착용했습니다. 시계는 갈릴레이가 진자 원리를 발견하고, 크리스천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가 밸런스 스프링을 사용한 진자시계를 발명한 이후(1675) 더욱 작아지고, 정교해집니다.
독일 뉘르베르크 마이스너 헤프너 광장에 있는 피터 헨라인(왼쪽).
그가 보고 있는 것이 '뉘르베르크의 달걀'인 회중시계(오른쪽)
기계식 시계가 첨탑 시계에서 탁상/회중시계로, 이것이 다시 손목에 오르기까지 약 250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기까지는 50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시간을 계측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한 일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현대 기술이 릴리즈 되는 것을 생각하면, 반세기는 상당히 길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보의 전달이 구전이나 서신뿐이던 것을 생각한다면, 50년 동안 '시계'가 전파되는 족족 설치되었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과거, 시간은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하며, 약속의 기준이 되고, 측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부자, 빈자, 노자, 소자 할 것 없이 시계는 혁신적 물건이었습니다. 시간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시계가 주는 의미, 그러니까 시간 계측의 중요성은 지금까지 그 가치가 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과거의 유산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의미와 달리 기계식 시계는 한 번의 커다란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것은 쿼츠 파동(quartz crisis, 1970년대)이라는 사건 때문입니다. 쿼츠 시계가 기계식 시계의 단가와 정교함 모두를 앞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기계식 시계가 이 땅에서 모두 사라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현대 기계식 시계는 쿼츠 시계와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이것의 가치는 16세기 귀족들의 사치품 위치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스마트 워치가 등장하는 요즘도 그렇습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가장 좋은 기계식 시계가 가장 부정확한 쿼츠 시계보다 약 60배 이상 부정확한데, 가격은 20배 정도 비싸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기계식 시계는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것 같은데, 여전히 그 수요가 높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쿼츠 파동 당시의 기계식 시계의 제품 부문(product segment)과 현대 기계식 시계의 제품 부문에 대하여 비교,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970년대, 쿼츠의 등장으로 위협받는 기계식 시계의 제품 부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정보(情報)’였습니다. 부자들은 기계식 시계를 구매하고, 시계를 자랑하고 싶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계식 시계의 부차적인 가치일 뿐이었습니다. 산업혁명 당시 시계가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적은 오차’였습니다. 기차 시간과 도착 시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장비, 일률을 계산하고 계측하는데 정교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는 장비. 그러니까 정확한 휴대용 계측 장비의 구비는 정보의 우위를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사용자의 재산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단 엔지니어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류를 처리하는 직업인 변호사, 공무원, 기업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방금 언급한 전문 직종들이 오늘날에도 시간과 싸움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시각을 확인할 수 있고 없음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유리하게 조성할지 쉽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계식 시계보다 정보량이 높고, 불확실성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며, 경제적으로도 우위를 점하는 쿼츠 시계가 기계식 시계를 몰아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기계식 시계가 점하고 있는 제품 부문은 ‘사치(奢侈)’입니다. 현대 기계식 시계는 예술과 역사의 보전, 그리고 치장의 영역을 넘어서 자랑하기 위한 목적이 강한 물건입니다. 시계 애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정확한 것을 찾고자 한다면 쿼츠 시계를 보라”라고. 이 말은 현대 기계식 시계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정보에 있지 않음을 함축적으로 시사합니다. 기계식 시계는 심미적 가치를 드러내고, 좋은 시계를 가진 누군가를 알아보는 수단이며, 착용자의 생활수준을 드러냅니다. 현대의 기계식 시계는 시간 계측 장치라는 목적 외의 정보로 소통하는 수단입니다. 결국, 두 시계는 효용 영역이 다른 것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빨리 캐치한 럭셔리 그룹들이 2000년대 초반, 쿼츠 파동으로 사라졌던 일부 기계식 시계 브랜드의 상표권을 구매하고, 그 기술을 복원하여 작금의 럭셔리 기계식 시계 시장의 주요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기계식 시계가 가지는 ‘사치’라는 부문은 사라진 역사를 잇는 명맥에 대한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쓸쓸한 생각도 일견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스마트 워치와 기계식 시계는 어떻게 될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스마트 워치는 기계식 시계와 쿼츠(시계) 사이보다 기계식 시계와 더욱 끈끈하게 공존할 것입니다. 스마트 워치의 수명은 기계식 시계의 강/약세 문제가 아니라, 쿼츠 시계의 강점인 단가를 극복하는 것과 스마트폰 슬레이브 장비(smartphone slave device)로서의 효율적 정보 전달량 선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스마트 워치는 일반인을 넘어 기계식 시계 애호가들에게도 침습할 것입니다. 이들이 시계 애호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계식 시계 애호가들은 ‘배터리’로 가는 시계를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역 수호자들에게도 스마트 워치는 거부할 수 없는 필수품이 될 것입니다. 스마트 워치의 정보량이 두 손을 사용하는 것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팔은 두 개뿐입니다. 시계를 착용하는 손은 하나뿐이고, 그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시계 역시 하나입니다. 앞서, 오늘날 사람들은 기계식 시계를 하나의 심미적 작품으로 여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정보는 책 위에서 놀다가 모니터 위로, 휴대폰 액정에서 범람하다 못해 손목 위에서 넘치고 있습니다. 정보를 즉각적으로 받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선구자가 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최신 트렌드를 분석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은 정보가 대중보다 빠른 시대입니다. 스마트 워치는 두 손을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하는 등으로) 활용하지 못할 때나, (스마트폰을 만지지도 못할 정도로) 바쁠 때 그 효용이 극대화됩니다. 정보가 넘쳐흐르는 시대에 인간이 얼마나 더 바빠져야 하는가는 윤리적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지만, 개인을 들여다보았을 때, 처리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진다는 것은 사회/경제적 효용이 증가하는 것과 동치의 말입니다. 결국, 스마트 워치가 스마트폰이나 기타 정보 전달 장치보다 사람과 ‘가깝게’ 높은 효용의 정보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인류의 머리맡에 기꺼이 스마트 워치용 무선 충전기를 설치할 것입니다.
