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일상이 지겨운 당신에게

by 영재
가판대 THE KIOSK, 2013 / 단편 애니메이션, 모험 / 스위스 / 6'55'' / 아넷트 멜리스 作


아작아작 짭짭.

경쾌하게 과자 씹어 먹는 소리로 막이 오른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하는 작은 가판대. 그 안에 가판대 주인 올가가 '산다'. 올가에게 가판대는 일터인 동시에 집이다. 가만히 앉아 바라볼 수 있는 도시의 풍경이 지루함을 덜어 주었을까, 배고플 때면 언제든 우적우적 과자를 먹을 수 있는 아늑함이 너무 컸던 탓일까. 어느새 가판대 안에 꽉 들어찰 정도로 비대해진 몸 때문에 올가는 가판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팔만 쑥 내밀어 끙끙거려야 배달된 신문을 겨우 안으로 들일 수 있을 정도로 올가는 가판대 안에 갇혀 버렸다.

Anete Melece: The Kiosk (still)


그래도 올가는 일상을 충실히 살아낸다. 손님이 원하는 물건들을 척척 찾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관광객에게 길을 알려주고, 슬퍼하는 손님을 토닥이고, 우는 아이를 사탕으로 달래 주기도 하면서. 신문, 잡지, 과자, 담배 등 생필품에 둘러 싸인 올가의 가판대는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쉼터가 되어 준다.


그렇지만 올가에게도 가판대는 동일한 의미일까? 보면 가판대는 그녀에게도 좋은 공간처럼 보인다. 올가는 그녀만이 볼 수 있는 가판대 내부 한 벽면에 노을 진 하늘과 바다, 갈매기 등 멋진 잡지 속 풍경들로 꾸며 놓았다. 그 덕분에 비좁지만 안락한 그녀만의 공간이 된다. 녀는 언제든 여행 잡지를 탐독하며 감자칩을 먹다가 잠에 들 수 있다.


Anete Melece: The Kiosk (still)


하지만 네모난 가판대 너머로 지나가는 여행사 버스 '판타스틱 투어'(Fantastic Tours)는 올가의 현실을 환기시킨다. 자신이 이렇게 옴짝달싹 못 할 동안 누군가는 자유롭게 여행을 떠난다는 현실 감각이 쑥 들어오는 순간이다. 올가는 금방 울적해지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올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가판대가 기울어지고 창문이 쨍그랑 깨진다. 이런 황당한 사고를 겪은 우리의 주인공 올가는 뜻밖에도 활짝 웃으며 양팔을 뻗는다. 그러고는 으쌰~ 가판대를 무거운 외투처럼 걸친 채 뒤뚱뒤뚱 걸어간다. 어떤 의미에서는 안정적이고 익숙한 일상이 한순간 사라진 건데도 우연한 변화를 경쾌하고 반갑게 받아들인다. 올가는 자신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시선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그저 산뜻한 발걸음으로 새로운 환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새 터전을 잡고 아이스크림 가판대를 운영하게 된다.


다정한 그림체로 올가의 모험을 그린 감독 '아넷트 멜리스'(Anete Melece)는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 주고 싶지 않았을까. 아이스크림 가판대를 운영하는 올가는 한층 더 밝아 보인다. 여전히 가판대 안에 있지만 옴짝달싹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원한다면 으쌰 가판대를 들쳐 업고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삶이다. 이제 올가는 력하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 물결처럼 흘러가고 싶은 대로 산다.


멜리스의 영화는 아무리 멀어 보이는 꿈이더라도 당신이 그 꿈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력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Melece's film is a charming and relatable piece about allowing yourself to reach for your dreams, however far away they may seem.
- Words by Maisie Skidmore, Wednesday 14 August 2013, It's Nice That


<THE KIOSK>는 일과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생활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뻔하디 뻔한 일상과 여러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유쾌하게 던져준다. 내가 꿈꾸는 일상과 현재 비루한 생활 사이의 거리감을 느끼는 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기 십상이지만 앞으로는 올가의 경쾌한 발걸음을 떠올려 본다면 어떨까. 지루함을 쨍그랑 깨트리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발로, 내 의지로 움직이는 방법밖에는 없음을 억하면서. 내 팔과 다리로 뚜벅뚜벅.




<THE KIOSK> 감상하기: https://vimeo.com/258238541


* 동명의 그림책으로도 출간되었다. http://anetemelece.lv/drawing/


+) 한국에 번역 출간(김서정 옮김, 미래아이 2021)되었다!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2685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