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고민-영어는 우리에게 무엇
필라델피아 발음이란
by 와들리 Wadley Jan 20. 2024
이것은 필라델피아 발음이야.
우리집 유행어다. 넷이 뭔가 영어를 했는데 억양이 어색하면 그렇게 말하곤 한다. 이게 다 옛날 영어학원 원어민이 내게 필라델피아 발음이라고 했어-라고 자랑하는 파트너 덕분이다. 우리는 매일 영어를 쓰는 나라에 살지만 사실 영어를 안 써도 잘 살 수 있다.
길에서 택시 보기 힘들다. 우버를 부른다. 식당에 가면 테이블마다 큐알 주문이 있다. 한인 식당도 그렇더라. 슈퍼마켓도 나홀로 계산대가 중심이다. 클릭 앤 콜렉트를 자주 한다. 부동산, 헬스장, 심지어 요가 선생님과도 메일로 소통한다. 모두 다 폰 하나면 된다. 여기는 호주 브리즈번 맞다.
영어 안 써도 살 수 있다. 이웃은 만나기도 힘들고 길 가다 마주치면 인사를 나눠주던 호주 사람들은 이제 많지 않다.(가끔 내가 먼저 인사했다가 무안할 때도) 혼자 호주에 왔던 20년 전과는 다른 세상이 되었다.
20년 전의 나는, 홈스테이 집에서도- 본드대학교에서도- CVA 캠프에서도- 모두가 다 영어만 했다. 홈스테이 어른들은 나를 위해 천천히 말을 해주었고 대학교도 비슷한 또래와 수준의 학생들이 수업을 들었기에 즐거웠으며 무엇보다 길가를 걷기만 해도 "How's it going?"을 해주는 정다운 호주사람들이어서 들떠 있었다.
물론 CVA 그러니까 호주 봉사 캠프에서 나는 좌절감을 연속해서 느끼게 된다.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하는 캠프였는데 그네들의 자연스러운 영어 대화에서 룰루랄라 친한 척했던 나는 점점 멀어지는 대화를 느끼게 된다. 빵에 버터를 열심히 바르고 아보카도를 천천히 짓이겨보며 시간을 끄는 건지 대화를 듣는 건지. 눈앞에 보이는 건 서양의 그네들인데 거울 속의 나는 입을 잘 못 떼고 있는 동양인이었다. 몇 주의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고 친근함도 느꼈지만 원활함은 아니었다. 돌아와서 다시 열심히 영국문화원(호주랑 비슷하니)을 다녔지만 현실 속에서 나는 영어와 멀어지고 있었다.
다만 내게 남은 것은,
그들도 그냥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것. 두려움 없이 그냥 말하면 된다는 것.
기기와 인터넷의 발전은 가히 무섭다. 집안에만 있으면 한국의 새해 타종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궁금한 거 안 되는 거 이럴 땐 이렇게의 대처법들이 다 나온다. 게다가 버튼 한번 더 누르면 온통 번역되어 나온다. 마트에 가도 마찬가지, 실시간 번역을 누르고 폰을 들이대면 이게 일반 빨래 세제인지 섬유유연제인지 실수 따위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언가 늘 수가 없는 세상.
아이들은 다르다. 1년 살이 4번의 텀(term 학기), 이 학기 중에는 무조건 아침 8시 30분부터 종이 치는 3시까지 영어만 듣고 말하는 환경 속에 있다. 영어가 목적은 아니었지만 우리집 애들은 영어세상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일단 우리와는 세대가 다르다. 영유나 영어학원을 보낸 열혈 학부모는 아니지만 아이들 초등부터 운이 좋아 학교 내 원어민 수업을 매일 들었다. 둘 다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 불편함은 없지만 무언가 준비를 하고 오진 않아 부딪혀 보고 안 되면 학교 내의 영어 지원 프로그램 같은 것을 알아볼 예정이었다.(호주에선 여러 학교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으며 공사립 모두 해당됨)
오늘은 어땠어 잘했어?
