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록 상자 안에는 뭐가 들어 있습니까?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사 온 지 석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에겐 아직 풀어보지도 않은 커다란 상자가 다섯 개나 남았다.
그중 세 개는 사실 열어보지 않은 지 수년이 지난 것들이다.
나는 그 안에 내 시간들을 꾹꾹 눌러 담아 넣어 두었다.
학교에서 그림일기라는 것을 처음 배운 날부터 시작해서 문자의 형태로 기록하기 시작한 내 삶의 궤적이 그 안에 다 들어 있다.
언제 한번쯤은 그 상자를 뜯어 내용물을 꺼내어 봐야지, 생각해왔고 이제 그 시기가 온 것 같다.
아마도 그 안에는 오래도록 봉인해둔 사진의 기록이나 영상 테이프나 씨디롬, 인터뷰나 대화를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들이 다수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상자가 아니더라도 내 방은 그간 내가 살면서 기록해온 자료와 그린 그림들, 모아둔 자료들로 가득하다.
영상과 사진으로 가득한 외장하드도 다섯 개쯤 있다.
나와 동생과 엄마 아빠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일부까지 나는 다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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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는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가리지 않는다.
도대체 난 왜 이렇게 기록에 집착하는 것일까.
내가 기록을 통해 끝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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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는 봉인된 기록 상자들이 놓여 있다.
나는 이제 이것을 열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