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으로 토해낸다

by 스누즈



산에 올라가는 것은 쓸데없는 행동이라 생각했었다.

내려와야 되는 산을 왜 힘들게 올라가야 되냐는 자기 중심적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산을 오르고 있었다. 주말엔 집 앞의 낮은 동산을 아이들과 함께 사부작 오르기도 했고 나의 집을 둘러싼 능선을 하루 종일 오르기도 했다. 다리를 다친 후에는 남편과 김밥 한 줄 가방에 넣고 오를 수 있는 만큼 올라가서 절뚝거리며 내려왔다. 어차피 내려올 산을 나는 왜 올랐을까?


생각이 복잡할 땐 몸을 지치게 하라는 말을 언뜻 들은 것 같다. 몸을 고달프게 하는 것 중 등산만큼 맞아떨어지는 게 있을까. 등산로 초입은 언제나 기세 좋은 발걸음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한두 시간이면 올라가겠지라며 말도 안 되는 자신감과 함께 나의 몇백 배가 되는 산을 얕잡아 보며 첫걸음을 내딛는다. 산은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산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이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점점 숨이 차오른다. 아직 30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두 발의 무게는 상상이상의 그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등산이었다면 보기좋게 실패했다. 생각 한 꼬집도 머릿속에 둘 수 없는 상황이다.


숨이 차오른 만큼 나의 숨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산이 내뿜는 기운을, 초록으로 가득 찬 숨을 가슴 벅차게 들이킨다. 머금고 있고 싶다. 가슴으로 들어간 산의 숨을 나의 손끝으로, 발끝으로 속속들이 다 보내고 싶다. 한계에 다다를 때 후~ 하며 숨을 내뱉는다. 내 속에 있는 모든 고민과 잡념을 입으로 내뿜어본다. 너른 산에 다 털어놓을 듯이. 너라면 내 마음을 알아채주지 않을까란 희미한 기대와 함께. 산의 숨결인지 나의 숨결인지 모를 것들을 내뱉고 몰아쉴 때마다 양어깨가 들썩거린다. 지금만큼은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오로지 나에게만.


그럴 때가 있다. 화가 나는데 분풀이를 할 수 없어 머리끝까지 숨이 차는 기분이 들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친 숨소리만으로 나의 분노를 잠재우는 것 밖에 없을 때. 감정 표현이 서투른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은 숨과 함께 하는 것이다. 큰 숨을 쉬어본다. 마음속 깊이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을 무언가에게 닿을 만큼 깊고 진한 나의 숨. 그렇게 숨을 타고 밖으로 꺼내어본다. 숨결과 함께 나온 것들이 흩어진다. 결국 흩어질 것들이라 생각해 본다. 내 속에 있기에 크고 어두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선 작고 볼품없는 걱정거리들, 잡념들. 그렇게 나는 숨으로 토해낸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비워낸다.


햇볕의 세기가 점차 누그러지면, 바람의 온도가 조금 석석해질 때면 발걸음을 산으로 향해야겠다. 숨은 매우 차겠지만 그 숨을 뱉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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