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열린 사회와 그 적들 1부

나는 열린 사람인가?

by 암호해독가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전체주의의 모든 시도는 비록 선한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하더라도 결국 지옥을 만들 뿐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



지상 천국을 만들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 낸다.


이 짧은 한 문장은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말한 메시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일지도 모른다. 전체주의와 독단이 전 세계를 뒤덮던 20세기 중반, 포퍼는 하나의 강력한 철학적 경고장을 세상에 던졌다. 그는 말했다. "열린 사회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그 적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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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눈으로 본 정치

포퍼는 철학자였다. 그중에서도 과학 철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과학을 넘어 역사, 정치, 인간 사회 전반에 미쳤다. 그는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하나의 큰 틀로 바라보았다. 바로 열린 사회(Open Society)와 닫힌 사회(Closed Society)라는 이분법이다.


열린 사회는 비판과 토론, 대화와 관용, 그리고 시스템의 힘을 믿는 사회다. 반면 닫힌 사회는 지도자에 의존하고, 역사의 법칙을 따르며, 집단주의에 열광한다. 포퍼는 이 둘을 단순히 정치 제도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태도의 차이로 보았다.



열린 사회란 무엇인가?

포퍼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서 반드시 열린 사회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열린 사회란,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의 생각과 권력을 의심할 줄 아는 사회다. 즉, 아무리 좋은 대통령이 있더라도, 그가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함부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하느냐?"보다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없게 막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포퍼의 철학적 적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단지 열린 사회를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열린 사회를 위협하는 철학과 이념들을 철저히 파헤친다. 포퍼가 지목한 적의 첫 번째는 놀랍게도 우리가 익히 위대하다고 배워온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다.


포퍼는 플라톤을 닫힌 사회 철학의 원조로 지목한다. 플라톤의 철인정치, 유토피아적 국가 구상, 그리고 '지도자 없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명령 체계는 결국 인간을 가축처럼 길들이는 정치 체계로 귀결된다고 본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머리(철인왕)', '가슴(군인)', '배(노동자)'로 나눠진 수직적 정의가 지배하는 국가다.



포퍼의 진짜 적은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오용


포퍼는 플라톤만 비판하지 않는다. 헤겔마르크스도 그의 비판 대상이다. 헤겔은 절대정신과 시대정신이라는 모호한 철학을 통해 역사를 예측 가능한 흐름으로 규정했고,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이라는 역사 법칙을 통해 역사의 필연성을 주장했다.


문제는 이러한 철학들이 전체주의 정치에 의해 오용되면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침해하는 논리로 악용됐다는 것이다. 포퍼는 마르크스를 비판하면서도, 마르크스의 인도적 관점에는 일정 부분 공감을 표한다. 하지만 예언적 철학과 그것을 맹신하는 정치의 결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한다.



포퍼 vs. 비트겐슈타인 — 철학사 최대의 충돌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충돌 중 하나는 포퍼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사이의 논쟁이다. 1946년 캠브리지 도덕과학 클럽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유명한 "부직갱이 사건"으로 기억된다. 포퍼는 철학에는 실질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고,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은 단지 언어 게임일 뿐이라며 맞섰다.


포퍼는 철학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마지막 책 제목이 바로 "All Life is Problem Solving"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철학을 현실 문제를 풀 수 있는 도구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논리 실증주의상대주의 철학, 언어 게임 중심의 철학을 반대했다.



반증 가능성 — 과학과 민주주의의 공통 언어


칼 포퍼가 과학 철학에서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 개념이다. "100마리의 백조가 모두 희다고 해도, 하나의 검은 백조가 나타나면 이론은 무너진다." 이것이 포퍼가 주장한 좋은 이론의 기준이다.


과학 이론이란 언제든지 반박 가능해야 하며, 비판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열린 사회의 구조와 닮아 있다. 열린 사회는 언제든지 자기 자신을 수정하고, 고칠 수 있으며, 비판을 환영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포퍼는 그래서 열린 사회가 곧 과학적 사고 방식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보았다.



열린 사회를 위한 네 가지 과제


포퍼는 말년에 "열린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평화

기아 타개

완전 고용

교육의 보편화

그는 이 과제들이 단지 이상향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조금씩 더 나아가기 위한 실천적 문제들이라고 본다. 물론 완전 고용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란, 도저히 해결이 안 될 것 같지만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으리라 믿는 것, 그것이 인간이 인식하는 진짜 문제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열린 사회의 진짜 적은 누구인가?


열린 사회의 가장 큰 적은, 단지 독재자가 아니다. 진영 논리, 집단 광기, 절대적 믿음,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자기 확신에 찬 선민 의식이 바로 열린 사회를 무너뜨리는 요소들이다.


포퍼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열린 사회에 살고 있는가?"

"너는 열린 사람인가?"


생각해보기..

"나는 지금 열린 사회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열린 사람인가?"



다음 이야기에서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부에서는 포퍼가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플라톤 철학의 구체적 내용, 역사 법칙주의의 위험성, 그리고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사상의 위험한 연결고리들을 살펴보고,


계속해서 열린 사회란 무엇이며, 그 적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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