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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Feb 10. 2023

저항적 실존주의

실존주의적 저항.

운명론자는 세상의 모든 사건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없고, 결국 인간은 결국 파우스트와 같이 '인간은 무엇도 할 수 없다.'라는 진리에 도달한다. 그 진리는 결국 인간에게 회의감을 선사한다. 인간의 최종적 진리,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발전은 파멸로 이끌었다. 허무주의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세상은 어떠한 합리적인 원리와 기준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인간에게도 행해야 하는 어떠한 기준이 부여되지 않는다. 이 순간 인간은 자유와 주체성을 얻고, 인간의 실존과 본질적 모습을 찾게 된다. 즉, 한 인간의 실존과 본질은 자유와 주체성이 주어질 때 나타난다. 그리고 실존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실존주의.


유명한 실존주의 작가 장 폴 사르트르는 '볼펜은 볼펜이 현실에 존재하기 전부터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도구라는 본질이 먼저 존재했지만, 인간은 그러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즉, 볼펜과 같은 도구 등은 본질이 실존보다 앞서있지만, 인간은 실존이 본질 앞에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은 실존이 본질보다 앞섰다고 생각한다. 차이는 본질의 동시 발생 여부. 볼펜은 탄생함과 동시에 '기록하기 위한 도구'라는 본질을 가진다. 즉, 실존과 동시에 본질을 가진다. 그러나 인간은, 앞서 말했듯 행해야 하는 어떠한 기준도 부여되지 않는다. 즉, 실존할 뿐 선천적 본질이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사는가? 태어났으니 살아간다. 그 탄생에는 자기 개인의 의사나 선택은 전혀 포함될 수 없다. 그러니 실존함에도 본질이 존재할 수 없다. 한 인간의 탄생에는 본질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니 한 세계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무한한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그렇다면, 인간은 본질 없이 실존할 수 있는가? 본질 없이 실존할 수 있다면, 그 인간의 가치는 어떻게 되는가? 


또한 이 무한한 자유라는 이름 뒤에는 큰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자유를 가졌다. 그러니 나는 무엇도 해도 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동을 해도 되며, 아니면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도 된다. 그러나 그 둘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선택해야 한다. 무한한 자유라고 말하지만, 언제나 선택을 강요한다. 자유라는 이름 뒤에 숨은 선택의 강요라는 모순. 합리를 열망하는 인간과 합리적이지 않는 세계의 대립, 이 사이에 존재하는 것을 부조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카뮈는 이 부조리에 반항하라 말했다. 그는 그의 저서 '반항하는 인간'에서 반항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행위라고 정의했다. 그러니 우리가 것, 한 생명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조리, 불합리에 끊임없이 반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인간이 대화할 때, 말하는 자는 그 '대화'라는 세계 내에서 주체가 되지만 듣는 자는 객체가 된다. 객체화된 자는 주체성을 잃고, 자유를 잃는다. 그 동시에 그 세계 내 '듣기 위한 존재'라는 본질이 생긴다. 능동적 주체에서 수동적 객체가 되는 것이다. 이 주체화와 객체화의 반복은 순환하며, 개인의 자유를 상실하고 되찾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인간은 서로 공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을 보라,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듯, 주체가 있으면 객체가 있다. 모두가 한 세계의 주체인 상태로 모두가 동등한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불가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주체가 나를 객체화했을 때 어째서 반항하지 않는가? 우리는 안다, 우리의 삶은 온전히 나 하나의 것이 아님을. 공존을 추구하고 집단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인간은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파우스트의 진리, '인간은 무엇도 할 수 없다.'를 나는 '인간 혼자서는'이라고 정정하고 싶다. 나는 타인의 세계에 침범하고, 나도 타인이 나의 세계에 침범하는 것을 허가한다. 이것은 한 인간의 삶이 단순히 개개인의 것으로 나눠진 것이 아닌 하나로써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 하나란 모든 인간의 삶 전체를 말하며, 인간의 삶 전체는 즉 개개인의 삶 하나가 된다. 전체는 하나요, 하나는 전체.


한 개인의 삶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진리는 오직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뿐. 홀로 남겨진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객체화하며 강제적으로 본질을 주입한다. 나는, 신이 우리에게 하사한 것이라곤 이 숨을 쉬는 몸 하나뿐이라고 믿는다. 그 외에는 무엇도 가지지 않았다.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실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행위는 오직 저항. 지키기 위함이 아닌 밀어내는 것을 막기 위함의 저항.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그 자리 위에 그대로 서있기 위함의 저항. 나의 발걸음을 타자에 의해 돌리지 않기 위함의 저항. 밀려나지 않는 우리는 모두가 주체가 된다. 밀려나지 않는 우리는 모두 승자가 된다. 거대한 파도가 범람하는 파도와 같은 세계 위에서도 발을 움직이지 않는 우리는 이곳에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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