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실타래가 있다.
실타래의 색깔은 검붉거나 혹은 회색빛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테다. 예쁘고 단정하게 뭉쳐있으면 참 좋을 텐데 눈앞의 실타래는 왜인지 엉망진창으로 얽혀있다. 말 그대로 실의 처음과 끝이 어디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게, 어떻게 풀어야 될까 엄두조차 나지 않게. 한참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걸 풀어보지? 어느 쪽의 실을 꺼내봐야 하지? 또 한참을 바라본다. 손은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사이 작은 용기라도 생긴 걸까. 실타래로 조심히 손을 뻗어본다.
실타래가 놓인 곳은 나의 마음 한구석이다. 끊어진 실 조각처럼 끊어져 버린 못난 감정들이 모이는 구석자리. 모이고 모이다가 어느샌가 뭉쳐졌을 것이다. 엉망진창 얽히고 얽혀서 풀지 못한 감정 덩어리가 하나 둘 생겨버렸다. 외면하고만 있던 이 동그란 놈을 풀어내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글'이었다. 하얀 노트북 화면에 얽힌 실을 한 줄 꺼내놓으면 그것은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단어들은 모여 문장이 되었고 어느새 화면은 가득 채워져 간다.
그렇게 한 줄씩 풀어나가는 검붉은 색 혹은 회색빛의 얽힌 실타래. 그간 어떻게 마음에 두고 지냈을지 스스로에 대한 작은 연민 같은 게 느껴진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나 속상했을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매일 밤 나는 얽힌 실타래를 조심히 풀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풀린 실타래는 젊은 날의 나의 엄마가 되었다가 어느 날엔 어린 유미가 되기도 한다. 하늘 위 파란 구름이 되기도 하고 날카로운 말 한마디의 모습을 띄기도 한다.
하나의 실타래를 풀고 고개를 돌리면 어느샌가 또다시 하나가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예전과 달리 이젠 더 이상 구석에 놓인 실타래를 외면하지 않는다. 얽힌 실타래로 향해 손을 뻗을 용기가 생겼기 때문에, 처음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손끝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더 이상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을 것이다. '글'이라는 탈출구를 찾았기 때문에 나는 외롭지 않다.
그렇게 나는 매일 밤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그렇게 나는 매일 밤 글을 쓴다.
작은 물음표를 던져본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엉킨 실타래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