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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Mar 14. 2024

뭘 자꾸 파묘?

영화 보다가 문득

휴가를 내고 느긋하게 파주 카페에서 책을 쓰다가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런 날이 있다. 예상치 못한 강한 끌림과 딱딱 스틱소리에 드럼 연주가 시작되는 듯 발걸음이 옮겨지는 날. 톡으로 대화하던 친구는 '무섭진 않은 데 돈이 아깝지는 않은 영화야.'라는 짧은 평을 전해줬다.


카페에서 나서자 강한 바람이 분다. 꽃샘추위에 깃을 잔뜩 치켜세우고 터덜터덜 걸었다. 파주출판단지 메가박스. '임대 구함'이란 A4용지가 흐릿한 유리창 곳곳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고, 반대편 주차장은 빛바랜 양철지붕으로 둘러진 듯 낡았다. 영업을 하나 싶을 정도로 한산한 입구를 지나 2층 매표소에 가자, 붉은 팝콘 기계 뒤쪽에 서 있던 직원 두어 명이 놀란 듯 한 눈으로 바라본다.



1, 2층 합쳐 총 9관까지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평일 오후라곤 해도 수상쩍을 만큼 한산하다. 티켓을 사며 좌석 현황을 보니 관객은 나 빼고 단 두 자리만 예약돼 있다. 혼자 1층으로 내려와 상영관에 앉는다. 광고가 돌아가는 극장엔 아무도 없다.


문득 내가 가장 무섭게 본 영화관이 생각난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일본에 출장 차 들른 적이 있다. 니가타 현으로 향하는 밤 기차가 올 때까지 5시간 넘게 비어버렸다. 저녁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 하릴없이 신주쿠 거리를 배회했다. 도쿄엔 눈이 드물다던데 곧 눈이나 비가 쏟아질 듯 서늘한 밤기운이 느껴졌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영화관이었다. 춥고 으슬으슬해서 몸살에 걸릴듯한 날씨. 딱딱 스틱소리에 맞춘 드럼 연주처럼 혹은 복선처럼 나는 어느새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일본 아가씨는 메가박스 팝콘 코너 직원들과 비슷한,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표를 끊어줬다. 그리고,


영화관에는 앞 좌석에 앉은 추레한 차림새의 남자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저녁 시간인데 극장에 왜 사람이 없지?'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데 영화가 시작됐다. <링> 시리즈의 영화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공포영화 전문 상영관으로 표 한 장에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동시상영관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신주쿠역 앞, 번화가에 위치한 극장이 이토록 한산한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다미방 위를 관절을 꺾으며 걸어오는 존재,  마룻바닥의 음침한 소리, 원한이 담긴 검은 우물, 비현실적 공포 이미지가 스크린에 스쳐갔다. 하지만 휴대폰도 없이 서울 집에서 천 킬로 넘게 떨어진 도쿄 신주쿠 공포 영화 상영관에 홀로 앉아 있는 쪽이 더 비현실적이었다.


난 영화를 보며 처음 느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공간에 아무런 이유 없이 존재하는 나. 그것은 공포의 다른 이름인 고독이었다. 고독은 마음을 잠식하고 곧 몸을 뒤덮는다. 근원적 공포의 실체는 나라는 존재가 누구에게도 포착되지 않은 채, 새벽안개인 양 서서히 잊힘에 있단 생각이 들었다.


끙끙 열심히 땅을 파댄다. 영화에선 흉측한 것들이 튀어나온다. 풍수전문가인 최민식과 무녀 김고은은 그것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이야기를 따라가 이유를 찾아내고 달래기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 너를 안다고 말을 건네는 것이다. 결국 산 자가 느끼는 공포는, 죽어서도 잠들지 못하는 망자의 공포와 이어져 있다.  


그것은 절대적 고독이며 잊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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