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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눈 Feb 08. 2024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요

전쟁 그 이후, 절망과 희망을 두 눈에 담아낸 루마니아 화가 토니차

새하얀 무명으로 둘러싸인 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 기정떡에 올라간 콩알처럼, 아이의 말간 얼굴엔 새카맣고 작은 눈 두 개가 앙증맞게 콕콕 박혀있다. 무해한 당신과 눈을 맞출 때, 살며시 번져가는 미소.


흰 옷을 입은 소녀 (1924)


<흰 옷을 입은 소녀>는 루마니아 화가 니콜라이 토니차(1886-1940)의 작품이다. 토니차는 다수의 작품에서 사람의 눈동자를 크고 둥글게 표현했다. 흰자가 거의 보이지 않아 마치 동물의 눈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심결에 고개를 기울이고 그림 속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면, 이러한 순수함에는 응당 그에 맞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이의 눈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만, 오직 맑은 것만 담기길 바랐을 것이다. 마치 한강 작가의 <흰> 속 한 구절처럼.


아이의 머리 (연도미상)
당신의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
낮에 뜬 반달의 서늘함을 볼 것이다. (...)
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 한강 <흰>

 


아이의 눈


'토니차의 눈'이라 불리는 이 표현 방식은 달리 말해 '아이의 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신생아는 얼굴 크기에 비해 안구와 눈동자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눈을 떠도 흰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온통 검게(또는 다른 어떤 색깔로) 보이던 눈은, 얼굴뼈가 자라나면서 점차 흰자를 노출시킨다. 성장하며 순수함을 잃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눈 속 꽉 찬 눈동자는 순수함의 상징일 것이다. 


세 남매 (1920)


<세 남매>는 토니차의 세 자녀를 담았다. 더벅머리에 목이 늘어진 옷, 몸을 배배 꼬는 몸짓까지.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제법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첫째는 동생들의 군기라도 잡고 있는 것일까. 영문을 모르는 막둥이는 입을 헤 벌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눈은 말 그대로 토니차의 눈. 때 묻지 않고 투명한 아이의 눈이다. 


삼림 관리원의 아들 (연도미상)


그렇지만 아이들의 눈은 어딘가 공허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하지만 왜인지 인간미가 결여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예쁘지만 속이 텅 빈 인형처럼. 무언가에 깜짝 놀라 동공이 확장된 것처럼. 그 순수한 쓸쓸함에, 마주쳤던 눈길을 거두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눈은 마음의 창. 토니차가 이런 눈을 그려내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두 눈으로 본 전쟁의 비참함

자화상(1923)

토니차는 루마니아 북동쪽의 브를라드에서 1886년에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국립 예술학교를 거쳐 1908년 뮌헨 아카데미에 입학해 그림을 배운다. 아카데미 수학시절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며 다양한 작품을 접했고, 이후 파리 몽파르나스에 작업실을 차린다.


하지만 작업실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유럽은 전례 없는 세계대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보드라운 손에 붓만 쥐어본 도련님도 미증유의 살육 현장에서 총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징집된 그는 루마니아 전선에 배치됐고, 투르투카이아 전투에서 적군에게 사로잡혀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수용소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폭력과 무자비로 얼룩진 그곳은 전쟁 속의 전쟁터였다.


투르투카이아(불가리아어로는 투트라칸)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루마니아가 불가리아-독일과 벌인 전투이다. 1914년에 전쟁이 시작된 이후 루마니아는 3년 간 중립을 지켰으나, 전황이 점차 연합국에 유리한 구도로 변해가자 자신감을 얻고 뒤늦은 1916년에 동맹국 측에 선전포고를 하며 참전한다. 하지만 참전 직후 투르투카이아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루마니아군은 3만 9천 병력 중 2만 8천 명 이상을 포로로 내어주며 독일-불가리아 군에게 항복한다. 


토니차는 전쟁이 끝난 뒤 부쿠레슈티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열중한다. 참전 용사로서 국가 훈장을 받았지만 전쟁이 만든 상흔은 지워지지 않았다. 운 좋게(?) 연합국 쪽에 줄을 선 루마니아는 승전국 대열에 합류해 영토를 할양받았고, 이로 말미암아 들뜬 분위기가 국가 곳곳에 퍼져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참혹함과 포로들의 절망을 두 눈으로 본 토니차는 전승의 기쁨에 쉬이 합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겨도 비참하고 지면 더욱 비참한 승자 없는 그 게임에.