스마트 워치는 기계식 시계와 함께 제법 오랜 시간을 공존할 것입니다. 시계는 몸에 심는 거부감이 없고, 안경처럼 선별적으로 착용하는 오브제가 아니며,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고, 친화적인 정보 전달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3사 거두들이 스마트 워치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각각의 시계 회사들끼리도 스마트 워치를 사용하는 전략이 다 다르니, 마니아 입장에선 충분히 즐겁습니다. 시장 반응을 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두 세대, 많으면 세 번째 세대를 거듭하며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기어(이하 기어) 시리즈는 변화하는 방향과 그 적극성이 가장 눈에 도드라집니다.
기어 1 시리즈에는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기어는 2를 거쳐 S3으로 진화하면서, 카메라를 제했고, 사각형 다이얼에서 원형으로 그 프레임을 과감히 바꿨습니다. 사각형 패널을 사용하는 게 엔지니어적, 디스플레이 사용 관점에서 효율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기어는 '전통적 시계와 새로운 시대의 시계의 의미'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기어 S3는 조작 편의를 개선했습니다. 기어 S3에는 베젤과 푸시 버튼이 있습니다. 기어는 다른 스마트 워치처럼 자일리톨만 한 화면을 두꺼운 손가락으로 쩔쩔매며 조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170cm가 넘는 어른이 엄지손톱만 한 화면을 제어하려고 어깨를 움츠린 모습은 어딘가 어색합니다. 그러나 기어는 버튼을 누르거나, 베젤을 돌리면 됩니다. 이는 과거에 있던 시계 기능을 계승하고 재해석한 것입니다.
이제는 차세대 시계가 좀 원숙했다 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F 영화가 보여주는 '어딘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물건'이 아닌, 익숙하면서도 편리한 시계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상용 스마트 워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열정적으로 그것을 사보고 활용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페블(Pebble) 1세대부터 애플 워치 1, 순토 앰빗 3 블루투스, 그리고 사각형의 갤럭시 기어까지. 수입 통관에, 빌려 쓰고, 물어 쓰고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1세대의 그것들은 어딘가 조악했습니다. 시계라기보다는 시계를 흉내 낸 삐삐, 또는 시계 기능이 들어간 만보기를 들고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어 S3는 다릅니다. 클래식과 프런티어의 러그 각도와 베젤의 마감, 무광(brushed) 베젤과 유광(polished) 케이스가 맛있는 티라미수처럼 통통하게 조합되어 있습니다. 높아진 디스플레이 해상도는 무심하게 보고 있노라면 실제 시곗바늘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일 때, 다이얼 디스플레이가 마치 물성을 지닌 듯 빛을 흘리며 움직이는 효과는 눈치채는 순간 탄성이 납니다.
컴퓨터의 이전 이름이 전자계산기였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1세대 스마트 워치는 손목형 블루투스 통신 장비에 가까웠습니다. 스마트 워치라 부를 수 있는 차세대 시계는 지금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충격 이후, 현대인은 커다란 진리 하나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어지기 전까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가 함께 하는 물건은 우리가 원했던 물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의복에서 시작되어 트랜지스터 장치로, 스마트 폰에서 스마트 워치로 우리네 방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세계적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류의 다음 진화는 기계와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방법인가는 계속해서 고민해가야겠습니다만. 어쩌면 작금의 변화가 진화의 한 태동이라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