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마제야 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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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3. 22
내가 옳다는 확신
언제나 정치 이야기는 민감합니다. 누군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사실에 무척 동의하지만 동시에 민감한 주제로 인해 친한 사람들과 등을 돌리게 될까봐 무척이나 두렵습니다.
최근에 절친한 친구와 정치에 관련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와 그 친구가 어떤 성향을 갖고있는지, 서로 의견이 같은지 다른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와 나눴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우리 자신이 옳다고 믿고싶어하는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우리의 대화에 창작을 가미하여 간략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이상하지 않아? 내 주변에는 XXX(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지지하는(또는,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뉴스에서 나오는 통계는 왜 이렇게 낮은지(또는, 높은지) 모르겠어. 이상하지 않아?"
"나는 왜 그런지 알 것 같아. 네가 피부로 느끼는 '다수의 의견'이란 실제로는 네 주변인들의 의견일 뿐이잖아. 너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너와 관심사가 비슷하고, 환경이 비슷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일텐데 그러면 높은 확률로 정치적 견해도 비슷하지 않겠어? 설령 너와 정치 성향이 다르다고 한들 구태여 네 앞에서 그런 주제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지금 나도 그럴지도 모르고."
그 친구는 자기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믿었고, 그것이 옳다는 근거로 주변 사람들의 견해가 자신과 동일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 대화에서 제가 주목했던 부분은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틀릴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저는 언제나 그 점을 경계하려고 애씁니다.
나의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인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제 자신이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씁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저는 관련 지식과 정보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사회와 정치에 관한 전문가의 의견이 제 의견보다 훨씬 더 많은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제 아버지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사회 문제와 정치적 이슈에 무척 관심이 많으셨죠. 저는 그런 아버지와 함께 자라며 그가 바라보는 사회와 기업과 노동자에 대해, 그가 바라보는 정부와 시민과 국가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필연적으로 제 관점에 영향을 주게 됐죠. 그래서 저는 뉴스를 볼 때마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 의견이 온전히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믿지 않으려 애씁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타인에게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이성과 합리로 추론해낸 결과라고 믿는 어떠한 사실이, 알고보니 누군가가 심어놓은 생각인지도 모르죠. 어쩌면 그렇게 남은 평생을 자신이 이 세계관을 선택했다고 믿은 채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내가 틀렸다는 즐거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감각이 옳다고 믿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견고하고 강력한 것입니다.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을 당연하게 '믿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세계관이 올바르다고 '믿습니다.' 어쩌면 험난한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우리 유전자에 깊숙하게 각인된 동물적 본능인지도 모르죠.
이러한 믿음을 교묘하게 비틀어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마술사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 모든 인간이 100%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했다면 마술사라는 직업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마술사는 관객의 믿음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을 훌륭하게 이용합니다. 분명히 왼손에 동전이 있다고 믿었지만, 손 안에 동전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인지 능력이 불완전하며 자신의 믿음이 언제든 자신을 배반할 수 있다는, 일상 속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유례없이 혼란스럽고 파편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고 미워하고 상처입힙니다. 개인과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대화보다 폭력이, 포용보다 배척이 미덕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후대의 인류는 2026년의 지금을 '병든 시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두려워 자기 자신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조차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죠. 하지만 마술은 내가 알고있는 사실이 실제 현실과 다를 수 있음을, 가장 즐겁고 유쾌한 형태로 전달해줍니다. 내가 살고있는 세계와 네가 살고있는 세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마술의 거장, 제프 맥브라이드가 자신의 책 '쇼닥터'에서 글을 마무리할 때마다 항상 덧붙이던 문장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술은 좋은 약이다.
필로마제야, 박영균
보너스 : 필로마제야를 위한 마술 영상
마술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놀랐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영상은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관객의 물건을 '털어가는' 소매치기 마술사, 아폴로 로빈스의 영상입니다. 그가 설명하는 심리적 빈틈, 즉 미스디렉션에 대한 이야기도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