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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Sep 18. 2023

요리로 배우는 마술

마술인의 생각

본 칼럼은 마술잡지 아르카나 2022년 5월호에 투고했었던 칼럼입니다.


     8년 동안 마술을 하면서 정말 많은 마술사들의 강연을 들었다. 질의응답 시간 때마다 누군가는 &당신처럼 마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강연자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마치 어느 요리 유튜버가 &맛에는 공식이 있다.& 라고 말한 내용과 비슷하게 들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맛있는 요리와 신기한 마술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들이 있었다.



1. 경험이 중요하다.     

     요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보아야한다.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결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없다. 내게 맛있는 똠양꿍을 만드는 것은 맛있는 간장불고기를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똠양꿍을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내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다.

     마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신기한 마술을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신기함을 경험해야한다. 멋진 마술을 하기 위해서는 멋있는 마술 공연을 많이 보아야한다. 재미있는 마술을 하고 싶다면, 재미있는 마술 공연을 많이 보아야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술 공연을 볼 때 트릭을 파헤치려하지 않고 비마술인과 동일한 시점에서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2.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     

     예쁜 그릇에 정성껏 음식을 담으면 먹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똑같이 맛있는 음식이라도 담긴 그릇이 달라지면 왠지 맛도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파게티를 예로 들자면, 스파게티는 시중에 파는 면과 소스를 비벼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그러나 프라이팬에 대충 쓱쓱 비벼서 먹는 스파게티와, 예쁜 접시에 정성스럽게 담아서 먹는 스파게티는 분명히 차이가 느껴진다.

     음식의 모양새는 첫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술에서도 첫 인상은 무척 중요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첫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마술이 신기하고 말고를 떠나서, 후줄근하게 입은 사람이 하는 마술은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하는 마술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마술을 하기 위해서 무조건 패션 스타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스파게티를 팬에서 접시로 옮기는 정도의 정성을 들일 필요는 있다.     



3. 다같이 즐기면 더 행복하다.     

     혼자서 요리하고 혼자서 먹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주변 사람들에게 요리를 대접해보자. 내가 정성들여 만든 요리를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큼 뿌듯한 경험도 없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요리에 자신이 없을 수밖에 없겠지만,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되었다 싶은 요리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눠보자.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때부터 알아서 다른 요리들도 찾아보고 연습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술 역시 처음에는 혼자 책상 위에서 이것저것 연습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은 마술은 그저 손기술의 나열에 불과하다. 용기 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주자. 그들이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한 번 관객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부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른 마술들을 더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충분히 연습하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대충 연습하고 마술을 보여주는 건 덜 익은 불고기를 대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4. 실패도 경험이다.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요리하기를 꺼려한다면 요리 실력은 평생 나아질 수 없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요리를 하다보면 반드시 요리를 망칠 때가 생긴다. 물 조절을 잘못해서 간이 싱거울 수도 있다. 음식을 태워서 아예 못 먹을 음식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고 기억해야한다. 실패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를 분석해서 다음에 더 나은 요리를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요리를 잘하는 자취생이 많은 이유가 뭘까? 그건 바로 이들이 좋든 싫든 지겹도록 집에서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마술사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마술을 잘하는 비법은 그만큼 관객들에게 많이 보여주는 것이다. 분명히 처음에는 긴장해서 실수도 많이 할 것이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을만큼 실패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실패와 실수들은 경험이 되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실패를 겪은 직후다. 실패를 만회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럽더라도 나의 실패를 다시 분석해야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실수했을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역설적으로,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들을 알게 된다.     


5. 평범해도 괜찮다.     

     내가 요리를 시작한 이유는 정말 평범했다. 냉장고의 반찬이 어느 때와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새로운 음식이 먹고 싶어서 요리를 도전했다. 메뉴는 만만한 볶음밥이었다. 다른 사람을 대접하기 위해 만드는 음식도 아니었기에, 부담없이 만들 수 있었다. 맛이 없어도 상관 없었다. 어머니 몰래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면 됐다.

     내가 아직도 요리하는 이유는 내게 요리가 전혀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요리사가 될 생각도 없고, 요리 대회를 나갈 생각도 없다. 나는 그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뿐이다. 취미로 마술을 한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세워서 부담을 갖고 마술을 시작하면, 마술을 오래 하기 힘들어진다.

     유명 셰프가 정성스럽게 구운 스테이크같이 대단한 마술을 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정성을 다해 세상에 내놓은 마술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반면 우리 대부분의 마술은 김치찌개와 같다. 거창하지도 않고 특별히 대단하지도 않다.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대단한 마술은 대단한 사람들에게 맡겨두자. 취미로 마술을 하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리와 마술의 공통점 : 함께 하면 더욱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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