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무창포에서 만난 사람들
바닷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추어 나가 신비의 바닷길 탐사에 나섰다.
워낙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창포의 관광 포인트이다 보니 기대가 컸다.
이른 평일 아침이라는 것을 감안해봤을 때 평소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바닷길에 모여 있었다.
다들 걷는 것보다는 뭔가 해양생물을 채집하는 데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걸으러 온 사람들도 너무 많은 불가사리에 혐오감을 드러내거나 물이 완벽하게 빠지지 않아 열리지 않은 길 앞에서는 망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바닷길이 꽤 열리기는 하되 완전히 석대도까지 열리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발목 위에 정도까지 물에 잠겼지만 일단 석대도까지 가기로 결심했으므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몇 몇 외국인이 기념사진을 촬영중이었고 호기심에 말을 걸어본 결과 한국전쟁 때 실종된 미국 병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꾸려진 탐사팀이었다.
팀장이라는 P. Wilson은 자신의 팀이 하와이에서 파견 나왔다고 했다.
무창포까지는 어떤 이유로 오게 됐나?
-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파견 나왔다.
무창포에도 미군이 있었다는 말인가?
- 그렇다. 이 일대에 네 명의 군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중 한 명이 석대도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이번 방문은 현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팀이 정식으로 파견되어 수색 작업을 돌입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석대도로의 접근성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럼 다시 이곳으로 올 예정인가?
- 현장 탐사가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아직은 모르지만 아마도 파견이 된다면 내년 정도에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한국전쟁 때 실종된 미군이 많은가?
- 현재 총 17명의 군인들이 실종 상태로 기록되어 있다. 그중 이쪽 일대는 한 명으로 알고 있다.
무창포에 네 명이 있었다고 했는데 어디에 있었는지 아는가?
- 그들이 주로 활동했던 구역은 석대도, 무창포항구, 독산 쪽이었다고 알고 있다.
이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가?
- 현재 지역 주민 조사를 통해서 그 군인이 어쩌면 보령 쪽으로 이송되어 갔을 수도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부디 북한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조금 더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흔적을 찾아 보령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이 일이 힘들지는 않은가?
- 힘들기도 하다. 거의 6-70년이 다되어가는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서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온 셈이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임한다.
유해를 발굴하는 경우도 있는가?
- 물론이다. 최근 2-3년 전에 유해를 발굴해서 가족에게 인도한 적이 있다. 죽은 군인은 고작 이십대 젊은이었지만 남겨졌던 가족들은 고스란히 세월을 견디며 그들의 귀환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같이 동시대의 가족들은 이미 다 세상을 떠난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나 운이 좋다면 자식을 찾을 수 있는 경우에도 모두 그들은 가족의 귀환에 눈물을 흘린다. 다들 자라면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동생의 유해를 수습한 노년의 누나가 한 달 뒤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경험이 있다. 마치 여태 동생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가족들의 염원을 생각하면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 되는 일이 우리 팀이 하는 일이다.
길게 있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대한 감상은 어떤가?
- 우선 근처에 공군 베이스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쪽으로 그들이 놀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하와이와는 전혀 다른 생태를 가졌다는 점에 있어서 흥미롭다. 하와이에는 이렇게 넓은 갯벌이 없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전혀 다른 종류의 해양생물을 관찰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다.
밀물이 몰려오는 것이 무서워 한국에서 남은 일정 잘 보내고 가라고 하고 나는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여 뭍으로 뭍으로 향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와 나눈 대화에 여운이 짙어 나는 자꾸만 지구 반대편으로 파견 나와 반 백 년도 넘은 긴 세월 동안 끈질기게 가족과 멀리 떨어져 귀환을 기다리는 닻에 묶인 영혼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을 거는 수많은 가족과 친구와 연인이 있는 그 모든 이들의 온 마음을 대신해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저들 이전에도 누군가는 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 그 전에도 또 그전에도......
문득 내 마음 한 곳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어떤 기다림이 떠오르더니 날카로운 무언가로 푹 찔린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발에서는 달랑 샌들만 신고 신비의 바닷길을 휩쓸고 다닌 덕분에 굴껍데기네 돌이네 어딘가에 찍혀서 난 상처들에서 선홍빛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래위에 앉아 찟어진 붉은 상처 때문인지 푸름 속에 매몰된 사람들 때문인지 원인이 불분명한 눈물을 닦았다.
바다에 다시 물이 차올라 내가 걸었던 바닷길은 자꾸만 짧고 좁아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