둘 다 이 질문이 지겨웠을 거다. 뭘 알아듣긴 하는 건지, 학교에서 말은 하고 사는지 물어봤으니. 알아서 해- 그냥 잘 지낸다고- 둘 다 그만 물어보라고 했지만 알고 보니 엄청 스트레스들을 받고 있었다. 교과목 영어야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게 쏟아졌을 테고. 여기로 모이는 건데 저기 가서 기다리는 일도 생기고. 그냥저냥 학교 생활을 하고 있으니 따로 지원 프로그램 없이 지낸다고 하는데 어떤지 궁금했다.
가장 문제는, 점심시간이라고.
그렇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용어와 대화가 있다. 교과 수업이야 리스닝이 잘 안 되어도 교과 관련 용어를 찾아가면서 하나씩 알게 되는 거지만 중딩은 또래의 대화를 잘 알아들을 수 없음을 힘들어했다. 한국에서처럼 까불면서 친구끼리 수다 떨고 그래야 하는데. 이들만의 대화라는 건 우리네 십 대의 은어 속어처럼 알다가도 모를 것들. 중딩은 1텀은 한국의 친구들과 마라탕 먹으며 놀고 싶다더니 2텀이 지나자 조금 나아진 느낌.
초딩은 오히려 아이들은 그냥 놀이터에서 장난치면서 말을 다 못 알아들어도 그냥 놀면서 친해지는 분위기라(게다가 초딩은 놀면서 행복하자 호주이니) 같이 노는 친구들이 생겼고 느낌과 상황으로 파악하는 것이 늘어갔다. 초등 아이들이 순한 편이라 조금 말이 느리고 어색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고 손잡아 주는 느낌이다.
두 아이는 그렇게 1년의 학교 생활을 나름의 생존기와 성적표를 만들어가며 지내줄 것이다. 다만 사춘기 중딩보다는 룰루랄라 초딩이 생활은 좀 더 쉬워 보인다. 아마 테스트와 학업에 대한 압박이 적어서 더 그런 듯. 와서 3텀에 바로 학부모 면담을 했고 올해 한번 더 하게 될 테니 아이의 학습에 대해 조금 더 들을 수 있으리라.
20년이 지난 나에게는 그렇다면 영어는, 더 무겁게 어려움으로 짓누른다. 요가반 어르신들과 동네 이웃과 성당에서 사람들과 대강을 알아듣고 조금씩 말은 하지만 날로 머나먼 세계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처해야 하는 상황들, 가령 차 고장이나 아이들 결석문제 렌트한 집의 보수라든지 잘못된 계산 등등 분명히 알아듣고 확실히 물어보며 다음을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하게 된다.
아임 쏘리 아임 낫 굿 앳 잉글리시.
이 말 없이 들은 내용에 확신하고 다음 행동에 용기를 내면 좋겠지만 100퍼센트의 확신은 없다. 늘 맞나 이거였지를 함께 확인하고 있을 뿐. 더 잘하고 싶지만 돌아가면 국어교사인 나는 또 잊으며 살게 될 것이다.
아쉽기도 하지만 또한 다행인 것은 이메일이 쉽다. 학교도- 부동산도- 성당 오피스도- 심지어 옆집 아줌마까지- 모두 메일을 잘 확인하고 답 준다. 이에 앞마당 나무를 실어가지 않는 문제랄지 다음번 봉사자의 날짜를 확인하는 문제이거나 좀 더 전문적이며 확실하게 확인해야 할 수많은 소통들이 모두 메일을 통해 이루어졌다. 내가 전하려는 내용을 번역기에 돌리고 번역이 맞게(특히 주어 서술어가 안 맞는 경우가 많음) 되었는지 확인하고 보내며 답신에서 확실히 내용을 확인하는 이 일련의 일들이 번역기능을 통해 진행된다.
살기 좋은 세상, 그러나 영어는 느리게 는다. 아이들처럼 학교를 다니든 학교에 다니듯 어딘가로 나서야겠다. 다음 주는 호주의 <새 학년 새 학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