사라진 눈


문상객 (연도미상)

토니차는 이때 인간의 내면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그 과정에서 눈이라는 도구를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내면과 어둡고 지쳐있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위해. 


Ochii sunt oglinda inimii
"눈은 마음의 거울"


토니차는 자신의 그림 속 인물들로부터 눈을 앗아간다. <문상객> 속 여인의 얼굴은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일그러져있다. 왼쪽 눈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둠 속에 갇혀있다. 누구의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눈이 정말로 마음의 창이라면, 그의 창은 굳게 닫혀 버렸다. 깊은 어둠 속으로 안광은 자취를 감추고, 마음은 누군가의 죽음과 함께 묻혀버린 듯하다.


토니차는 사회 곳곳에서 마음을 잃은 이들을 포착한다. <광대>, <빵을 위한 줄 서기>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는 이들의 이야기다. 국가는 승전 대열에 합류했지만, 개개인은 궁핍하고 처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눈을 잃은 채로.


광대 (1925)


마음이 어둠 속에 침잠해 버리는 이유는 각양각색. 눈이 사라지는 이유도 수십 수백 가지. 사랑하던 이가 죽어서, 고된 하루가 버거워서, 배가 고파서. 배가 너무 고파서. 하지만 눈은 마음의 창, 눈 없는 이들은 보여줄 길이 없다.


빵을 위한 줄 서기 (1920)


여성의 눈


일본 여인 (연도미상)

1930년대에 토니차는 '살아있는 루마니아 화가 중 가장 중요한 화가'로 평가받으며, 유럽 각지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루마니아 이아시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총장으로 재임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성공한 화가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특히 여성의 눈을 그린다. 오리엔탈리즘적인 오류가 가미됐다는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의 시선에는 어딘가 독특한 점이 있다. <일본 여인>의 눈은 반은 웃고 반은 지긋이 감겨 있다. 양 볼도 눈썹도 각각 다르게 그려졌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 웃고 싶지만 웃을 수 없는 것일까. 웃고 있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시한 개념으로, "'동양'과 '서양'이라는 것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구별에 근거한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다시 말해, 서구인의 시선으로 동양을 인식하고 묘사하는 담론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브르타뉴의 여인>은 말 그대로 눈이 없다. 눈을 감은 것도, 눈이 검은 그림자에 가려진 것도 아니다. 마치 안구 적출이라도 한 듯,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다. 어렴풋하게 무언가 비치는 듯도 하지만, 그것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안광인지 그림자 속 신기루인지 알 도리가 없다. 양차대전의 사이에 유럽은 전대미문의 혼란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삶이 붕괴된 여성도 많았을 터. 내면을 드러낼 수 없는 게 아니라, 드러낼 내면 자체를 빼앗겨버린 여성. 토니차는 그 비극을 포착한 것인지도 모른다.

브르타뉴의 여인 (1933)


하지만 토니차는 그 안에서도 새로운 눈을 발견한 듯하다.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 새카만 눈. <노동여성>의 주인공은 아이의 눈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그는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당당하게 치켜들고 있다. 결연한 마음이 눈을 통해 느껴지는 듯하다.


노동여성 (연도미상)


온전한 토니차의 눈을 가진 <전쟁 이후>의 여성. 그는 두 눈을 통해 당당함을 넘어 강인함을 뿜어내고 있다. 전쟁이 벌어진 땅과 그 위에 널브러진 몸과 그 위에 흩뿌려진 피 앞에서. 마치 이 현장을 보라고, 내가 이곳의 증인이라고 외치는 듯한 두 눈. 그 순수하고 강렬한 눈빛에 압도돼,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전쟁 이후 (연도미상)


그때 <전쟁 이후>의 눈은 이렇게 선언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잃지 않고 이렇게 새 눈을 얻었다고. 갓 태어난 아기처럼 아주 큰 눈을. 아이의 눈으로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것들을 볼 거라고.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라고. 


토니차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40년에 병을 얻어 사망했다. 루마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해 공산화의 길에 접어든다. 이후 북한 체제를 선망했다던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치하에서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총체적인 후퇴를 경험하게 된다. 아직 그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지금, 루마니아 어딘가에서 새로이 태어난 순수한 눈들이 빛나고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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