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아낼 건 단 하루의 나

영화 <퍼펙트 데이즈>

by 뮤즈노트

전에 대학원을 다니던 아내가 '구성주의'가 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습니다. 교수님께 물어봐도 속 시원한 설명을 못 들었다면서요. 그래서 과외 선생님처럼 아내를 책상 앞에 앉혀놓고 짧은 특강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십분 정도가 흘러 설명이 끝난 후, 아내는 '이렇게 강의하면 이해가 바로 될 텐데 교수님은 왜 설명을 안 해준 거지?'라고 다시 투덜대더군요. '그거야 대학원에선 학원식 강의를 하지 않으니까...'라고 달랜 적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학원식으로 '구성주의'를 설명하자면, '세계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진다(구성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산을 보고 이 세계에는 산이 있다... 란 지식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 산은 사실 눈을 거쳐 들어온 시신경 다발의 전기신호를 뇌에서 '구성'한 것입니다.


뇌에 산의 형상이 비추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뇌는 캄캄합니다. 따라서 산 위에 있는 킹콩을 합성해서 전기신호를 뇌에 흘린다면 이 세계에는 킹콩이 있다... 란 이상한 세계관을 얻게 될 겁니다. 그래서 칸트는 실제 세계에 무엇(물자체)이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우리의 눈과 귀 등을 통해 얻은 감각으로 구성된 세계(현상)만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게 바로 세계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진다는 구성주의입니다.


"세상은 수많은 다른 세상으로 이뤄져 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가 엄마와 싸우고 삼촌 집에 온 조카에게 해준 말입니다. 조카는 엄마가 삼촌에 대해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란 말을 한 적이 있음을 기억하곤, 둘의 사이가 나쁜지를 물었던 터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정확히 사람마다 나름의 세계를 구성해서 그 안에 살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미치광이처럼 천천히 춤을 추는 노숙자에겐 그만의 세계가 있을 것이기에 히라야마는 그를 이상하게 보기보단 미소를 띠고 바라봅니다. 구애 중인 청소부 동료 타카시와 그가 슬쩍 훔치듯 넣어준 테이프를 돌려주러 온 술집 아가씨 아야, 선술집 여주인에게 암에 걸리고 나서야 찾아온 전남편, 니코의 엄마이자 자신의 여동생까지 모두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해서 그 안에 살고 있습니다. 타카시의 귀를 만지러 종종 화장실에 들르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동창에겐, 영화 속 타카시의 농담처럼 '타카시 = 부드러운 귀'라는 세계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세계가 나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나를 괴롭히기만 한다는 말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그 세계가 공포라면 자신이 구성한 공포일 것입니다. 그 세계가 불안이라면 자신이 구성한 불안일 것입니다.


"그 작가 덕분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단 걸 알았어요"



저마다 다른 우리 세계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공포와 불안일지 모릅니다. 조카 니코는 삼촌이 읽던 책 <11>을 읽으며 주인공 소년이 자신과 같다고 말합니다. 니코에게 그 책을 주고 나서 서점에 들러 같은 책을 사자 서점 주인이 위와 같이 말합니다. 공포와 불안은 다름을 알게 됐다고요.


<11>의 주인공 소년은 집에 갇혀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는 캐릭터이니 니코 역시 어머니의 세계에 갇혀 있는 셈입니다. 공포도 있고 불안도 있겠지만 둘은 차이가 있습니다. 공포는 시간상 현재에 가깝고 불안은 미래시제와 어울립니다. 현재의 공포는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지만 미래는 언제나 앞서 있기에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실존주의자들이 '불안'이란 주제에 매진했던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답은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떤 일이 실패할까 불안합니다. 실패는 '진짜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거야?'라고 묻던 여동생처럼, 연결된 세계에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그거야 그 세계의 평가일 뿐이지라고 넘기면 좋겠지만 더 큰 문제는 그 평가가 자신에게 되돌아올 때입니다.


'나는 주변 사람 말대로 진짜 실패자인 건 아닐까?, 진짜 형편없는 인간이 된 것일까?'


불안과 공포는 다르다는 서점 주인의 말처럼 우리의 불안은 결국 남의 눈과 기대에 못 미칠까인 듯 하지만 실제론 남의 눈에 못 미치는 자신에게 내가 실망할까 봐인 것이죠.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히라야마는 불안이 공포가 되는 세계 속에서 나름의 답을 내놓습니다. 니코가 '나는! 나는 어떤 세계에 속해 있는데?'라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언뜻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자는 말인 듯 하지만 그 안에는 더 깊은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현재가 된 우리의 일상은 따분합니다. 영화가 매일 지루한 화장실 청소, 목욕과 세탁, 술 한잔과 현상한 사진을 모으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히라야마는 반복되는 똑같은 세계 안에서 다름을 찾아내려 합니다.



햇빛이 비치는 나뭇잎의 흔들림은 그 순간만 존재합니다. 매일 아침 분무기로 물을 주는 화분의 새싹은 미세하게나마 성장하고 있습니다. 선술집 여주인에게 찾아온 시한부 인생인 전남편이 그림자가 겹치면 더 짙어지는지를 묻자, 그를 세워두고 그림자를 겹쳐 봅니다. '똑같군요'라는 전남편의 세계와 달리, '더 짙어지는 것 같아요'란 히라야마의 말은 그가 구성한 세계가 늘 변화를 찾고 있고, 그렇게 매일 갱신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사랑스러운 조카 니코는 어머니의 세계에 속해 답답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만들 힘은 부족하여 불안한 상태입니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란 말은 불안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구성된 불안일 뿐이니, 현재를 새롭게 발견해 가라는 그의 격려인 것입니다.


아이를 찾아줘도 고맙다는 말보단 화장실 청소부가 잡은 아이의 손을 먼저 닦는 여자, 진짜 화장실 청소를 하며 살고 있냐고 묻는 여동생, 일상적인 다른 세계의 경멸과 무시에도 히라야마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그가 만들어가는 세계가 여전히 작은 차이를 만들며 지금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Feeling Good"


영화의 마지막 장면, 차를 몰고 일출을 바라보며 출근하는 히라야마는 카세트를 플레이합니다. '필링 굿'이란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히라야마는 마치 울기라도 하는 듯 눈물이 글썽한 표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보단 감격에 가까운 것입니다. 일상이 버티고 있는 바깥 세계는 슬픈 것일 수도 알지 못할 불안이 떡 버티고 있는 세계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침 빗자루질 소리에 눈을 뜬 순간, 매일 새로운 날로 만들어지고 구성되는 세계를 발견하는 오늘 아침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살아낼 건 거창한 미래와 성공이 아닙니다. 칸트도 포기해버린, 영원히 알지못할 물자체의 불안한 세계도 아닙니다.


지금 살아낼 건 단 하루의 나입니다. 단 하루만큼의 새로운 세계입니다.


Feeling good

- nina simon (1965)

높이 나는 새들아, 이 기분 알지
Birds flying high, you know how I feel

하늘에 뜬 태양아, 내 기분이 어떨지 알지
Sun in the sky, you know how I feel

불어오는 바람아, 이런 기분이 뭔지 알잖아
Breeze driftin' on by, you know how I feel

새롭게 맞는 새벽
It's a new dawn

새로운 날
It's a new day

그래! 이게 나의 새로운 삶이야
It's a new life for me, yeah

그러니 기분 좋을 수밖에
And I'm feeling good


치악산에서 찍은 사진 (2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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