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영균 Nov 29. 2021

그들이 카드를 섞고 싶은 이유

실전압축마술꿀팁

내 이름은 박영균, 마술을 시작한지 이제 한 달이 되었다.


저번 주에 '키 카드' 라는 마술을 동아리에서 새로 배웠다.


하루라도 빨리 이 마술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꼭 이렇게 말한다.


"카드 섞어봐도 되나요?"


그럴 때마다 겉으로는 멋쩍은 웃음을 짓지만 머릿속은 너무 혼란스럽다



     마술을 하면서 누구나 경험해보았을 상황이 있다. 대뜸 끼어들어 카드를 섞고 싶다고 말하는 관객들. 모든 상황에서 카드를 섞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카드 마술의 세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고 카드를 섞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카드를 섞으면 마술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라고 시인하는 꼴이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갈 수 있을까?



안 돼, 섞을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여기서 첫 번째 선택지는 요청을 거절하는 방법이다. 마술사의 목적은 마술 공연을 마무리하고 모두에게 즐겁고 신기한 경험을 남겨주는 것이지 관객 한 명의 의심을 100%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관객의 모든 의심과 요구사항을 반영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마술 현상은 너덜너덜해지고 사람들은 마술사를 애처롭게 바라볼 것이다. 때로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마술을 이어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일 때도 있다.


때로는 단호하게 거절해야한다.


     그렇다고 '안 돼!' 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카드를 섞지 않도록 유도할 수는 없을까?


     가장 강력한 스킬 하나를 소개한다. 바로 '유머'다. 사람들은 웃을 때 편안해지고 너그러워진다. 관객이 카드를 섞고 싶다고 말하면, 농담을 던져서 분위기를 풀 수 있다. 김준표 마술사님은 다음과 같은 농담을 사용한다. '카드를 섞고 싶으시다고요? 부분 유료화 서비스라서 따로 구매하셔야해요!' 어떤 농담이든 상관없다. 농담을 듣고 관객의 방어 태세가 조금이라도 해제된다면 그걸로 좋다. 간단한 폴스 셔플*을 함께 넣어주면 관객은 방어막을 조금 해제할 것이다. 빈틈이 생기면 쏜살같이 다음 단계로 진행하자.


     농담을 통해서 무엇을 전달할지만 확실히 결정해두어야한다. 농담을 통해서 전달해야하는 것은 '마술사가 짱이니까 건드리지 마십쇼' 가 아니다. 오히려 농담을 통해 '카드를 섞어도 상관은 없지만 공연 중간에 끼어드는 건 자제해주세요.' 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한다. 마술사는 카드를 섞게 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 답변하는 것이 아닌, 공연 중간에 끼어드는 행위에 대해서 답변하는 것이다. '공연 중간에 끼어드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이 부분은 기본적인 교양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마술사의 가장 큰 무기는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기 때문이다. 마술사가 상황을 휘어잡고 마술을 이끌어가야한다.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무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한다.




즐기시게 놔두거라


     위의 방법은 말로만 들으면 금방 이해가 되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주도권'과 같은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개념은 직접 활용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조금 더 간단한 방법을 소개한다. 그것은 바로 섞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관객의 의심을 가장 확실하게 충족시킨 후에 손기술과 같은 다른 기법을 사용해서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앞선 '거절하는 법'에 비해 훨씬 어렵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술사는 다양한 기법을 숙지하고 있어야한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마술사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관객이 카드를 섞는 동안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모습.jpg


     관객에게 카드를 섞도록 건네주기 전에, 마술사는 앞으로의 계획을 새로 정비해야한다. 내가 기존에 하려고 했던 마술은 관객이 카드를 섞고 나서도 가능한 마술인가? 그렇지 않다면, 아예 새로운 마술을 해야할 텐데, 어떤 마술로 이어가야할까? 적어도 현상만큼은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 좋다. 전혀 당황하지 않고 준비된 대로 진행하면, 관객은 '갑자기 카드를 섞겠다고 말하는 상황까지 예측한건가?' 라고 느낄 것이다.


     고른 카드 1장을 찾는 마술을 할 때를 기준으로 어떤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을까? 다음 목록을 읽으면서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할 점은, 결코 쉽지 않은 손기술들이다. 그러나 한번 습득하고 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마치 LOL의 점멸과도 같은 훌륭한 기술이다.


