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언은 자전적이다

필로마제야 레터

by 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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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3. 08


이번 레터는 마술잡지 아르카나 2026년 3월호에 투고한 칼럼과 함께 읽으시면 더욱 풍부하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조언은 자전적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조언을 할 때

그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조언하는 것이다.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에서 훔쳐옴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이 시기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는 두 행사가 비슷한 시기에 붙어있기 때문이겠죠. 바로 졸업과 입학입니다. 저 또한 인생의 대부분을 특정 기간의 시작과 끝을 기다리며 보냈기에, 매년 이맘때쯤이면 이름 모를 졸업생들과 신입생들에게 주제넘은 조언을 남기고 싶어 하는 충동에 시달립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각자만의 조언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내용은 서로 상충하기도 하죠. 누군가는 20대 때 열심히 놀아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20대 때 최선을 다해 미래를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둘 중 누구의 말이 분명하게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그들 각자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어떤 아쉬움이 남아있느냐와 관련이 있겠죠. 그렇게 자신의 실수를 바탕으로 다른 이들은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우리가 불특정 다수에게 섣부른 조언을 하고자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결국 모든 조언은 눈앞의 상대방에게 건네는 것처럼 보여도 어쩌면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오늘, 과거의 저 자신에게 저만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을 들려주고자 합니다.


입학 : "마술은 네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되어줄 거란다."


마술 동아리를 찾아 동아리 모집 부스 사이를 기웃거리던 네 모습을 아직도 기억해. 그 당시의 너는 너 자신이 어떤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지. 마술을 시작한 것도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어. 남들 다 하나씩 갖는 취미가 궁금했을 뿐이었거든. 그때까지 네 인생의 많은 즐거운 것들이 그랬던 것처럼, 네 인생을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가벼운 여흥거리라고 기대했겠지.


하지만 너는 그 마술 때문에 앞으로 두 번 다시 네가 기대하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거야. 왜냐하면 마술은 너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도록 만들 거니까. 그 의문 때문에 너는 네가 막연히 기대했던 인생의 길에서 크게 멀어지게 되겠지. 아직 신입생인 너에게는 슬프게 들릴 수도 있지만, 너는 정말 많은 실패를 겪게 될 거야.


외부로부터 찾아온 실패담은 시간이 지나 자랑스러운 무용담으로 변모하기도 해. 하지만 네가 겪을 실패는 전혀 다른 모습일 거야. 너는 타인보다 너 스스로와 더 많은 갈등을 겪게 되겠지. 성장하는 것이 아닌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느껴지는 시간들도 있을 거란다. 그 어떤 것도 네가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 테고 말이야.


하지만 그럴 때면 내 말을 떠올렸으면 좋겠어. 나는 너와 달리 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거든.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야. 너는 어떻게든 그 시간들을 모두 견뎌낼 거야. 아무 목적 없이 버려진 시간. 그 시간이 모여서 너 자신을 좀 더 선명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주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낱 가벼운 유흥거리에 불과할 줄 알았던 마술은 네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되어줄 거란다. 그러니 네 마술과 네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렴.


졸업 : "그건 사실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학위복을 입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캠퍼스에서 추억을 남기는 그 시간에, 너는 아무도 없는 빈 강의실에서 의자를 나르고 책상을 쌓아 공연장을 만들었구나.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어. 대체 누가 졸업식 대신 졸업 공연을 만들 생각을 했겠어.


공연에 찾아와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당당한 모습과 달리, 너는 너 스스로의 졸업에 대해 자신이 없었어. 다른 학생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증표로서 학위 증서를 받았고, 그래서 그들의 졸업은 축하받아야 마땅한 이벤트였지. 하지만 너는 예외라고 생각했겠지. 네 졸업은 진정으로 축하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거든. 그들도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대학교를 10년이나 다니고도 자랑스럽게 축하 따위를 받으려고 하는구나. 게다가 마술 공연이라니? 바로 그 마술 때문에 쟤는 저렇게 남들보다 늦어버렸는데 말이야!"


지금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들은 네가 어떤 시간을 견뎌냈는지 결코 알 수 없어. 남들처럼 학교를 다니기 위해 네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이겨내고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했는지 아무도 공감하지 못해. 어떤 이들이 자연스럽게 시냇물처럼 잔잔한 삶의 흐름 속에 졸업장을 받았다면, 너는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격류 끝에 간신히 졸업장을 얻어낸 것과 같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너 자신만은 네 졸업에 대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해.


물론 졸업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야. 졸업 공연의 제목이기도 했던 영단어, Commencement에는 '끝'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도 있잖아? 앞으로 몇 년간은 고민과 방황이 계속될 거야. 네 삶을 온전히 너 스스로 책임져야 할 거야.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릴 때도 있겠지. 나이는 늘어만 가는데 마음속에는 여전히 14살짜리 아이가 앉아있는 기분일 거야.


그래도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덜 걱정하게 됐어.

왜냐하면 그 시절을 견뎌낸 네가 있었으니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줘서 정말 고마워.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박영균



보너스 : 필로마제야를 위한 마술 영상


오늘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린 만큼, 제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마술 영상을 공유해드리고자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구매했던 마술 DVD의 연출영상이기도 하고, 군 입대 직후 이 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도 있습니다. 카드 한 벌과 하나의 테마만으로 얼마나 재밌게 공연을 이끌어갈 수 있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Thank you, Dar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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