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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Nov 03. 2016

손석희 :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 새벽,

글쓰기를 하려다 또 옆길로 빠져 딴 짓을 했습니다.

실수로 지난 일기들을 모아둔 폴더를 클릭했는데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지난 날 생각했던 흔적들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혼자 킥킥대다가 넘어가기도 하고 괜히 울적해져서 한숨 쉬기도 하면서 클릭, 클릭, 클릭합니다.

누가 옆에서 봤다면 돌 + 아이가 아닌가 하고 걱정할 정도로 말이죠.


그러다 예전에 스크랩 해두었던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오래 전 인터넷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는 좋아서 컨트롤 C, 컨트롤 V 해 두었던 글입니다.

요즘 매일 보고 있는 JTBC 뉴스의 앵커이자 보도 담당 사장 손석희씨의 글인데요.

지각인생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이미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못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고 

저는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기에 공유하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지각인생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By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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