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할 거면 기록하지 마세요

기록하는 당신이 꼭 해야 할 '그것'

by Snoopyholic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나는 방 한 켠에 쌓인 상자들을 열고 기록을 꺼내야 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회사와의 계약이 끝났고, 그 계약의 끝에 내 생계를 맡아주기로 했던 프로젝트가 엎어져 살 길이 막막해졌고, 생존을 위해 삶의 지출을 줄이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어찌저찌 겨우 떠올린 대책은 놀랍도록 미비한 것이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내가 기록에 대한 기록을 막 시작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상자들 열어봐야 하는데.'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굳이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미래의 나에게 그 일을 맡기기로 했다.

이번엔 글감을 놓치고 잠시 휘청했지만 숨을 가다듬고 앉아 그렇다면 기록의 방법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떠올리곤 그렇게 하기로 한다.



사진에 보이는 건 지난 3.5년의 기록 중 일부이다.

그동안 나는 여태 그래왔듯 착실하게 그림을 그렸고, 나의 글을 썼고, 일상을 일기로 기록했고, 하루의 일들을 성실히 메모했으며, 남의 글 중 나에게 울림과 기쁨과 깨달음을 준 글의 일부를 옮겨 적었다.

3.5년 정도의 기록의 일부 치고는 어느 정도 양이 되어 보이긴 하지만 디지털 영역의 기록은 저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 기간 동안의 나는, 체계적인 삶을 살고 싶어 불렛저널도 해보고 싱가폴 한 달 살기 하면서 특히 유용하게 사용한 '간지' 나는 여행객의 기록장인 트레블러스 노트북(일명 '트노')을 사용했다. 호흡이 긴 이야기들은 줄노트에 담았다. 어디 그뿐인가, 쓰기 아깝다며 20년 넘게 그저 간직하기만 했던 노트와 그림 좀 그려보겠다며 호기롭게 맘에 드는 걸 발견할 때마다 사놓고는 앞의 한두 장만 채웠던 스케치북들에 차곡차곡 그림을 채우며 느낀 뿌듯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처럼 아주 오랜 시간 나는 굉장히 성실한 기록자(記錄者)로 살아왔다.

재미있는 것은 이 정도 규모의 기록을 그만큼 꾸준하게 해왔으면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난 그저 책 세 권을 낸 가난한 작가나부랭이일 뿐.

도대체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 기록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왜 나는 책까지 내놓고 이런 상태로 살고 있는가, 같은 고민을 자주 떠올렸지만 좀처럼 답을 얻기 힘들어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 덕분에 답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기록의 쓸모 || 이승희 || 북스톤


기록의 목적을 가질 것!


이 책을 쓴 이승희 작가/마케터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기록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 기록은 영감을 기록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됐고 그 기록의 여정을 공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 시작하면서 영향력을 얻게 됐다고.

그녀가 공개한 기록의 시작은 자신을 위해서였지만 결과적으로 똑같이 일을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받게 된 거랄까. 결국은 그것이 기록의 목적과 연결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기록의 목적은 순수하게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내 삶을 온전한 형태로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서.

마치 그게 내 인생의 목적이라도 된다는 듯이.

아마도 그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여행과 글쓰기에 바친 것과도 연관이 있긴 할 것이다.

뭐가 다른가 싶겠지만 이승희 작가/마케터의 기록은 뚜렷한 목적을 가진 채 공개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획득했다면 나의 기록은 개인적인 기록에 멈췄고 목적이나 메시지가 없었기에 누구에게 날아가 꽂히지 못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일정의 영향력을 가지고 싶어서 기록을 원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목적을 가지길 바란다. 그래야 그것이 구체적인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의 메시지가 그 누군가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 메시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꼬리를 물고 전파되며 영향력이 생겨난다.

만약 그냥 평범하다면?

쓰레기통으로 직행.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만약 내가 기록을 하는 이유가 순수하게 기억하기 위해서라면 뭐가 문제인가 되물을 수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 기록을 하는 것이 맞긴 한데 기억의 기록은 개인의 영역으로 남아도 되지만 내가 발표하고자 하는 기록은 널리 읽히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간 내 글에 영향력이 없음에 애를 태워왔다.

다행히 이 책을 읽은 뒤, 나도 이제는 간절한 마음으로 쓴 편지를 돌돌 말아 누군가에게 발견되길 바라며 유리병에 바다에 던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누군가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노력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던지기 전에는 과연 이게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메시지일까 한 번 더 생각한다. 그래야 살아 남아 조금이라도 퍼져 나갈 수 있을 테니.


거인의 노트 || 김익한 || 다산북스


기록을 정교하게 다듬을 것!


기록의 쓸모를 통해서 내 기록이 그동안 왜 영향력이 없었던가를 깨닫게 되었다면 거인의 노트라는 책은 어떻게 해야 기록을 사람들이 매혹적으로 느끼도록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다.

기록학 박사님답게 김익한 작가/교수님은 자신의 기록 노하우를 이 책에 아낌없이 공개했다.

그런데 정말 체계적이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스텝바이스텝으로 따라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끌어낸다.

개인적인 이유이든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함이든 기록은 그냥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배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수많은 기록이 있어도 그저 어지럽게 먼지 쌓인 채 흩어져 있으면 이용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자신의 기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가공해야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해준 과정은 이렇다.

메모로 떠돌아다니는 생각과 그날의 감정과 일어난 일과 습득한 지식 등을 기록하고 나면 그걸 다시 찬찬히 살피며 중요한 것들을 뽑아내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카테고리별로 분류해서 잘 저장해둔다.

그래야 필요할 때 꺼내서 쓰기 수월하다.

기록을 다시 보는 것 자체가 그 기록을 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남들에게 보여줄 때도 이해가 쏙쏙 되게 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도움이 되는 정보가 이해가 쏙쏙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영향력을 가지려는 목적도 훨씬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진짜 기록을 엄청나게 하긴 했는데 그걸 다시 보거나 다듬는 일은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이건 창작하는 사람으로써 내 고유의 것을 만들겠다는 어떤 이상한 고집 같은 것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게 다 뻘생각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우리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아주 착실하게 내 기록의 구슬들을 반짝거리게 닦은 뒤 아주 예쁘게 꿰어보고 싶다. 누구에게 건네도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수 있다면 최고일 텐데......그 경지는 언제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한숨)




일단 내가 가진 구슬이 뭔지 살펴봐야겠지?

쌓인 먼지는 뭘로 닦아야 가장 뽀드득해질 것인지도 연구해야 하고....

그러므로 어느 수상한 기록광의 고백의 기록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