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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Oct 03. 2022

마술 언더그라운드 팀, Hidden Germs

마술강의후기

    언제나 남들보다 앞서서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또다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이들이 된다. 지금도 그 흐름은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이들이 마술계에 영향을 주고 있을까? 김준표? 김슬기? PH? 그들 역시 무척 대단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해볼 예정이다.   

 

바로 언더그라운드 마술 팀, 히든 점스(Hidden Germs)다.     



히든 점스는 3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엄준혁

민스 킴(Means Kim)

에드먼드(Edmond)     



    우선 엄준혁 님은 2021년 마술 강의 [파워 플레이]를 필두로 꾸준한 활동을 통해 최근 몇 년간 마술계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마술사다. 민스 킴(Means Kim)님은 다양한 마술 강의를 통해 한국 마술계에 멘탈 마술의 유행을 불러일으킨 멘탈리스트이다. 뚜렷한 활동을 보여준 적이 없는 에드먼드(Edmond)님은 실은 엄청난 테크니션(손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마술인들 사이에서 ‘가장 손기술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다.     

    이전에도 마술 팀은 있었지만 많은 팀들은 하나의 공통 목표를 갖고 구성원이 뭉친 경우가 많았다. 히든 점스는 독특하게도 3명이 각자의 분야에서 따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마술계의 각기 다른 영역에서 이들은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단 한 번도 함께 모여서 활동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흐름을 가지고 오는 신예 마술사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엄준혁 마술사님의 인스타그램에 히든 점스 라이브 이벤트에 대한 공지가 올라왔다. 3명의 렉쳐쇼, Q&A, 그리고 뒤풀이까지. 참가비는 적다면 적고, 비싸다면 비싼 5만 원이었다.     


    대망의 그날, 8월 21일. 건국대 근처 소극장에서 라이브 이벤트가 열렸다. 참가 인원은 대략 50명 정도. 오프라인 모임에서 이 정도 인원을 모을 수 있다니, 이들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행사를 진행하는 인원은 히든 점스 멤버 3명뿐이었다. 진행을 도와주는 스탭이 한두 명 정도는 있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진행자들이 직접 참여자들을 맞이하니 둘 사이의 친밀함은 커졌지만 신비로움은 줄어들었다. 이후의 진행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의도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민스 킴님의 강의와 함께 이벤트는 시작했다. 종이 3장과 펜만으로 할 수 있는 강력한 멘탈 마술이었다. 쓰리 카드 몬테와 같은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마음을 읽는 현상까지 보여줄 수 있었다. 이번 민스 킴님의 작품은 카드 마술을 좋아하는 내게도 무척 흥미로웠다. 원래 멘탈 마술은 다른 마술과 잘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겼는데, 이번 작품은 종이 대신 백지 카드를 사용하는 등 일종의 ‘고른 카드 찾는 마술’처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지는 질의응답을 통해 나는 민스 킴님이 왜 이 현상을 선택했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어려운 기술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입문자는 입문자대로, 숙련자는 숙련자대로 잘 활용할 수 있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크게 어려운 기술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현상을 준비한 것이다.     



    그다음은 엄준혁 님의 차례였다. 엄준혁 마술사님의 ‘에빙하우스’는 클래식 마술 ‘아웃 오브 디스 월드’(Out of this world : 관객이 카드 한 벌의 앞면을 보지 않은 상태로, 빨간 카드와 검은 카드를 한 장도 틀리지 않고 올바르게 분류해내는 현상)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아주 작은 변화 하나만으로 ‘에빙하우스’는 ‘아웃 오브 디스 월드’와 크게 다른 현상이 되었다. 그것은 바로 현실성이다. ‘아웃 오브 디스 월드’의 경우, 관객들은 비현실적인 신기함을 느낀다. “이게 가능할 리가 없어!”     

    그러나 에빙하우스는 달랐다. 마술 연출이 끝나고 나서, 나는 비현실적인 신기함과는 사뭇 다른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어쩌면 정말로 가능한 거 아닐까?” 단순히 기법뿐 아니라 마술의 다른 디테일들까지 알려주는 것이 그의 강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지막에는 이 마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을 듣고 있자니 마치 아름다운 수학 공식이 발견되듯, 여러 조각이 짜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에빙하우스’는 이날 배운 마술 중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마술이었다.     



    에드먼드 님은 독특하게 PPT를 준비해서 강의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봤던 마술 강의들 중에서 PPT를 메인으로 사용하는 강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작부터 많은 기대를 품었다. 그는 테크니션이라는 자신의 타이틀에 걸맞게 자신이 마술과 기술을 연구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마술은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그리고 그 예시로 ‘푸시 오프 더블리프트’를 들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이들의 더블리프트를 공부했는지, 각각의 방식들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그중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방식은 무엇인지, 수십 장의 PPT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술 강의가 아닌 학술 세미나에 참여한 기분이 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학술 세미나는 지루하다는 것?) 작은 하나의 동작에 대해서 저 정도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날 나는 처음으로 마술 역시 학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강의는 예정보다 훨씬 길었다. 강의자들 각각이 하고 싶은 말이 많았기 때문도 있지만, 중간중간 참여자들이 던지는 심도 있는 질문 때문이기도 했다. 강의란 본래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 통행이라는 말이 맞았다. 다들 5만 원이나 내고 왔으니 가져갈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은 모두 가져가겠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구체적인 시간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정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는 것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Q&A가 그 뒤로 이어졌다. 단순히 손 들고 질문하는 식의 진행이 아닌, 익명으로 질문을 노트에 적은 후, 그중 재미있는 질문을 추려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마술 강의는 형식적인 질문들이 많아서 질문의 답변까지 형식적일 때가 많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참 마음에 들었다. 재미있었던 질문이 참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카드는 재활용 쓰레기인가요 일반 쓰레기인가요?” 가 있었다. (참고로, 재활용 쓰레기라고 한다.)

    질문 중에서는 질문 자체만으로도 마술계의 큰 논란이 될 법한 질문들도 있었다. 듣는 입장에서도 “이런 질문 해도 되나?”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히든 점스 멤버들은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위험한 질문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밝혔다. Q&A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더 재미있고 더 위험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다.     



    짧은 Q&A를 마치고 피자를 먹으면서 뒤풀이를 이어갔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히든 점스 멤버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쳤다. 엄준혁 마술사님은 공개되지 않은 자신의 마술을 여럿 보여주었고, 민스 킴님은 Q&A 시간에 못다 한 답변을 해주었다. 에드먼드 님 역시 사람들과 이야기를 활발하게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칠 줄 몰랐고, 소극장 대관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근처 치킨집으로 2차 뒤풀이가 이어졌다. 주최자와 참여자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졌다. 각자가 이야기를 했고, 각자가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마술 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히든 점스는 분명 현재 마술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팀이다. 다만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콘텐츠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아마 이들과 같은 콘텐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아쉬웠던 부분은 그 외의 부분이었다. 앞서 말했듯, 행사를 진행하는 인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스탭이 한두 명 있었다면, 행사는 조금 더 매끄럽고 원활했을 것이다. 대관 시간도 조금 더 길었다면 좋았을 것 같았다. 거의 6시간 동안 행사가 이어졌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단 한 번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회 히든 점스 이벤트가 있을지 없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부산에서 동일한 이벤트를 연다는 소식은 들었다.) 만약 2회가 열린다면, 그때도 이번과 같은 풍부한 콘텐츠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한 이야기를 또다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무리는 엄준혁 마술사님의 짧은 후기로 대신한다.   

  


“이번 시간 이후로 마술계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공간이 되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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