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eolwon Snow Dec 20. 2024
사랑하는 아빠,
철없는 시절 내가 내뱉었던 독설이 아빠에게 독이 된 걸까? 여태 기억하는 그 말 말고도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한 말이 수없이 많았을 텐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착한 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뱉은 말들이 우주를 한 바퀴 돌아 내 뒤통수를 친다고 믿고 살았는데, 가족에게는 왜 그리 차가운 사람이었을까? 아빠,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요.
나는, 진심이 아니었어. 너무 무지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어. 아빠 맘속 응어리를 풀어줘. 이제 그만 용서하고 잊어줘.
그 독한 응어리들을 죽이자니
항암이 얼마나 독한지 실감하고 있어.
평소 좋아하시던 음식도 그 맛이 아닌가 봐.
그냥 메슥거리는 것만 아니라 입맛 자체가 바뀌니
아빠가 얼마나 힘들까...
둘째랑 조카들은 아빠를 웃게라도 하는데
엄마는 손가락이 아파도 종일 주무르기라도 하는데
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다.
그저 내가 만든 음식을 한술 삼키시게 하는 것,
매일 아빠의 웃는 얼굴을 한번 보는 것,
엄마가 식사를 거르지 않게 하는 것만
겨우 할 수 있을 뿐...
어쩌면 결국엔 아빠 혼자 버티셔야 하는구나, 아빠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너무 슬프게 해.
그렇더라도 아빠, 힘들 때 내 손을 잡아.
화가 나면 화내고, 하고 싶은 말이라도 쏟아내고,
내게 다 풀었으면 좋겠어.
내일은 오랜만에 아들 얼굴 보겠네.
내가 양보할게, 우린 모레 만나.
오늘 종일 쉬지 못해 피곤하겠다.
단잠 주무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