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났다. 오늘은 기온이 다르다. 이제 열대야가 사라진 모양이다. 새벽에도 꾸준히 덥고 습한 날들이 계속되었는데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 말인즉슨 내가 늘 새벽에 일어난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그건 아니다. 내가 자던 새벽에 아마 그랬을 거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무책임하게 하고 있을 뿐. 그래도 가끔 만났던 나의 새벽이 그러했기에 성급하게 일반화해본다. 원래 사람이 그런 속성이 있는 것이다. 자기가 겪은 작은 경험 하나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걸 세상의 이치라 여기며 사는 개똥 같은 속성 말이다. 혹시 나만 그런가? 그렇다면 미안하다. 난 다 그런 줄로 알았지.
아무튼 솔직하게 말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 같은 사람에겐 특히. 난 꽤나 이중적인 인간이다. 아니 삼중 사중적이라 해도 무방하다. 요리할 때 쓰는 스테인리스 냄비야 삼중 사중이면 참으로 기특하겠지만 인간이 그래서야 쓰겠는가? 근데 그러하다. 난 나대로 산다고 살지만 만나는 사람에 따라 겪는 상황에 따라 참 간사해진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해준다면 정말 고맙지만 삐리리 같은 인간아 하고 욕을 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어쩌겠는가? 내가 억울하다 여겨 그 사람을 향해 똑같이 삐리리를 외쳐본 들 개싸움 밖에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긴가 민가 한 것들이 확실해진다. 정말 삐리리가 된다는 말. 아님 개가 되든가.
솔직히 말해 현실에서는 솔직해질 자신이 없다. 솔직하다는 게 어디까지인지도 잘 모르겠고 솔직해져서 겪을 상황 따위도 귀찮다. 아니 두렵다. 그러니 오늘도 그저 생긴 대로 살겠지만 글로나마 솔직해지고 싶어 이러고 있다. 비록 학교 밖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나서 난 척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어른인 척, 아는 척, 괜찮은 척, 너그러운 척하며 살았다. 그렇게 척척척척 하며 살다 보니 마치 최면에 걸리듯 그런 사람처럼 되었다. 근데 가끔 급할 때, 위기상황일 때 나도 모르게 최면에서 깬다. 척척척척을 뚫고 처음 보는 아이가 등장한다. 런닝에 팬티만 하나 걸친 그 아이는 장난 끼가 넘친다. 뛰어다니고 매달리고 소리 지른다. 관심받고 싶어 참으로 애쓴다. 네 이놈! 하고 그 녀석의 궁둥이를 걷어차 안으로 집어넣고 돌아서 겸언 쩍은 웃음을 지으면 별일 아니지만 갈수록 그런 일이 잦아진다.
어릴 적 청도에 있는 외갓집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외갓집 뒷마당에는 집보다 높이 자란 감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보면 안다. 정말 주렁주렁이다. 처음 녹색이었던 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붉게 물 든다. 그러다 절정에 이르면 툭하고 떨어지는데 다 익은 홍시가 떨어지면 바닥이 폭탄 떨어진 것처럼 지저분해진다. 그래도 워낙 많이 떨어지니 그중에 멀쩡한 것들은 주워서 맛나게도 먹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제대로 익지도 않았는데 툭 떨어진 것들이 있다. 반은 주황색 반은 빨간색인 그 감을 한 입 입에 물었다가 떫은맛에 눈물을 흘렸던 한 아이가 있다. 그 녀석이 나라는 게 함정이지만 그때 알았다. 떨어진 모든 감이 익은 건 아니라는 걸.
잘 익은 홍시처럼 어른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떫은 감이 된 기분이다. 누군가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고 해도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해 줄 게 없다. 솔직하지 못해 미안하고 또 가끔은 솔직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떫은 감도 기다리면 홍시가 된다.
시간이 지나 멋지게 쓰이고 괴로움 없이 산다면 나름 괜찮은 인생이 될지도.
벌써 새벽이 끝나 아침이 되었다.
이만 최면 걸릴 시간.
레드~ 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