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제 2 전시실 (15년 11월 27일 ~ 16년 2월 28일)
서울미술관은<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걷다>와 함께 <미인美人 : 아름다운 사람>과 <백성의 그림展 '대호'>를 전시 중이다. 대호는 제2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전시로, 민중의 삶 속에 녹아 있는 호랑이의 이미지를 모으고 해석한 전시다.
전시기간: 2015년 11월 27일 ~ 2016년 2월 28일
전시장소: 서울미술관 제2전시실
이번 전시에서는 중국 명나라 호랑이 그림에 영향을 받은
조선 초기의 까치 호랑이 그림부터, 민화 까치 호랑이
그리고 민족정기의 상징인 호랑이 그림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우리나라의 민화, 그중에서도 호랑이를 주제로 30여 점을 모았다. 민화(民畫)라고 하면 백성이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민화는 화가가 그린 그림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조선시대 국가 기관인 도화서에 속한 사람들만 화가라고 칭했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린 그림은 민화라고 통칭했다. 때문에 민화는 조금 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몇몇 작품은 실용적인 용도도 가지고 있다. 결혼하는 처녀의 액운을 막아준다던지, 굿을 하기 위해 출장을 나서는 무당의 대리신(神)이 되기도 한다.
작품 <호도>의 호피 무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호랑이와는 조금 다르다. 이를 통해 조선 사람들이 재규어나 표범과 같은 고양잇과 동물을 '범'이라는 범주 아래 포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호피도>는 조선시대 호랑이라 불리던 동물들의 등 가죽을 병풍으로 표현한 것으로, 액운을 막고 좋은 기운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의미로 제작되었다. 병풍은 주로 명망 있는 무관들의 집에 놓였다. 이처럼 호랑이 무늬는 상서로운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새색시의 꽃가마 위에 호피를 얹어 액운을 쫓아내던 시기도 있었다.
호랑이는 18세기부터 민화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는 곧 조선시대 민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된다. 이전 호랑이 그림은 명나라의 작품을 모사하는 수준이 전부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의 주된 소재였던 소나무와 까치의 크기가 커지고, 호랑이가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는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작가의 주관과 개성이 주입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작품 <까치호랑이>는 우스꽝스러운 호랑이와 까치가 주 피사체로 그려진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까치가 호랑이를 골려먹는 것 같다. 작품 속에서 호랑이는 권력 계층을, 까치는 민초를 상징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민화에는 당시 권력 계층을 비웃는듯한 해학적인 표현도 등장한다.
백호는 영험한 기운을 상징한다. 서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호도>는 희소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민화로 그려진 백호도가 두 점인데, 하나는 서울미술관이 소장 중이고, 나머지 하나는 일본에 있기 때문이다. <백호도>의 특징은 호랑이 눈이 파란색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호랑이의 인광을 나타낸 것으로 우리 호랑이의 신비하고 영험한 기운을 상징한다.
백호도, 19세기, 종이에 수묵채색
<백성의 그림展 '대호'>에 출품된 작품 수는 30점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 외에도 <수렵도>나 산신으로서 표현된 호랑이의 모습, 부적으로서의 호랑이 등을 전시 중이다. 출품 수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제를 뒷받침하기에는 충분하다. 똑같아 보이는 호랑이 그림이어도 각각이 표현하고 있는 모습이나 주제의식은 모두 다르다. 작품들 앞에서 조선시대 백성들의 모습과 생활 양식을 다양한 각도로 상상할 수 있는 이유다.
민화(民畵), 친근한 이름과 달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민화의 수는 많지 않다. 호랑이 그림은 더 적다. 조선시대 다수의 민화가 프랑스나 미국, 일본 등지에 헐값에 거래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내를 그림의 수가 적게는 몇 만 점에서 수십만 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40여 마리의 호랑이 그림 앞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이유다.
1편: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걷다]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