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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Aug 17. 2023

마술 졸업

마술인의 생각

본 칼럼은 마술잡지 아르카나 2022년 3월호에 투고했었던 칼럼입니다.


마술을 왜 할까?

우리는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마술을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리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과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이다.    

 

    H를 만난 것은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 당시 대학교를 휴학하고 광주 본가에서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광주의 마술인들을 모아 마술 모임을 가져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여기저기 커뮤니티와 SNS에 광주/전남 마술 모임 홍보글을 뿌렸고, 2016년 그때 당시 꽤 많은 인원이 모여서 함께 마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임의 대부분은 그 당시 22살이었던 나보다 나이가 적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 H는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은 유일한 형이었다. 그는 마술을 배우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우리 모임을 찾아왔다. 그리고 마침 그때 즈음의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마술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배우고 싶은 사람과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우연히 만난 것이다. 내가 먼저 H에게 제안을 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주기적으로 만나서 나는 그에게 공짜로 카드마술을 알려주었고, H는 기꺼이 경력 없는 신입 강사의 첫 번째 학생이 되어주었다.     


    H는 그 당시 우리 모임의 유일한 군필자였고, 겸손하고 조용하지만 동시에 재치있는 사람이었다. 인상깊었던 것은, 그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먹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마술을 하나 알려주면, H는 그 마술을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말해주었다. 이전 시간에 배운 마술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훌륭하고 모범적인 학생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한 명뿐인 학생과 함께 마술 강의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나의 군 입대가 다가왔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나는 H에게 항상 묻고 싶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왜 마술을 하세요?" 그때 나는 처음으로 H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H는 스스로를 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소심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내린 답은 바로 마술이었다. 그는 내가 알려준 마술로 아르바이트 동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 역시도 무척 기뻤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입대를 했다. 새로운 환경과 일상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민간인 시절 친했던 사람들과도 점차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광주에서 만난 마술인들과 H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H를 다시 만난 것은 군대를 전역하기 직전, 마지막 휴가를 나갔을 때였다. 더 이상 강사와 학생의 관계가 아니었기에, 그는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내게 식사를 대접해주었다. 나는 H에게 마술은 잘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때 H의 답변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마술이 필요가 없더라고."     


    H의 말에 따르면, 내가 군 입대를 하고 나서도 H는 여전히 마술을 열심히 연습해서 보여주었다. 그 당시 H는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그의 마술은 꽤나 유명해졌다. 나중에는 먼저 마술을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는 마술을 통해 자신이 원하던 바를,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H는 영화관의 전혀 다른 파트로 옮기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됐다. H는 거기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마술을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마술을 할 때처럼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술을 하지 않았다. H는 용기를 내서 새로운 사람들 앞에 섰다. 먼저 인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자 어느새 H는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서 잘 지내고 있었다. 그 순간 H는 이제 자신이 마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우리는 왜 마술을 할까? H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마술을 시작했다. 신기한 마술을 보여주면 자신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절반만 옳았다. H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비단 그의 마술이 신기해서만은 아니었다. 마술이 없어도 이미 그는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은데다가 긍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술은 H에게 하나의 도구가 되어주었을 뿐이다.     


    마술을 통해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H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마술을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 대신 마술을 통해 자기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각자만의 매력이 있고, 마술은 그저 그 매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온전히 마술만으로는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의지다.     


지금도 H는 마술을 연습하고 있다.

가끔씩 H가 내게 마술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기쁘게 답해준다.

그는 나의 첫 번째 학생이자, 깨달음을 준 선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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