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1.

여덟 번째 편지

by Seolwon Snow


함박눈이 왔어, 아빠.

영상이라 쌓이지는 않았는데도 아빠는 무주에 눈이 많이 왔는지 걱정하고... 아빠의 병을 알고부터는 혹여 하나님이 노하실까 오늘의 운세도 보지 않는데, 그래도 동지라고 액막이라도 해주고 싶어 아침부터 동생들을 들볶고... 나, 되게 웃기지? 그래도 덕분에 아빠도 맛있게 드시고 쫌 혼나면 되지 뭐. (내 착하디 착한 동생들, 고맙다.)


하루 안 봤는데 되게 오래 못 본 것 같다.

그래도 두 번이나 아빠 목소리 들어서 좋았어.

항암 직후에는 말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목소리에 조금 힘이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안심.


생각해 보면 시골에 몇 없는 병원에 의지하는 환자들 생각에 병원도 못 닫고, 검진도 미루고 또 미루고...

아빠가 아픈데도 약 달라 보채는 환자들 전화에, 미수금 빨리 달라는 제약회사에, 자기 살 길만 챙기려 페이닥터를 구하라 마라 하는 약사와 직원들 성화는 너무 야속하지. 욱하고 칼 같은 나는 몇 번 사고를 칠뻔하기도 했어.

근데 아빠,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다 자기 그릇만큼 사는 거지. 아빠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고, 많은 목숨들을 구했고, 오랜 세월 사랑과 위로로 그들을 보살폈어. 나는 그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그만 다 내려놓고 아빠 자신을 보살피길.


심장병도 이겨내고 뇌출혈도 이겨내고

40대부터 갖은 질병들이 아빠를 괴롭혔지만

잘 다독이며 관리했잖아.

이번엔 좀 골치 아픈 놈이 걸렸지만

복수도 많이 줄고 알부민도 안 준다니까

약이 잘 듣고 있을 거야.

3차 전까지 시간이 너무 짧지만

많이 웃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체중 1킬로라도 올려보자.


아빠, 힘내.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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