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내려앉은 앨범 속 우리 가족의 모습은 20여 년 전에 멈춘 지 오래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하는 것이 익숙한 21세기에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에 직접 붙인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되었다. 스마트폰이나 DSLR이 아닌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나날이 빨라지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쉽게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을 깨운다. 이를테면 기다림과 기대감 같은 것.
집에서 굴러 다니던 아빠의 필름 카메라를 들고 세운상가에 갔다. 먼지가 쌓인 카메라를 깨끗하게 청소했다. 필름을 끼우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걷다 보니 내가 지나쳤던 풍경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무언가 특별한 순간이라고 느껴질 때 한 장 한 장 아껴서 찍었다. 필름 한 통이 다 채워질 때까지, 그 필름을 사진관에 들고 가서 현상할 때까지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기분 좋은 기다림으로 다가온다.
필름을 하나하나 아껴 찍고, 잠시 잊고 있다가 필름 한 통을 다 채우니 겨울이 되었다. 가을에 찍은 이 사진을 겨울에 현상하여 받는 순간, 단풍의 노란색이 따뜻함을 마구 뿜어냈다. 추위가 잠시 가신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앞으로도 일상을 아끼는 마음으로 필름 사진을 오래오래 찍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