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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Oct 24. 2021

모두가 마술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술인의 리뷰

*좋은 제목을 정해주신 블루스피어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책 사진을 글 안에 함께 포함시켜둘까 했지만 해당 책의 특성을 고려해서 사진을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글은 시각적인 요소 없는 감상을 의도한 글입니다.




    마술을 처음으로 봤을 때,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인생 전체를 바꾼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마술을 공부했고 기술을 연습했다. 지금도 마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한없이 감사함을 느낀다. 만약 그때 마술을 보지 못했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운을 모두가 똑같이 누릴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의 모두가 마술을 '볼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는 시각장애인이다. 여러분들도 지금 당장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된다. 하지만 몇초 몇분 몇 시간 며칠이 지나도 눈을 뜨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몇 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일상 속 많은 부분이 시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술 또한 마찬가지다. 마술의 많은 부분은 시각적인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카드 마술의 경우만 살펴봐도, 카드 마술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카드가 무엇인지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고른 카드가 2스페이드인지 K하트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른 카드를 찾는 마술'이 가능하기나 할까? 동전이 왼손에 있는지 오른손에 있는지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동전을 이동시키는 마술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그들을 위해 마술을 하고있는 사람이 있다. [맹학교 마술쇼]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10년 동안 공연을 했던 '밤파쿠'라는 사람이다. 오늘은 하근봉 마술사님의 도움으로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그의 책, [거인의 어깨를 느끼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시각장애인의 마술


    관객이 마술 현상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2스페이드가 K하트로 바뀌는 마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 카드가 원래 2스페이드라는 믿음이 있어야한다. 왼손의 동전이 오른손으로 이동하는 마술을 하기 위해서는 동전이 원래 왼손에 있었고, 오른손은 비어있었다는 믿음이 있어야한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사과가 오렌지로 바뀌는 마술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것이 사과라고 믿도록 만들어야한다.' 


    [거인의 어깨를 느끼다]를 구매한 이유는 모두 같을 것이다. '과연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마술을 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믿음을 만들어내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도 우리는 쉽게 믿음을 만들어낸다. 저 멀리서 청아한 피아노 소리가 들릴 때 우리는 피아노의 존재와 그 피아노를 치고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길을 걷다가 갓 구운 빵냄새가 풍기면 우리는 빵집에서 빵을 굽는 제빵사의 존재를 믿는다.


    다르게 말하면, 시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도 관객들이 특정 사실을 믿도록 만들 수 있다면, 시각장애인에게도 충분히 마술을 보여줄 수 있다. [거인의 어깨를 느끼다]에는 그래서 청각 또는 촉각을 통해 시각장애를 가진 관객에게 믿음을 만드는 마술들이 수록되어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책에 실린 [악기 예언]이다. 우리는 하나의 악기에서 낼 수 있는 소리는 하나라고 믿고있다. 따라서 악기를 직접 보지 않아도 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 악기가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는,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정상인'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 정상적이지 않다는, 열등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는 자신이 살고있는 세계만이 정상적인 세계라는 착각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런 정상적인 세계가 아닌 일부 '결여된' 세계를 살고있다고 무심코 생각해버린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정상'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예를 들어서, 시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인간의 시각은 빛 중에서 지극히 일부분만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을 따로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빨주노초파남보로 표현되는 가시광선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빨간색이나 보라색을 벗어난 색은 각각 적외선과 자외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적외선과 자외선 범주의 색을 시각적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만약 우주 어딘가에 인간은 인지하지 못하는 적외선 또는 자외선 범위까지 인지할 수 있는 종족이 있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의 시각이 얼마나 하찮게 느껴질까? 하나의 세계, 자신의 세계만이 올바르고 그 세계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열등하다고 믿는 것은 무척 위험한 믿음이다.


    애초에 완전한 사람은 없기에, 우리 모두는 어딘가 조금씩 결여되어있다. 불완전한 우리들이 함께 모여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 모두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한다. 장애인 역시 결여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비장애인과 다른 세계를 살고 있을 뿐이다.




세계와 세계 사이의 마술


    마술사가 오른손으로 왼손에 있는 동전을 가져간다. 관객은 당연히 동전이 오른손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 동전은 마술사의 손기술에 의해 오른손으로 이동하지 않고 왼손에 숨겨져 있다. 이때 관객과 마술사의 세계는 분리된다. 관객의 세계에서는 동전이 오른손에 있다고 믿지만, 마술사의 세계에서는 동전이 왼손에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마술사는 자신의 세계가 아닌 관객의 세계를 기준으로 행동하고 움직인다. 마술사는 성심성의껏 동전이 오른손에 있다는 관객의 세계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술의 신호를 주고 오른손을 펼쳐 동전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때, 관객은 자신의 세계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으며, 그것이 마술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세계를 연구해야한다. 그러나 사기꾼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피해자의 세계를 연구한다. 마술사는 다르다. 마술사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선의를 위해 관객이 살고 있는 세계를 연구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이는 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서 타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나는 이것이 마술사가 가진 진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고도로 발달한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로 하여금 각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도록 만들었다. 각자의 세계는 더욱 더 견고해지고 점점 더 우리는 서로를 배척하고 있다. 터뜨릴 수 없는 방울에 갇혀 서로 교감하지 못한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마술이 견고한 방울과 방울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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