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영균 Jan 01. 2022

마술에 뛰어들다

박영균에게 2021년은 어떤 해였을까?

    나는 2021년이 시작의 해가 되리라고 기대했다. 2020년, 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 해를 잃어버린 기분으로 지냈다. 2021년은 나에게 큰 기대였다. 코로나19의 백신이 전례 없는 속도로 개발되었고, 모든 인류는 코로나19의 종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여러 변종과 예상하지 못한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일상을 되찾으리라고 기대했던 2021년 역시 2020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피어났다.


    2020년이 끝났을 때, 나는 내가 군대를 전역한 이후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 나이만 먹는 것이 두려웠다. 같이 동아리에서 마술을 하던 친구들은 졸업하고 취직하면서 자신만의 위치를 찾아가고 있었다. 나만 혼자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살이 거센 강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키를 쥔 채 자신만의 배를 운행하고 있지만, 나 홀로 강둑에 걸터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강으로 뛰어들 용기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침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편안한 육지 위에 있고 싶었다.


    2020년이 끝난 나는 반쯤 무너져있었다. 2021년의 나는 어떻게든 무너진 자신을 수습해야했다. 2021년은 내게 무엇이든 '시작'해야하는 해였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또 한 해를 보낸다면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삶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미루어둔 일들을 살펴보았다. 나는 항상 마술 입문자들을 위한 에세이를 쓰고 싶었고, 개인 방송을 하고 싶었다. 마술 스터디도 진행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했다. 이 모든 일들은 어떠한 대의도 선의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진정한 의미로 2021년은 ‘시작의 해’였다.




스트리머 박영균

    한 마술사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직업을 사실상 잃어버렸고, 그는 2020년 4월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인터넷 방송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으며 많은 마술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눈부신 성공이 내가 방송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는데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작정 트위치를 켜고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서 환멸하는 일도 많았다. 잘 나가는 사람들과 초라한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인들이 공황과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처음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게 ‘언젠가 너도 저 사람처럼 성공할거야’ 라고 응원해주었다. 고마운 말이었지만 그 응원이 오히려 나를 더욱 ‘성공’에 매달리게 만들고 있었다. 시청자 수가 늘어나면 기뻐했고 줄어들면 절망했다. 이대로 계속되다간 나는 또다시 나 자신을 소모해서 꺾어버릴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성공’에 연연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비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취미로 마술을 하는 나와, 일생을 마술을 연구하고 고민하고 연습하는 데에 바친 사람과 동일한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비교다.


    나는 단지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들고 싶은 가정주부일 뿐이다. 언젠가 운이 좋다면 내가 끓인 김치찌개를 많은 사람이 사랑해줄 수 있겠지만, 그건 내 최종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목표는 최대한 오랫동안, 한 끼 식사가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줄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최고급 레스토랑의 셰프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글쓰는 박영균

    글쓰기는 내게 일상을 넘어서 하나의 치료 수단이었다. 처음으로 긴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절은 고등학생 때였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나 자신을 관찰하고 달래기 위해 노트에 무작정 펜으로 글을 써 나갔다. 어린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일종의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주변 친구들은 내가 쓴 글을 볼 때마다 놀림감으로 삼았다. 자신만의 감성과 세계를 그려나가는 사람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오글거린다’고 말한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어린 시절 미숙한 글을 써 나가면서 나만의 감성과 나의 목적, 존재의 의미를 찾아갔다.


    시간이 지나고 또 한 번 나의 존재가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왔다. 전역을 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 것 같았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많이 아팠고 힘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죽음으로 이끌렸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버텨냈다.


    글쓰기는 내가 삶을 붙잡을 수 있었던 마지막 동앗줄이었다. 매일 매일 생존을 위한 기록을 남기면서, 나는 나 자신을 동정하고 공감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절망감이 작동하는 방식을 깨달았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견뎌내고 있었다.


    과거의 박영균이 꿈꾸던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그의 시간은 주기적으로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언제나 삶 자체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신념을 품었다. 과거의 박영균은 미래의 박영균이 그를 위해 글을 써 주리라고 믿었다. 힘들었던 과거를 되돌아보며 그때를 견뎌냈기 때문에 지금이 있었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나는 지금도 과거의 나에게 빚을 지고 살아간다.




마술인 박영균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무엇을 하고싶은지도 몰랐다. 마술은 그런 내게 ‘하고 싶은 말을 해도 괜찮다’ 라고 말해준 첫 번째 취미생활이었다. 나는 마술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았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개인의 정서적인 안정에 있어서도 마술은 무척 훌륭한 취미생활이다.


    나는 마술로부터 갚을 수 없는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이 세상의 누군가에게 나와 같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이 마술이라는 취미를 통해 도움을 받고, 즐거움을 얻기를 바란다. 그것을 위해 나는 지난 한 해동안 마술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


    2021년 한 해 마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르카나분들을 만나 감사하게도 나의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며 칼리님 덕분에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마술사분을 도울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무척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도움을 받았다.


2022년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나가려고한다.




    그 어떤 것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다. 나는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스프린터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강한 의지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에 일생을 바친다. 그러나 나는 특별한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누군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평범하게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2022년에도 어쩌다가 어딘가로 향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들이 카드를 섞고 싶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