<포스 / 글림스>
고른 카드를 미리 알고 시작하는 기법. 관객이 아무리 섞어도 마술사는 이미 정답을 알고있다.
<팜>
카드를 손 안에 숨기는 기법. 고른 카드를 손에 숨기고 나머지 카드를 섞도롤 건네줄 수 있다.
<언더스프레드 컬>
원하는 카드를 빠르게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키는 기법.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탑 스위치>
카드를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꿔치기하는 기법. 일부러 다른 카드를 보여주고 나서 고른 카드가 무엇인지 물은 다음, 다른 카드가 고른 카드로 바뀌었다고 보여줄 수 있다.


      마술을 공부하다보면, '도구상자'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마술에서 습득하는 여러 기법들이 각기 다른 연장으로서 쓰인다는 뜻이다. 연장을 많이 챙긴다면 그만큼 할 수 있는 작업도 많아진다. 망치만 쓸 줄 아는 사람과 망치와 톱, 드릴과 드라이버까지 두루 섭렵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은 규모 자체가 다를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도, 연장을 많이 챙긴 사람이 훨씬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보자. 만약 관객으로 하여금 애초부터 카드를 섞을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어떻게든 했겠지 뭐"


     관객이 카드를 섞고싶어하는 이유는 카드를 섞어도 마술이 진행될 수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은 카드가 특정 배열로 놓여있기 때문에 마술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관객은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관객의 모든 의심을 마술사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끔은 마술사가 나서서 '나 좀 의심해주세요' 하고 티를 낼 때도 있다. 다음 예시를 보자.



관객이 카드를 한 장 고른다.


마술사는 몇 초 동안 고른 카드의 뒷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고른 카드는 7하트군요!"


관객은 아무리 카드의 뒷면을 확인해도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관객의 의심은 그가 실제로 그 표시를 알아내느냐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표시를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 표시가 있겠구나.' 라는 의심을 지우지 못한다. '에이 누가 저렇게 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마술인이 위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관객은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만약 고른 카드를 돌려받은 후에 유난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카드를 섞는다면? 실제로 카드 기술이 보이느냐 마느냐와 관계없이 관객은 마술사가 섞으면서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점점 뻗어나가 '내가 섞어도 마술이 될까?'에 다다르게 된다. 한번 생긴 의심은 쉽게 해소할 수 없다. "의심을 해소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의심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카드를 섞을 때, 편안하게 섞는 것이다. 평범하게 카드를 섞을 때조차 잔뜩 힘이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잔뜩 긴장된 셔플을 보면서 관객이 무슨 생각을 할까? 기술이 들어갈 때나 들어가지 않을 때나 셔플 도중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으면 안된다.


     마술사는 관객이 카드를 섞을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한다. 관객이 카드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술사 역시 카드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카드가 아니라 관객에게 신경을 쓰자. 그렇게 하면 관객의 생각을 카드로부터 멀리 떨어뜨려놓을 수 있다.




마치며


    마술을 하면 할 수록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게 이 바닥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하는 것이다. 누군가 마술 도중 카드를 섞어봐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너무 단호하게 거절해서 분위기가 이상해진 적이 있는가?아니면  과감하게 '섞어보시죠!' 라고 말했지만 대처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해 당황한 적은 어떨까?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실수를 한다. 마술사의 실수일 때도 있고, 관객이 정말로 통제불능인 경우도 있으며 그저 정말로 운이 나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운이 안 좋았네.' '그 사람 참 이상한 사람이야.' '다음부터 실수 안해야지'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술을 잘하고 싶은가?누구나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비법이 여기 있다. 그것은 바로 고민하는 것이다. 더 나아지려고 고민해야한다. 오늘의 불운을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그건 그저 불행한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오늘의 불행한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지워야할 부끄러운 흑역사가 아니라 귀중하고 아름다운 경험치가 된다.



    '내가 그때 어떻게 거절했어야할까?'


    '카드를 마구 섞고 나서 어떻게 다시 마술을 이어갔어야할까?'


    '내가 자주 실수하는 이 부분을 어떻게 바꿔볼까?'







* 폴스 셔플(False shuffle) : 카드를 섞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부 또는 전체가 섞이지 않는 카드 기술.


** 1902년 S. W. Erdnase의 저서 [The Expert at the Card Table]에 수록된 것으로 알려진 구절이다.

작가의 이전글 모두가 마술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